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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도의 소굴로 들어가신 분, 죽었지만 살아 있으시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08 조회수327 추천수2 반대(0) 신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이 성전을 허물어라.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요한 / 토>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루카 /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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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몸은 '하느님의 성전' 혹은 '성령의 성전'이다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하느님의 성전, 성령의 성전이라기 보다는 '강도의 소굴'이 더 맞는 말일 것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한정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그리스도의 영을 모시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다고 성경(로마8, 9 참조)은 가르칩니다.또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하고 가르칩니다.

특히,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이라면 전제가 있습니다.그러므로 하느님의 영이 우리 몸 안에 머무르시지 않는다면 그렇게 불릴 수 없을 것입니다. (게시글; 몸 신앙 참조> 또한 "주님과 결합하면 주님과 한 영이 된다"(1코린토6, 17 참조)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영이 우리 안에 사시고,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는 우리 몸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물론 인간의 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깨닫는데는 이미 성령의 작용이 먼저 입니다. 은총이 작용한 결과이다는 뜻입니다.

토요일 복음 말씀을 보면 강도의 소굴을 정화하십니다. 우리 몸은 강도의 소굴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들어오셔서 강도의 소굴을 정화하신다는 메세지의 전달이 강력하게 드러납니다. 누구도 이런 깨달음을 주신 분은 일찍이 본 적이 없습니다.

'마음의 성전'이라고 게시글을 몇년 전에 작성하고 다음해 어느날 마음의 성전에 대한 유사한 묵상 글을 읽어 본 적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의 성전에 대한 내용이었을 뿐이지 강도의 소굴에 들어가시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내용의 메세지가 다릅니다.

강도의 소굴과 같은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정화해 주실 때만 강도의 소굴은 하느님의 성전으로 변화됩니다. 하지만 자기 및 공동체 안에 예수님께서 오시어, 그리스도께서 내 (혹은 공동체) 안에 사시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여전히 강도의 소굴과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자기 안에, 공동체 안에 머무르시는 예수님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물리치고 끝내는 십자가에 매달아 못 박아버립니다.자기 밖에서, 공동체 밖에서만 예수님을 찾고자 하는 강도의 소굴인 것입니다.자기(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와 결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늘 전하는 메세지입니다. 강도의 소굴인 자기 또는 공동체 몸 안에 그리스도께서 머무르시고 사셔야 합니다. 이것이 다른 분들의 묵상 내용과 다른 부분입니다.자기 마음의 성전 안으로 정화하시러 오시는 주님을 모셔야 합니다.그래야만 강도의 소굴이 정화된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리스도의 육(살과 피)만을 섬기는게 아닙니다.영성체는 그리스도의 영까지 단일체이신 그리스도의 몸을 모시는 것입니다.주님과 결합하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영을 모셔야만 주님과 한 영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체만 주신게 아니라 말씀도 함께 주셨습니다.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길 "말씀은 영"(요한복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자기 안에, 그리고 공동체 안에 살아있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영(성령)을 모신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성체이신 예수님을 모셨다면 우리 안에 말씀도 모셔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말씀은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빵이신 예수님이시고 예수님과 결합하면 진리의 영께서 우리 안에 사십니다. 이로써 주님과 한 영이 되어집니다.

말씀으로 강도의 소굴이 정화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신다면, 성전이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 몸은 하느님의 성전으로 불릴 수 있게 됩니다.강도의 소굴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물리치지 않고 강도의 소굴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모시어 예수님 덕분으로 정화된다면 예수님과 결합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과 결합되어지면 성체 뿐만아니라 말씀의 영(그리스도의 영)이신 예수님의 성전이 우리 몸 안에서 세워진 것입니다.우리 몸이 하느님의 성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우리 몸이 거룩해서가 아니라 거룩하신 예수님 (그리스도의 몸) 때문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십니다. 우리가 거룩해 지는 까닭은 거룩하신 예수님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자기 (공동체) 밖에서 예수님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하느님의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자기 (공동체) 안에 사시면 강도의 소굴이 정화되어 거룩해 지고 예수님 때문에 하느님의 성전이다고 불릴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은 성령의 성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체이시고 말씀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자기 안에 또 공동체 안에 사시면, '말씀의 영(진리의 영)'이신 그리스도의 영께서도 예수님 때문에 우리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성전이다고 불릴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주님과 결합할 때 주님과 한 영이 되어지는 하느님의 힘이시고 인간 자신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나 홀로 수덕주의' 방법으로 거룩해지려고 한다고 해서 인간의 힘에 의해 거룩해지며 그 몸이 하느님의 성전, 성령의 성전이 되지는 못합니다.

왜 그리스도께서 오셨을까요.인간이 제 스스로 위로 올라가 거룩해 질 수 없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아래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힘이십니다. 주님과 결합하면 주님과 한 영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요한17, 17)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 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진리)으로 거룩하게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살지않는 자신 및 공동체는 죄, 악스러운 것들로 서로 공유하며 하느님의 재산을 훔치는 강도의 소굴이 되는 것은 분명하고 돈의 힘과 돈의 권력에 빠져서 사랑의 힘에는 무기력해질 따름입니다.

사랑의 힘에 무기력한데 주님과 결합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예수님께서는 강도의 소굴을 정화하고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체와 말씀이신 사랑스러운 것들을 서로 공유하지 않음은 예수님과 성령께서는 그 자신 혹은 그 공동체 안에 사시지 않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영)과 생명의 빵(육)이신 예수님과 결합하지 못하면 죄, 악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강도의 소굴만이 죄, 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사랑을 물리치고 사랑을 매달아 죽인다 할 것입니다.악에 의한 고통과 죄에 따른 죽음이 끊이지 않습니다.예수님과 성령께서 사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신의 몸과 공동체의 몸은 생명의 말씀과 생명의 빵이 없어 죽은 자들이며 죽은 공동체입니다. 살아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죽은 것입니다.반대로 예수님께서는 죽은 것같지만 실상은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겉으로는 생명의 문화를 소리치지만 실상 죽음의 문화가 뿌리내려져 있는 회칠한 무덤과 같은 자신과 공동체는 하느님 밖에서, 그리스도 밖에서 돈의 힘과 불완전한 규정들, 거친 삯꾼들의 노동력(힘)에 지배 당하는 기업체에 불과합니다.

말씀과 성체의 생명 문화는, 결코 죽음의 문화를 만들지 않습니다. 평화의 문화를 만들지 고통의 문화를 만들지 않습니다. 악에 의한 고통과 죄에 의한 죽음에 무관심하고 죄,악스러운 것들을 서로 공유(한통속)함으로써 "생명과 평화의 성령의 관심사"(로마8, 6)는 등한시되는 것입니다. 죽음의 문화, 죽은 자들이 지배하는 수용소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산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육과 그리스도의 영의 단일체이신 그리스도의 몸과 일치되어 살아있는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평화와 생명이 존중받지 못하는 죽음의 문화는 하느님과 상관이 없는 강도의 소굴일 뿐입니다.

거짓된 세속의 힘을 따르지 말고 참으로 예수님의 제자(수도자, 사제)들이라면 그리스도적 고통에 일치하여 사랑의 힘에 무기력하지 않는 것입니다. 현실에 타협하면서 죄, 악된 것들을 서로 공유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복되시다'며 주님 앞에 회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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