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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최승정 신부님 성서백주간2 제22회 우박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03 조회수676 추천수0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제22회 우박: 탈출 9,13-35

 

탈출 9,21절, 22절을 함께 읽는다면,

* 탈출 9,21: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은 자들은 제 종들과 집짐승들을 그대로

                   들에 내버려 두었다.

 

따라서 모세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갈리는 겁니다. 직역해 본다면 야훼의 말씀을 두려워하여 그의 종들과 그의 가축들을

집으로 피하게 한다라는 것과 두 번째는 그 심장이 야훼의 말씀에 자리잡지 않은

이들은 그의 종들과 가축들을 들판에 남겨 두었다.

 

여기서 남겨 두었다는 것은 영어로 얘기한다면 어벤던(abandon)과 같은 그냥 우리

식의 가장 강한 이게 표준말은 아니죠? 내깔려 두었다면은? 이게 표준말입니까?

아닐 거 같애요. 내깔려 두었다. 하여튼 내깔려 두었다. 죽든지 말든지 그냥 버려

두었다는 약간 좀 강한 그와 같은 동사가 거기 쓰여져 있습니다. 이 대목에 관해서는

잠시 후에 다시 한번 둘러 보겠습니다.

 

* 탈출 9,22: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그 반응을 보고 야훼가 다시 모세에게 말하는 거지요? "네 손을 하늘로 뻗어라.

그리하여 우박이 이집트 온  땅에, 이집트 땅에 있는 사람과 짐승과 모든 풀 위에

내리게 하여라."

 

야훼는 이제 다시 모세에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탈출기 7장, 8장에서는 아론으로

하여금 지팡이를 잡고 손을 뻗게 하지만 여기서는 모세에게 손을 하늘 위로 또는

하늘을 향해 뻗으라고 합니다. 아론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박이

내리게 되는데 우박이 내리는 방향, 모세는 손을 하늘로 향해서 뻗고 우박은 사람

위로, 짐승 위로, 들판의 모든 풀 위로 내리 떨어집니다.

 

* 탈출 9,23: 모세가 지팡이를 하늘로 뻗자, 주님께서 우뢰와 함께 우박을 내리셨다.

                    번갯불이 땅으로 떨어졌다.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 우박을 쏟으셨다.

 

예, 이것도 좀 뜯어보면 왜 이렇게 썼지?라고 생각해 볼 만한 그와 같은 내용들이

이 안에 많이 발견이 됩니다. 아론의 경우와 유사하게 손과 지팡이가 문학적으로

동일하게 생각이 됩니다. 야훼의 명령은 모세로 하여금 그의 손을 뻗으라는 것이지만

모세는 그의 지팡이를 하늘 위로 뻗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야훼 자신이 직접 주체가 되어 등장합니다. 모세가 손을 뻗자 뭐를

하는 거죠? 주님께서 우뢰와 함께 우박을 내리셨다. 따라서 이게 주객이 전도됐어요.

모세가 손을 뻗으니가 하느님이 일을 하는 거예요. ^^*~~~ 이게 참 이상합니다.

나중에도 같은 장면이 또 나오는데 언제냐 하면 갈대 바다 사건에도 보면 모세가 손을

뻗자 하느님이 바람을 불어 넣는데 밤새 바람을 불어 넣어서 바다가 갈라지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 일반적으로 생각해서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가 역활을 고른다면 모세가

더 편해요. 나중에 광야로 나가서 아말렉족과의 싸움에서도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있으면은 이기고 아니면은 지는. 야훼가 이스라엘과 함께 아말렉족을 거슬러 싸우게

되는. 따라서 모세가 편하게 하는데 팔을 들고 하루종일 들고 있는 것이 어려우니까

양쪽에서 팔을 받치는 그와 같은 대목 그럼 되게 좋을 거 같기는 해요. 손만 뻗으면

문제들이 다 해결되는 뭐 그런 대목인데.

 

제가 너무 강의하는데 피곤하시지 말라고 하느님의 말씀을 희화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 죄송합니다. ^^*~~~ 예, 아무튼 여기서 저희가 보기에는 이상한 게 보통

하느님이 말씀하시고 인간이 움직여야 하는 그와 같은 게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태도인데 모세는 손을 뻗자 하느님이 움직이는 그와 같은 대목입니다.

 

 

그런데 야훼는 우박뿐만 아니라 우뢰라고 이렇게 번역이 돼 있는데요. 번역은 제가

해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하지만 본래 쓰여진 단어는 소리들입니다. 복수가 쓰여져

있어요. 소리들. 정말 이상합니다. 소리가 아니라 소리들. 그냥 큰 소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복수가. 따라서 그냥 우뢰가 한번 치는 게 아니라 우르릉 쾅쾅~, 우르릉 쾅쾅~

하고 이렇게 쳤다는 그런 뜻을 여기서 얘기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소리들만 있는 게 아니라 뭐가 있지요? 번갯불이라고 되어 있는데

직역하자면 그냥 불입니다. 불이 땅으로 왔습니다. 소리와 불, 불과 소리. 여러분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이 사도들한테 내릴 때 어떤 모양으로 성령이 내리지요?

엄격히 얘기하면 혀 모양의 불입니다. 혀 모양의 불. 따라서 혀라는 거는 소리를

얘기합니다. 혀와 불. 여기서도 보니까 소리와 불. 거기에 대해서 공통점을 우리가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튼 자연적으로 얘기한다면 이거는 벼락이 되겠지요?

 

예, 그리고 나서 뒤이어 텍스트가 뭐라고 얘기하냐 하면? 야훼가 우박을 이집트 땅

위로 내리게 하였다. 이상하죠? 23절을 보면 야훼께서 우뢰와 함께 우박을 내리셨다

라고 한번 얘기해 놓고 번갯불이 땅으로 떨어졌다. 주님께서 이집트 땅으로 우박을

쏟으셨다. 같은 얘기 경제적이지 못합니다. 반복해서 이렇게 이야기가 되는 것.

뭔가 다른 이야기들이 섞여 있는 그와 같은 것이 아닌가? 그래서 반복된 것이 아닌가

라고 주석가들이 추측합니다.

 

* 탈출 9,24: 번갯불이 잇달아 번적이면서 우박이 내렸다. 이처럼 엄청난 우박은,

   이집트가 나가가 선 뒤로 이집트 온 땅에 한번도 내린 적이 없었다.

 

다시 한번 우박과 불이 언급 됩니다. 직역한다면,

"그리고 우박이 있었다. 그리고 불이 우박 사이에서 반짝였다."

따라서 우박이 있고 불이 있고 또 불이 있고 다시 우박이 있고 그 다음에 우박 사이에서

불이 번쩍이는 번개와 벼락이 모두 있는 그와 같은 내용입니다.

 

예, 그리고 앞에서 18절에서 언급한 이집트에서 유래가 없는 재앙의 규모가 다시 한번

확인 됩니다. 18절에서는 이집트 수립의 날에서 지금까지라고 표현했지마는 여기 24절

에서는 이집트가 나라가 된 때부터라는 뭐 같은 의미의 좀 다른 표현이 등장합니다.

 

* 탈출 9,25: 이렇게 우박이 이집트 온 땅에서 사람을 비롯하여 짐승에 이르기까지

   들에 있는 모든 것을 쳤다.

 

들에 있는 모든 것. 사람부터 짐승까지. 따라서 그 우박은 풀을 치고 그리고 모든

나무를 부러뜨립니다.

 

우박에 대한 언급이 이사야서 또는 시편 같은데도 역시 등장합니다.

* 이사 28,2: 보라, 주님께서 보내신 힘세고 굳센 이를. 그는 우박  섞인 폭우처럼,

   들부수는 폭풍처럼 엄청나게 밀려와 물을 쏟아 붓는 폭우처럼 그것을 집어

   땅으로 내동댕이치리라.

 

* 이사 28,17: 그리고 나는 공정을 줄자로, 정의를 저울로 삼으리라.

   우박이 거짓의 피신처를 쓸어 가고 물이 은신처를 씻어 가리라.

 

따라서 우박은 여기서 꼭 하느님의 어떤 무기처럼 어떤 심판의 도구처럼 그렇게

사용됩니다. 따라서 우박은 하느님 현현의 표지이고 동시에 신적 심판의 표지이기

도 합니다. 그런데 26절: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사는 고센 땅에만은 우박이

내리지 않았다. 다 내렸는데 거기는 내리지 않았다.

 

예, 앞선 8장에서도 이스라엘 자손들이 살고 있는 고센 지역은 재앙의 예외 지역

으로 분리됩니다. 여섯째 재앙의 예고에서는 고센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지만

넷째와 다섯째 재앙의 흐름을 이어받아 저자는 일곱째 재앙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야훼의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기 나눠드린 복사물 앞면을 보시면은 맨 마지막 줄에 이스라엘 그리고 × 표 쳐

놨지요?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이스라엘에는 그 재앙이 없었다. 그 고센 지역에는

그 재앙이 없었다. 등에 떼, 가축병, 우박, 어둠 이거는 이스라엘은 거기서 제외됩니다.

 

page1.

0 큰 뱀

1 피

2 개구리들

3 모기들

4 등에 떼

5 가축병

6 종기

7 우박

8 메뚜기 떼

9 어둠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아침에 파라오에게 가거라. 그가 물가로 나갈 터이니, 나일 강 가에 서 있다가 그를 만나라.

파라오에게 가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고 말하여라.

 

너는 아침 일찍 일어나 파라오 앞에 나서라. 그가 물가로 나오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고 그에게 말하여라.

파라오에게 가서, ‘주 히브리인들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고 그에게 일러라.

 

너는 아침 일찍 일어나 파라오 앞에 나서서, ‘주 히브리인들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고 그에게 말하여라.

파라오에게 가거라.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아론+지팡이

아론+지팡이

아론+지팡이

아론+지팡이

 

 

 

모세의 손

모세의 손

모세의 손

모세와 아론은 파라오에게 가서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하였다. 아론이 자기 지팡이를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 앞으로 던지자,

모세와 아론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하였다. 그가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 앞에서 지팡이를 들어 나일 강 물을 쳤다.

아론이 이집트의 물 위로 손을 뻗자,

그들은 그대로 하였다. 아론이 지팡이를 든 손을 뻗어 땅의 먼지를 치자,

주님께서는 그대로 하셨다.

이튿날 주님께서 이 말씀대로 하셨다.

모세가 그것을 공중으로 뿌리니,

모세가 지팡이를 하늘로 뻗자,

모세가 이집트 땅 위로 지팡이를 뻗자,

모세가 하늘로 손을 뻗자,

 

 

 

 

이스라엘×

이스라엘×

 

이스라엘×

 

이스라엘×

 

그런데 우리가 본 종기와 메뚜기 떼 재앙에서 만큼은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이때로 이스라엘도 좀 봐 주지. 저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된

걸까?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 봤는데 아직까지 저로서는 특별한 설명을 어떻게

말씀을 드릴 수 없을 거 같애요.  

 

아무튼 전반부의 재앙에서는 이스라엘이 예외가 아니었는데 후반부로 갈 수록

이스라엘이 예외가 되지요? 그 다음에 마지막 이스라엘이 예외가 되는 절정의

사건이 뭡니까? 파스카 사건에서 이스라엘은 뭐 양을 잡아서 피를 문설주에

바르니까 이스라엘은 예외가 되었다라는 그와 같은 대목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습니다.

 

* 탈출 9,27, 이제 새로운 파라그라프입니다.

"그러자 이제 파라오는 사람을 보내어 모세와 아론을 불러다 말하였다. 이번에는 내가

죄를 지었다. 주님께서는 옳으시고 나와 내 백성은 그르다."

 

예,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을 부르는데요. 이미 앞선 대목에서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을

부르는 장면이 앞선 대목에서도 나옵니다. 탈출 8장 4절. 21절 그와 같은 대목에서.

그런데 거기에서는 단순히 파라오가 모세와 아론을 불렀다고 그렇게 진술되는 반면

27절 만큼은 파라오가 누군가를 보내서 모세와 아론을 불러오게 했다라고 훨씬 더

표현히 세밀한 그런 표현이 여기에서는 등장합니다. 좀더 상세하게 서술돼 있는

거지요. 이렇게 색다르게 시작된 장면은 놀라웁게도 파라오의 뉘우침으로 연결이

됩니다.

 

미안합니다. 아까 우리가 봤어야 될 이사야서 30장 30절과 시편 18장 13절 두 가지

정도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 이사 30,30: 또 주님께서는 격분과 집어삼키는 불길과 호우와 폭우와 우박덩이를

   퍼부우시며 당신의 우렁찬 소리를 듣게 하시고 내리치는 당신의 팔을 보게 하시리라.

 

* 시편 18,13: 그분 앞의 빛에서 뿜어 나오는 것 우박과 불타는 숯덩이들이었네.

 

9장 27절 직역한다면 이렇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잘못했다(= 죄졌다).

야훼가 옳은 일이다. 그리고 나와 내 백성은 그른 이들이가.

 

이렇게 자기 잘못을 시인하는 파라오의 언사는 법정에서 죄인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듯한 어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꺼는 바로 이겁니다. 이번에는 내가 잘못했다. 따라서 지난 번에는?

 

그 수사를 보면은 묘한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뭐 이렇게 얘기하다가 뭐 니가

잘못했니, 내가 잘못했니 하다가 뭐 그렇게 얘기하는 거 있잖아요. "그건 내가 잘못

했어." 내가 얘기하지 않은 나머지 부분에 뭐가 있는 겁니까? 그건 니가 잘못했어.

다른 거는 니가 잘못한거야라는 그런 말이 이렇게 숨어 있습니다. 여기서도 파라오가

이번에는 내가 잘못했다. 자신의 잘못을 조금 제한합니다.

 

탈출기 9장 14절에서도 앞선 대목에서도 사실은 "이번에는" 이라는 이야기가 사용됩

니다. "이번에는 내가 온갖 재앙을 너 자신과 너의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내려, 온 세상

에 나와 같은 신이 없음을 네가 알게 하겠다." "이번에는 내가 온갖 재앙을" 이라고

나오잖아요. 따라서 여기서 파라오는 누구를 흉내내고 있는 겁니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야훼를 흉내내고 있는 겁니다.

 

이번에는 내가 이렇게 하겠다. 그러니까 파라오가 뭐라고 그럽니까?

이번에는 내가 잘못했다. 약간 파라오와 야훼가 대결 구도를 보여 주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파라오가 자기 자신과 자기 백성의 죄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이야기

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추측을 해야 되는데 좁게 해석 한다면은 정말로 좁게 해석 한다면,

야훼의 말씀을 듣지 않고 들판에 종들과 집짐승들을 피신 시키지 않고 내버려 둔

겁니다. 좁게만 해석 한다면. 걔네들 다 피신 시키고 내가 하느님 말씀을 들었어야

되는데 야훼 말씀을 안 들어서 그건 내가 잘못했다.

 

넓게 해석 한다면, 물론 야훼의 요청을 거슬러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를 떠나게

하지 않은 그 대목이 되겠지만 좁게 해석 한다면은 바로 그 들판에 내버려 둔 바로

그 문제가 됩니다. 결과는 이미 알고 있지요? 그 약속을 지키지를 않습니다.

 

* 탈출 9,29: 그러니까 모세가 그에게 말합니다. "제가 성읍을 나서는 대로 주님께 제

   제 손을 펼치겠습니다. 그러면 우뢰가 멋고 우박이 더 이상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세상이 주님께 속한다는 것을 임금님께서 아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 야훼를 향해서 양손을 펼치다라는 그와 같은 표현입니다. 양손을 펼치다.

* 1열왕 8,22: 그리고 나서 솔로몬은 이스라엘 온 회중이 보는 가운데 주님의 제단

   앞에 서서,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펼치고...

 

* 에즈 9,5: 저녁 제사 때에 나는 단식을 그치고 일어나서, 의복과 겉옷은 찢어진 채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펼쳐...

 

두 손을 펼치고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조금은 특이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지요? 손을 모으고 기도합니다. 여기서는 손을 펼치고 기도합니다.

요즘도 우리가 미사 할 때 사제들은 손을 펼치면서 기도합니다. 우리가 왜 손을 모으면서

기도하는지를 아십니까? 거기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제가 한번쯤은 말씀 드린 거

같은데 손을 모으면서 기도하는 정확한 자세는 합장을 한 다음에 합장한 손이 정가운데

오는 것이 아니라 약간 심장 쪽으로 갑니다. 약간.

 

마음을 모은다는 첫 번째 의미가 있고, 두 번째 의미는 내가 이렇게 손을 모은다는 뜻은

내 손에 무기가 없다는 뜻입니다. 손을 다 보여 주는 것은 상대방을 공격하는 뜻이 아니

라는. 당신 앞에 나는 약한 자로 있습니다라는 뜻이고 세 번째는 이게 제일 중요한데요.

우리가 손을 이렇게 모으고 무릎을 꿇었을 때 우리들의 몸이 가장 작아집니다. 따라서

가장 작은 사람으로 당신은 크고 나는 작습니다라는 뜻입니다.

 

반면에 사제들이 손을 펼치면서 미사를 할 때 신자분들이 보기에는 똑같은

동작 같이 보이지만 하지만 그 사이에 두 동작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두 동작이.

첫 번째는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고 손을 펼칠 때는 넓게 펼쳐도 됩니다.

그때 사람들을 초대하는 거니까. 하지만 성찬 기도에 들어가서 우리가 감사 기도를

하면서 손을 펼칠 때는 옛날 전례 규정은 어깨 넓이 이상으로 손을 펼치지 못하게

했습니다. 어깨 넓이까지만 펼쳐라.

 

왜냐하면 여기서 손을 펼치는 거는 일종의 뭐라고 그럴까요? 그 깔대기 모양을 만드는

겁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은총을 받아서 그것에 성체와 성혈 그곳에 그 축복을 모으고

그리고 그것을 하느님 백성들에게 나눠 준다라는. 사제가 은총을 받아 들이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일종의 그릇의 역활을 하는. 따라서 옛날에는 넓게 못 벌리게 돼 있어요.

요즘은 그런 규정이 좀 엄격하지는 않습니다만 하지마는 동작이 두 동작이 있습니다.

전례의 어떤 정신은 은총을 담아서 백성들에게 준다라는 그런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무튼 여기서는 양손을 벌리고. 따라서 이 대목을 보면은 어떤 생각이 드느냐 하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제가 제사는 드릴 때 하늘을 우러러 손을 펼치고 기도하는 듯한

그와 같은 대목을 우리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에즈라 같은 경우에는

너무나 간절하니까 어떻게 하는 겁니까? 무릎을 꿇고 양손을 벌리는 그와 같은 어떤

기도의 모습입니다.

 

그 기도는 모세가 성읍을 나가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성읍을 나가는 대로.

요 표현에는 시간적인 정보와 공간적인 정보가 함께 있습니다. 먼저 시간적으로

이해한다면은 앞선 경우와는 좀 달라요. 앞선 경우에는 재앙을 거두어 달라 그러면

모세가 항상 어떻게 얘기했지요? 언제 해 드릴까요? 내일 해 줘!

항상 내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제 급합니다. 파라오가 모세와 아론을 서둘러서 막 불러서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모세도 그러면 그렇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내가 성읍을 나가는 대로

내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해 주겠다라는 그런 어떤 시간적인 표현이고

 

두 번째로는 모세가 성읍을 나간다면은 모세는 어디 있게 될까요? 들판에 있게 됩니다.

우박이 떨어지는 바로 그 장소입니다. 따라서 시간적으로도 이해할 수도 있고 공간적

으로도 이해할 수가 있다. 모세가 들판에 나서는 그런 상황으로도 이해할 수가 있다.

그리고 나서 아까부터 계속 같은 말씀을 드립니다마는 29절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 됩니다.

 

* 탈출 9,29: 이는 세상이 주님께 속한다는 것을 임금님께서 아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고, 틀렸다는 게 아닙니다. 이 세상이 거기 쓰여진 얘기는 이 땅

이니까 이거를 이집트 땅으로도 이해할 수도 있겠다. 따라서 이는 이 이집트 땅이 또는

이 이집트 땅오 이집트 신들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야훼에게 속한다는 것을 임금님께서

아시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라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겠다라는 두 가지 가능성에

대해서 알고 계시면 되겠습니다.

 

* 탈출 9,30: 그래도 임금님과 임금님의 신하들이 아직 주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으실

   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무서운 얘기 같애요. 그죠? 누가 나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본다면, 되게 그런 거 같애요.

그래서 가끔씩 여러분들도 아마 비슷한 경험을 하셨을 거 같애요. 주위에 사람만 보면은

심리분석 할려는 사람들이 좀 있지요?^^*~ 저는 그거 굉장히 상대방에 대한 결례라고

생각을 해요.

 

특히 우리나라에서 요새 과학적인 것도 아닌데 혈액형 가지고 무슨 형이지? 뭐 이렇게

물어보는. 아니면 뭐 무슨 얘기하다가 갑자기 "너 어렸을 때 무슨 상처가 있었어?" ^^*

이거 굉장히 제 생각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서 조금 저희가 피해야 될 그런 태도 같애요.

 

무슨 애니어그램이라든지, MBTI라든지 뭐 이런 거 하는 의도는 뭡니까? 나를 알고

또 나의 어떤 부족한 점을 깨닫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더 폭넓게 이해의 틀을

가지기 위해서 그걸 하는 건데 그걸 알고 나서, 그런 걸 하고 나서 어떤 사람들은 마치

도사가 된 것처럼 ^^*~~~ 쟤는 무슨 형이야. 쟤는 뭐야. 형액형은 뭐야. 등등

제가 보기에 조금 우리가 피해야 될 그런 자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제일 좋은 자세는요. 우리가 하느님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고

인간을 대할 때도 그 신비로움을 갖고 상대방을 대하는 것이 심지어 한 가족으로

살아가지만 참으로 알면 알 수록 더 신비롭고 더 새롭고 그렇다라는 그런 것. 그

자세가 제일 좋은 자세인 거 같애요.

 

아, 내가 걔 한 10년 정도 봐 왔는데 아직도 걔를 만나면, 그 친구를 만나면 뭔가

새로워. 뭔가 기뻐. 뭐 이런 것들. 그런 것들이 조금은 사람과 사람을 대하는 올바른

그런 태도가 아닌가라는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따라서 그런데 이 문장이 조금 재미 있습니다. 왜냐하면 문장을 직역하자면 이겁니다.

* 탈출 9,30:  그래도 임금님과 임금님의 신하들이 아직 주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으실 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 직역하면, 그래도 당신과 당신의 신하들에 대해서는 나는 알고 있다. 당신들은 아직

야훼 엘로힘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다.

 

특징적인 것은 야훼 엘로힘이라는 표현이 여기와 탈출기 2, 3장을 제외하고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런 식의 표현이. 야훼 엘로힘 이렇게 붙어가지고.

야훼 우리들의 엘로힘, 야훼 너희들의 엘로힘, 야훼 이스라엘의 엘로힘, 야훼 히브리

인들의 엘로힘 이런 표현들은 등장합니다만.

 

우리 말로 번역한다면 야훼라는 신 정도의 그런 의미가 될 것 같은데 이런 표현은

굉장히 드물게 등장한다는 것에 대해서 알고 계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이게 좀 이상한 표현인데 "그래도 당신과 당신의 신하들" 주어로 쓰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나는 알고 있다." 세 번째 "당신들은 아직 야훼 엘로힘  앞에서 두려워

하지 않는다."

 

따라서 문장의 주어가 문법적으로 보면 두 개예요. 나는 알고 있다. 당신과 당신들의

신하들. 그 당신들은 아직 야훼 엘로힘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문장을

가지고 주석가들이 무지하게 복잡하게 생각합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그리고 대부분 결론을 못 내립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

 

우리 말에는 이미 이런 현상이 있습니다. " 그 사람은 마음이 아름다워."

이 문자에서 주어가 어디 있죠? 맞습니다. 마음입니다. 그럼 그 사람은 뭘까요?

이게 우리 말 문법에서 주제화 현상이라고 얘기합니다. 따라서 그 문장을 풀어서

얘기하면 이겁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말하자면 마음이 아름다워. 그런데 우리 말에서는 그걸 건너 뜁니다.

그리고 주어처럼 얘기합니다. 그 사람은 마음이 아름다워. 또는 나는 신앙심이 깊어.

깊은 거는 뭡니까? 신앙심이 깊은 겁니다. 이게 주어가 신앙심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라고 얘기합니다. 나에 관해서 얘기한다면, 주제화 현상입니다.

 

이렇게 전 세계 언어 중에서 이런 주제화 현상을 갖고 있는 언어가 몇 가지가 되지가

않습니다. 히브리 말에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우리 말에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인도 게르마니아어에서는 그런 현상이 안 나타납니다.

 

그래서 제가 공부할 때, 학생 신부 시절에 교수님들이랑 같이 세미나 하면서 그런

주제화 현상에 관해서 제가 얘기 했더니 굉장히 신기해 하시더군요. 아마 우리랑

이스라엘 민족이랑 뭔가 언어적으로 뭔가 좀 비슷한 뿌리가 뭐 하나가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는 자랑스런 우리 말입니다.

 

예, 아무튼 여기서는 그냥 평범하게 전체 그 문장의 틀을, 따라서 바로 그렇게 번역이

됐습니다. 임금님과 임금님의 신하들은 주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라고 그렇게 번역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주제화 현상이 일어난다

라는 정도로 알고 계시면 되겠습니다. 31절, 32절 한꺼번에 하겠습니다.

 

* 탈출 9,31: "마침 보리는 이삭이 패고 아마는 꽃이 피어 있었으므로, 아마와 보리는

   못 쓰게 되고 말았다." 우박을 맞아서 피할 데가 없으니까 다 폐허가 된 거지요?

 

* 탈출 9,32: 그러나 밀과 귀리는 늦게 나오는 것들이었으므로 못 쓰게 되지는 않았다.

아직 이삭이 나오지 않앗으니까. 따라서 보리와 아마는 농사가 망했습니다. 보리와

아마가 추수하는 것은 언제일까요? 이집트 기후에서. 늦겨울, 초봄입니다.

3~4월 정도가 이런 보리와 아마가 패는 시기일 것입니다. 겨울이 끝나가는 그와 같은

시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보리의 이삭이 패다라는 말. '패다'라는 말을 히브리 말로 '아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달의 이름이 됩니다. 여러분들 구약 성경 읽으면서 아빕달

얘기 들으셨지요? 그 아빕달의 아빕이 무슨 뜻이냐하면 이삭이 패는 달입니다라는 그

팬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정확히 제가 이삭이 팬다는 것이 뭔지를

모르겠어요. 팬다는 게 우리 말이죠? 저도 팬다라고 번역을 하면서 우리 말에 대해서

한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팬다? 이렇게 팬다는 거 아니예요?

 

예, 그리고 그 아빕달을 부르는 또 한 이름이 니산달입니다. 나중에 다시 한번 장황하게

설명을 하겠지마는 히브리어에서 달을 명칭하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숫자로 명칭합니다. 첫째 달, 둘째 달, 셋째 달, 넷째 달... 열두 번째달, 윤달이

끼면은 열세 번째 달까지 얘기하는.

 

두 번째 유배 전에는 가나안식 명칭을 사용한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열두

달의 이름이 다 확인되지 않고 네 달 정도가 확인이 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아빕달

입니다. 따라서 아빕달 이거는 가나안식 전통의 달력에서 따온 그와 같은 말입니다.

 

유배를 갔다 와서는 바빌론식 달의 이름을 배워갔고 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은 다음번

시간쯤에 확인해 보겠습니다만 열두 달 이름이 거의 있어요. 그런데 그 중에 첫 번째

달이 니산달입니다. 그게 3월 중순부터 우리가 부활 시기 맞는. 따라서 춘분을 즈음해

서 한 해가 시작하는 그와 같은 달력의 개념입니다.

 

반대로 이제부터 복잡해지는데 구약성경을 쭉 읽다 보면 한 해의 시작을 춘분으로 보는

경우도 있고, 추분으로 보는 경우도 나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역사를 지나오면서

하나의 달력뿐만 아니라 주변 세계의 여러 달력들의 영향을 받은 거 같애요.

 

더 나아가 하루의 시작도 구약성경을 읽다 보면, 우리는 지금 하루의 시작을 자정,

그다음에 정오 이렇게 봅니다마는 옛날에 시계가 없었을 때는 자정이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잖아요. 따라서 고대 세계에서는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구약성경

에는 둘 다 등장하는 게 문제입니다.

 

하루의 시작을 일몰부터 보는 경우도 있고, 해가 지고나서부터. 또는 일출부터 하루의

시작을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거는 그때 그때 달라요.^^*~~~

 

* 탈출 9,33: 모세는 파라오에게서 물러나 성읍을 나와서, 주님께 손을 펼쳤다. 그러자

   우레와 우박이 멎고, 땅에는 비가 더 이상 쏟아지지 않았다.

 

직역한다면, 그리고 비가 땅으로 퍼붓지 않았다. 앞선 이야기에서는 비라는 얘기가

없었는데 여기서는 비까지 또 언급이 됩니다. 여기서 '퍼붓다' 또는 '쏟아지다'라는

표현은 자주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분노와도 연결되는 표현입니다. 하느님의 진노,

분노가 세상을 향해서 쏟아졌다라는 그와 같은 표현들이 예언서 나훔이나 예레미아서

등에서 그러한 표현들이 등장을 합니다.

 

* 탈출 9,34: 파라오는 비와 우박과 우레가 멎는 것을 보고 다시 죄를 지었다.

또는 계속해서 죄를 지었다라고도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그와 그의 신하들의 마음이

또 완강해질 것이다." 자, 완강해졌다. 그럼 뭐지요? 대단히 훌륭하십니다. 무거워졌다

라는 것입니다. 다시 무거워졌다. 그런데 파라오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신하들

까지도. 요거는 다음번 재앙을 좀 준비 시키기 위한 그와 같은 내용입니다. 따라서

파라오와 그 신하들이 좀 공범의 그와 같은 입장입니다.

 

이미 둘째 재아에서부터 파라오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약속을 파기하였습니다.

재앙의 진행에 따라 그 정도는 점점 악화되고 있습니다. 일곱째 재앙에서는 결국

잘못, 죄의 차원까지도 언급되는 지경에 이릅니다. 그냥 힘 싸움에서 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죄를 지었다."라는 이야기까지 하는, 약간은 좀 이렇게 전체적인

균형이 다 파라오 쪽에서는 좀 무너지고 있는 그와 같은 대목입니다.

 

* 탈출 9,35: 파라오는 마음이 완고해셔 이스라엘 자손들을 내보내지 않았다.

   주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였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우리 말 번역에서는 주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였다라고 얘기 하는데 원문을 보면 본문에는 야훼가

모세의 손을 통해 말한 것처럼이라고 돼 있습니다. "모세의 손을 통해" 이와 같은

표현이 여러 군데서 등장합니다.

 

* 탈출 35,29: 남녀 할 것 없이 모두가 마음에서 우러나와, 주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직역하면, 모세의 손으로) 만들라고 명령하신 온갖 작업에 필요한 것을 가져 왔다.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은 주님을 위하여 자원 예물을 가져왔다.

기억해 두십시오.

 

* 레위 8,36: 그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주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신 것을

                   모두 실행하였다.

* 레위 10,11: 주님이 모세를 통하여 말한 모든 규정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치게 하려는 것이다.

* 레위 26,46: 이것이 주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당신과 이스라엘

                     사이에 세우신 규정과 법규와 법이다.

* 민수 4,37: 모세와 아론은 주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내리신 분부에 따라 그들을

                   사열하였다.

* 민수 9,23: 이렇게 그들은 주님의 분부에 따라 진을 치고, 주님의 분부에 따라

                   길을 떠났다. 그들은 주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내리신 분부에 따라

                    주님의 명령을 지켰다.

* 민수 10,13: 그들이 주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내리신 분부에 다라 길을 떠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모세를 통하여, 모두 모세의 손과 관련이 되어 있는 그와 같은 표현입니다.

예, 유독 신명기에서는 모세의 손이라는 표현이 전혀 등장하지 않지만 그 외에

여호수아기, 판관기, 열왕기, 역대기, 느헤미아, 시편 등에서 모세의 손이라는

그와 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

 

여기서는 단지 손이라는 문학적 표상이 지니는 힘, 능력의 의미와 함께 모세의 어떤

중재적인 역활을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이

구절과 정확히 연관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간 마무리 하면서 정호승 시인이 쓴

손에 관한 시가 있습니다. 저한테 굉장히 공감이 가는 시 같애요.

정호승 시인이 쓴 손에 대한 예의라는 시를 읽어 드리면서 오늘 이 시간을 마무리

했으면 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목록으로 돌아갑니다. 

 

 손에 대한 예의

                                 정호승

 

 

가장 먼저 어머니의 손에 입을 맞출 것

하늘 나는 새를 향해 손을 흔들 것

일 년에 한번쯤은 흰 눈송이를 두 손에 고이 받들 것

들녘에 어리는 봄의 햇살은 손 안에 살며시 쥐어볼 것

손바닥으로 풀잎의 뺨은 절대 때리지 말 것

장미의 목을 꺾지 말고 때로는 장미가시에 손가락을 찔릴 것

남을 향하거나 나를 향해서도 더 이상 손바닥을 비비지 말 것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지폐를 헤아리지 말고

눈물은 손등으로 훔치지 말 것

손이 멀리 여행가방을 끌고 갈 때는 깊이 감사할 것

더 이상 손바닥에 못 박히지 말고 손에 피 묻히지 말고

손에 쥔 칼은 항상 바다에 버릴 것

손에 많은 것을 쥐고 있어도 한 손은 늘 비워둘 것

내 손이 먼저 빈 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자주 잡을 것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책을 쓰다듬고

어둠 속에서도 노동의 굳은살이 박인 두 손을 모아 홀로 기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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