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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좁은 길, 사랑을 미워하다 [첫째가 꼴찌되는 제자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10-29 조회수498 추천수0 반대(0) 신고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로마서 8, 29 - 30, 수요일, 제1독서 참조>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루카, 13 - 30, 수요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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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

바로 직전의 아래 게시글 참고;

'예수님의 인간'(예수님을 따르는 인간); 예수님= '사랑에서 나신 사랑'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 = 사랑의 모상 = 사람을 사랑이 되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그냥 창조하신게 아닌, 사랑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왜 굳이 사람을 하느님의 모상이며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으로 미리 정하셨을까요.

만일 우리가 무엇인가를 창조한다면 그냥 창조하면 될 것입니다.그런데 목적(계획)이 있다면 지향하는 점이 있도록 창조할 것은 명백합니다.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사랑이 되도록 하셨다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사랑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에서 나신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에게서 오셨습니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온다"(1요한 4,7 참조)라고 성경은 증언합니다예수님으로부터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났습니다.하느님의 사랑은 당신 자신을 내어주신 사랑의 모습이시며, 예수님의 사랑 역시도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신 사랑의 모습이십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따른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사랑에서 보여주셨듯이 인간을 사랑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던 것입니다.인간은  예수님을 통해서 인간 자신도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차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은 인간에게서 오지 않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입니다.이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이며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하느님의 사랑이고 예수님의 사랑이다고 누구나가 말하지만 이는  그렇지 않습니다.'예수님의 사랑'을 속이려고 하는 거짓의 영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차원을 유혹해 대고자 하는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은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모습을 분명하게 지시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예수님으로부터 본 것처럼 세상에서 오는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는 하느님의 사랑으로써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차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같은 사랑의 모상이 되도록 인간을 미리 정하셨던 것입니다. (사랑의 모상) 

그리고 이 사랑의 모상을 부르시며 의롭게 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십니다.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은 힘들고 고생하며 고난을 겪습니다. 사람들이 제일 하기 싫은 일입니다. 가짜 제자(사제, 수도자)들까지도 제일 하기 싫어하는 하느님의 의로운 일입니다. 힘들고 고생하며 고난을 겪는 사랑을 제일 싫어하는 것입니다.

버려진 이들의 고통과 결합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내어주는 그리스도적 고통에 일치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적 사랑의 고통은 사랑 때문에 힘들고 고생하며 고난을 겪어야만 하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랑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습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 혹은 사랑을 하기 싫은 사람은 사랑에 대하여 깊은 회의감을 자기 내면 안에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사랑을 보면 사랑을 미워합니다.세상에서 오는 인간의 사랑은 받아들이지만 하느님에게서 오는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보면 비아냥거리며 조롱하고 멸시합니다. 사랑에 대한 회의감 때문입니다.

죄,악스러운 것들을 서로 공유합니다. 가짜 제자들이 죄, 악스러운 것들을 서로 공유하는 것에 한 통속이 됩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이 왜 예수님을 미워했을까요. 지금도 예수님과 같은 모상의 사랑을 보면 이 사랑을 미워하는 가짜 제자들은 많습니다. 자신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하지 못하는 탓에 있습니다.

평신도들도 다르지 않습니다.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인간을 사랑이 되도록 창조하셨지만 사람은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미워하고, 이 사랑은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사랑을 부활시키셨습니다.하느님의 강력한 의지의 반영이십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좁은 길을 가지 못하는 가짜 제자들은 죄, 악스러운 것들을 서로 공유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이론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세상의 이론이 아니었던 것입니다.가짜 제자들은 율법학자,바리사이들과 같이 사랑을 미워하고 사랑을 죽이도록 세상은 그렇게 되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은, 인간의 고통에 민감하게 결부하며 그리스도적 고통으로 일치하여 인간을 모든 죄, 악에서 구원해 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보여주셨고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길을 앞서 가셨습니다. <아래 게시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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