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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라테라노 성전' 과 '교부'(敎父)'들
작성자김영범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09 조회수371 추천수2 반대(0) 신고

                              "  ...  이 성전을 허물어라! ... "  ( 요한 2 ,19 )


오늘은 라테나노 성전 봉헌 축일 입니다. 

신앙을 가진 뒤 부터 오늘의 축일 을 맞이 할 때 마다 오늘 그 의미가 무엇인지 꽤 궁금 했었는데,

얼마전 '교부들의 길 ' (아델베르 함만) 을 읽고 보니, 오늘의 복음 내용을 쉽게 이해 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것 같습니다. (때로는 누군가의 친절한 강론이나 설명 보다도 내 자신이 깨달아 아는 것이 더 크게 와 닿을 때가 있습니다.)


'교부들의 길'은 우리나라 가톨릭 신자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많은 교부학 입문서 입니다.

1세기 부터 7세기 까지의 교부들을 역사적으로 잘 정리 하면서도  신앙적 의미까지 잘 전달 합니다. 

책의 일부를 소개 하자면 , 중간쯤에 4세기 교회를 말하는데  이 시기가 바로 그리스도교의 '황금기'라 일컬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적으로는 '교회분열'의 아픔을 겪게됩니다.


3세기 로마제국의 그리스도교 탄압은 절정에 이릅니다. 

하지만 기난긴 어둠의 터널 끝에는 반드시 밝은 빛의 세상이 기다리고 있듯이 

324년 막센티우스에게 승리를 거둔 콘스탄티누스는 개종을 하고 그리스도교에게 호의적인 정치를 펴기로 결심하여  마침내 그해 11월 9일 그가 기증받은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을 로마의 주교에게  봉헌을 합니다. ('교부들의 길' p.141, '말씀지기'-가톨릭 출판사 p.87) 


하지만 ,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물러난 후(305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죽기까지 (395년) , 4세기 내내 로마 제국은 90년 가운데 겨우 22년 동안만 동서방의 통합 황제만 다스렸습니다. 

특히 5세기에 두쪽으로 분열된 제국은 "하나이며 보편된 교회" unam sanctam ecclesiam 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습니다. ('교부들의 길' p.142)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루터의 종교 개혁 보다 무려 1000년 전 부터도 이렇게 교회는 쓰라린 분열의 아픔을 겪었고 그 흔적 또한 아직 '동방 정교회'의 형태로 인류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남아 있습니다.


저는 오늘 예수님께서 "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 "이 성전을 허물어라 "

하시면서 성전을 마치 저주라도 하시는 듯한 발언에 깊은 공감이 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늘날 정교회니, 개신교니 하면서 두, 세개로  쫙쫙 갈라진 지금의 교회를 보시면 얼마나 마음 아파 하실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마 오늘 복음의 말씀보다 몇십배는 더한 저주(?) 를 퍼 부으실지도 모를 거란 생각이 듭니다. 


'분열'은 인간의 '이기심'이 만든 창조적 무기라고 생각 합니다.

나의 재산으로  편하고 안락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난한 이웃들 앞에 합법적인 벽을 높게 쌓아야 하는  '분열의 원칙'이 필요한 법입니다. 

가난한 이웃은 그들의 예정된 운명임을 믿어야하고 그러한 '예정설'에 힘을 싣기 위해서는  분열을 조장하는 분위기를 끊임없이 퍼뜨려야 합니다.


그 옛날 로마의 황제들도 자신의 지역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는 큰 지중해 주변 지역을 동과 서로 분리하여 다스려야 했습니다. 그래야 서로가 이질화되고  그러한 어수선한 분위기를 이용하여 황제의 통치권을 합리화 해 간 것입니다. 이것은 원할한 다스림이라기 보다 죄에 더 가깝다고 생각 합니다. 이러한 분열정책은 동방과 서방의 가톨릭 신자들의 소통을 막아버리는데 불똥이 튀었고  결국 '종교 분열'의 역사적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분열된 8세기 이후 교회는 유명한 교부들의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게 됩니다.


당시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 된 것이다' 라고 주장한 사제 '아리우스 이단'은  정통 교회를 지키려는 아타나시우스 주교를 모함 하려고 코스탄티노플 황제에 가까운 주교인 에우세비우스를 정치적인 입장으로 다가가 아타나시우스 주교를 귀향 보내는데 성공 합니다. 

이러한 아리우스 이단과 같은 당대의 이단들은 정치적 동서분열을 종교적 분열로 까지 만들게 한 결정적 원인이 됩니다.

하지만 동방의 아타나시우스는 서방으로 귀향을 가는 도중에도 그 유명한 안토니우스 수도승을 데리고 가 서방에 수도승을 전파하는 일에 힘쓰며  동서방 교회 일치의 역사를 쓰기도 합니다. 

아무리 심한 탄압에도 '정의'는 이렇게 살아 갑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의 장사꾼들을 보시면서 단순히 장사꾼들의 행위만 미워서 그렇게 장사판을 엎어버리신 것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내용을 심하게 왜곡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당시 율법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이용(왜곡)하여 서민들을 등쳐먹는데 활용하였습니다. 

종교의 선한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화를 내시는 부분은 '장사'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본질의 심각한 왜곡'입니다.


아리우스가 에우세비우스에게 정치적으로 다가간 이유는 두가지 입니다.

하나는 아리우스주의를 단죄한 '니케아 공의회'(1차 공의회, 325년)를 수호하는 아타나시우스를 모함하기 위한 수단이고 , 다른 하나는 에우세비우스가  무엇이든 타협을 좋아했다는 사실과 콘스탄티노플 황제의 개종을 위해 정치에 전문가가 된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교묘한 아리우스는 335년 티로에서 교회회의를 열어 아타나시우스 주교의 해임을 결의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이단에 문외한인 황제까지 추동하여 아타나시우스를 20년간 유배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렇듯 악의적인 사람은 자신의 일을 합리화 시키려고 끊임없이 본질을 철저히 왜곡시키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예수님의 "성전을 허물어라 " 하심은 단순히 철과 나무로 된 건물을 허물라는 말이 아니라, 

외부의 잘못된 신심으로 물든, 나도 모르게 악의적으로 왜곡된 마음을 허물고 참된 성전을 세우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헛된 재물욕, 명예욕등에 의해 피패해진 우리 마음의 성전은 반드시 예수님의 발파 해체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나와 너를 구분하는 '분열의 원리' 를 허물어야 합니다.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가 원래 하나이고 보편 되었음을 늘 기억 해야 합니다.

남한과 북한이 원래 하나였음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여론조사 변동 추이 

1992년 통일 찬성 여론 조사 : 75%

2013년 통일 찬성 여론 조사 : 25% - 젊은이 일수록 더 반대)  (중앙일보 9일자)

 

라테라노 성전이 봉헌된 4세기의 교회를 보며 ...

우리도 목숨으로 정통신앙을 지키고 하느님의 정의를 부르짓으신 교부들 처럼,  신앙의 원천에 일치되어 가는 삶을 살아야 할 것 입니다.  


                   "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 (요한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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