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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가짜 봉헌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09 조회수327 추천수1 반대(0) 신고

지혜는 간악한 영혼 안으로 들지 않고, 죄에 얽매인 육신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가르침을 주는 거룩한 영은 거짓을 피해 간다 <지혜서 / 월요일 제1독서 말씀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우리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섬긴다고 할 때, 말씀의 가르침을 섬긴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있다는 것은 말씀을 외우고 있다는 것에 말하지 않습니다. 말씀의 가르침을 깨닫고 행동하는 것을 뜻합니다.단지 알고있다는 지식들에 한정되지 않으며 몸으로 실행하는 깨어있슴의 지혜이다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은 영이시다 하셨으며 영은 생명을 준다 하셨습니다.(요한복음) 교회의 교리서에도 육체는 영혼을 통하여 생명을 얻는다 하고 가르칩니다. 우리의 몸이 행동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점은 <말씀이 생명력을 지니지 못할 때>입니다.말씀이 육체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말씀이 육체를 움직인다는 것은 영이 육을 움직인다는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마르 14, 38 참조) 하셨습니다. 영이 육을 움직이지 못하니, 마음이 간절해도 몸이 따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기계가 움직이려면 기계를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이 필요합니다.마찬가지로 물질인 '육'이 움직이려면 그 동력인 '영'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육체는 영혼을 통하여 생명력(동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려면 말씀의 실행이 가능해 집니다.

누구라도 모두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다 옳지만 그대로 다 실천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마음은 간절하지만 몸이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냅니다.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할 점이 있습니다. '동력의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하신 마음은 알지만, 말씀대로 할 몸의 동력이 없습니다. 말씀의 마음은 준비되었지만 말씀의 몸이 움직이지 않은 것입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가지고 있지 않았다"(마태 25, 3 참조) 여기서 등은 육이고, 기름은 영입니다.

흔히 인간사에서 마음이 있다고 해서 항상 몸이 따라 주지는 않습니다. 마음 안에는 동력의 기름에 해당하는 영이 없는 것입니다. 몸의 육이 움직이려면 육에 생명력이 되는 영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너무 확대되어 다시 처음의 부분으로 돌아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은 영이고 영은 생명을 준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몸의 육이 말씀대로 움직이지(실행하지) 못함은 영의 말씀이 몸의 육에 기름을 붓지 않은 까닭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말씀의 마음(뜻)은 지식적으로 알고 있지만 몸으로 실천할만한 동력의 영인 지혜가 없다는 점입니다.

말씀을 믿지만 '이 믿음'을 실행할 순종이 없습니다.우리는 모두 다 압니다.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순종하셨습니다.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순종의지는 우리가 첫창조의 자유의지에서 새창조의 순종의지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주님의 메세지입니다. 우리는 못합니다가 아닌 것입니다. 처음엔 못한다고 말했지만 끝내는 하고야 마는 의지력이 강조되어집니다. 

이처럼 의지가 필요한 육에는, 육을 가동시키는 영이 대단히 중요하게 지적됩니다.말씀이 영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아는 지식에만 정지되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의 가르침이 무엇인가 하는 '지혜의 영'이 몸을 움직이게 합니다. 말씀을 쓰고, 외우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말씀의 가르침을 깨달아야 하는 것(깨어있슴)입니다. 

이것이 등(몸)을 준비하고 기름(지혜의 영)을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들입니다. 가르침을 깨닫지 못한 처녀들은 가르침을 깨달은 지혜의 영인 기름을 준비 못한 어리석은 처녀라고 예수님께서 기꺼이 일러주십니다.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않는 것은 말씀의 가르침을 깨닫는 지혜의 영을 갖추지 못한 어리석음의 탓에 있습니다.

깨닫는 사람만이 행동합니다.사랑의 마음을 안다는 것만으로 사랑을 행동하는 몸으로 움직이지는 못합니다.사랑의 말씀에 대하여서는 받아들이는 믿음은 있지만 이 믿음을 실행하는 순종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제자(수도자, 사제)들은, 평신도 보다도 더 큰 책임이 있습니다.

몸은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이 몸을 하느님께 전적으로 봉헌한 분들이 바로 그들의 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의 몸이 말씀의 믿음에 순종(순명)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 자신의 몸을 봉헌한 일은 가짜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지혜는 간악한 영혼 안으로 들지 않고, 죄에 얽매인 육신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가르침을 주는 거룩한 영은 거짓을 피해 간다 <지혜서 / 월요일 제1독서 말씀에서> 했습니다.

또 거듭되지만 말씀의 가르침을 몸(등)에 동력으로써 붓지 않으면, 사랑의 행동(힘)에는 무기력해 집니다.말씀의 가르침을 깨닫는 기름은 죄,악에 얽매인 몸(육체 + 영혼)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제자들의 몸은 특히 하느님께 전적으로 봉헌된 몸(육체 + 영혼)으로써 정결함이 특별히 요청되어지며 육체가 죄, 악스로운 것들을 식별하지 못하면 그 '육체의 형상인 영혼'까지 죄악됨 때문입니다.

물론 평신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게시글 몸 신앙 참조). 죄,악을 식별하지 못함은 말씀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고 말씀의 영이 '그 몸'을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생명의 동력이 없는 몸은 순종을 행동할 수 없게 되어집니다.더구나 잘못된 가르침은 거짓을 형성하게 합니다. [거짓이란 진리의 반대를 말합니다(가톨릭 사전 참조)]

따라서 거짓된 사랑은 악을 미워하지 않고, 도리어 사랑을 미워합니다. 가짜 제자들의 몸은 거짓으로 가득차 있으며, 죄악된 몸은 여전히 거짓된 가르침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참된 지혜의 영에서 온 사랑은 거룩하여 정녕 죄,악을 피하기 때문입니다.그리고 말씀의 가르침인 지혜의 영이 그 몸에 머물고, 또한 몸을 움직이는 기름이 늘 준비됩니다.

죄, 악된 몸은 죄,악을 꾸짖지 못합니다. 죄,악을 식별하지 못하여 남들도 서로 죄,악되게 하며 구원적인 사랑,하느님의 사랑을 몸으로 실행하지 못합니다.자신을 내어주는 - 하느님께 봉헌된 그리스도의 사랑과 일치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말씀의 지혜)와 결합할 때 기름을 몸에 붓고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선성(善性)과 지혜당신 자신을 계시하시고 당신 뜻의 신비를 기꺼이 알려 주시려 하셨으며,이로써 사람들이 사람이 되신 말씀, 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 다가가고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도록 하셨다. <교리서 51>

하느님의 진리는 창조하신 세계를 질서 있게 다스리시는 당신의 지혜이다. 홀로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느님께서만 당신과 피조물의 관계에 비추어 모든 것에 대한 참된 깨달음주실 수 있다. <교리서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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