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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죄악된 공동체 안에는 가짜 제자들이 산다 [모든 성인의 통공]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02 조회수330 추천수1 반대(0) 신고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았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저 안에 살아계신다면, 어찌 죄를 짓게 되나요. 저는 슬프기만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 안에 살아 있기에 너는 너의 죄로 슬퍼 할 수가 있다. 만일 죄로 슬퍼하지 않는다면 너 안에 내가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하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자기 안에 그리고 공동체 안에 예수님께서 머무르시지 않는다면 

분명하게 죄, 악으로 슬퍼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속이고 공동체가 자신을 속인다면 어떻게 회개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요.

사랑을 미워했던(무관심)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그로부터 사랑의 힘을 받아들이지 않음은 여전히 오늘날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랑스러운 것들은 서로 공유하지 않고

도리어 죄, 악스러운 것들을 서로 공유하면서 사랑을 모해하고 사랑을 죽입니다.

지금은 율법의 힘이 아니라 돈의 힘과 불완전 할 수 밖에 없는 규정들과 방침들의 힘, 삯꾼들의 지배체제 곧 기업체적인 구조형태가 사랑의 힘을 없애어 갑니다.

사랑의 은총은 알면서도 사랑의 힘은 믿지 않습니다.

사랑을 죽인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다시 매다는 것과 차이가 없습니다

세속의 힘과 현실의 상태와 타협해 가면서 사랑을 저버리는게 허다합니다.

제자들이라고 하여도 그리스도와 일치하지 않고 제 십자가를 회피하는 일에 재빠릅니다.

복음의 예수님을 구경하려는 제자들은 많지만 예수님과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사랑의 힘에서 무기력한 탓입니다.

다른 현실적인 세속의 힘에 속박되어져 죄,악스러운 것들만 서로 공유하면서

거짓된 사랑으로 남들을 속이는 술수에만 능해 집니다.

그리고 그런 까닭에 참으로 회개를 하지 못합니다.

거짓으로 무장하는 공동체는 자기 죄,악에 슬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용서하려고만 하는 교만에 쌓이고

자신들이 주님으로부터 용서받아야 할 존재임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악에 의한 고통과 죄가 쌓여 죽음이 번복되어도 슬퍼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스러운 것들을 서로 공유하지 않고

죄,악스러운 것들로 서로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십자가에 매달리고

거짓이 자주 힘을 씁니다.

가짜 제자들이 공동체 안에서 권세를 누리면서 회개는 멀리 달아납니다.

죄, 악의 고통과 죽음으로 가짜 제자들이 살아 갑니다. (힘을 씁니다)

악의 고통과 죄의 죽음에 슬퍼하지 못함은

자기 안에 그리고 공동체 안에 예수님을 (사랑을) 모시지 않음에 있습니다.

인간의 고통과 민감하게 결합하신 그리스도의 고통과 일치하지 못함에 있습니다.

가짜 제자들의 더 큰 책임을 잊어버리고 거짓의 힘들에 팔아 먹는 일은

정녕 순결(정결)하지 못함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결코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깨끗한 마음이기도 합니다.

 

 

<교리서 948 참조> ‘모든 성인의 통공’이라는 말은 다음과 같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두 가지 의미를 지니게 된다. 곧 ‘거룩한 것들의 공유’와 ‘거룩한 사람들 사이의 친교’가 그것이다.

<여기서의 게시자 의견 ; 거룩 =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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