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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안의 2번 사람 [뽑혀서 - 심겨지다 = 믿음 - 순종]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10 조회수368 추천수0 반대(0) 신고

 

다음에 1번 사람과 2번 사람이 있습니다.

<1번 사람>

내키는 것을 한다. 내키지 않는 것은 안 한다. 이런 이유로 하고, 저런 이유로 안 한다.

현실의 처지에 따라 ㅡ 때가 엉켜 붙어 있다. 나약한게 아닌 혼탁스러움. (혼탁한 믿음)

<2번 사람>

내키는 것을 한다. 내키지 않는 것도 한다. 죽기 아니면 까무르치기로 한다.

현실의 처지와 무관 - 때라고는 묻어있지 않다. 순수하다. (순수한 믿음)

현실의 같은 처지에서 <1번 사람>에게는 믿음의 시련이 없습니다 - 때묻은 혼탁한 믿음.

현실의 같은 처지에서 <2번 사람>에게는 믿음의 시련이 있습니다 - 때없는 순수한 믿음.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면서 슬퍼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을 순수하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없어지고 말 황금도 불로 단련받습니다. 그러므로 황금보다 훨씬 더 귀한 여러분의 믿음은 많은 단련 받아 순수한 것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날에 칭찬과 영광과 영예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1베드로 1,6 - 7>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집이 없고, 돈도 없으며, 먹을 반찬까지, 아주 변변치 못 했습니다. 얼마를 벌면 사랑과 복음에 전부를 쏟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실이 당연히 어렵고 힘듭니다. 어느 날엔가 현실의 처지에 따라서 이런 생활을 바꿀까 하는 생각으로 믿음이 흔들렸지만 죽기 아니면 까무르치기로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무언가 느끼는게 있었습니다.자신의 믿음이 세속의 사정에 의해서 때가 묻지 않고 점점 더 순수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때묻은 돌맹이만한 믿음이 아니라 아주 순수한 믿음의 결정체가 자기 안에서 생김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혼은 더욱 빛나고 말씀의 깨달음이 샘물처럼 솟아 오릅니다. 예를들면 "믿음은 단련을 받아 순수해진다"는 것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때묻은 큰 돌맹이같은 믿음이 아닌 순수 그 자체의 아주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을 뿐입니다. 믿음이 단련을 받아 때묻지 않고 순수해지면 순수해 질수록, 아주 작은 결정체의 겨자씨만한 믿음으로 순수 그 자체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하시며 말씀을 주십니다. 정말 <뽑혀서 심겨질> 정도로 믿음의 순수한 결정체는 몸을 움직이게 합니다.시련에서 단련을 받아 <뽑혀서 심겨질> 정도로 몸을 실행하게 합니다. 뿐만아니라 이 말씀에 대한 참된 깨달음까지 얻게 되어 집니다.

믿음이 시련으로 단련을 받을수록 겨자씨만한 아주 작은 믿음의 순수한 결정체는, 말씀의 믿음과 이 믿음을 행동으로 순종하게 만듭니다. <뽑혀서 심겨라는 말씀에 - 정녕 뽑혀서 심겨지는 순종>이 함께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말씀과 순종 (말씀의 순종) 입니다.

여기서 혹여 이는 '몸의 단련이다' 하고 착각하지는 말아야 합니다.예수님의 말씀과 상관없는 단순히 행동만을 강조하는 행동주의가 아닙니다. 그래서 세속의 다른 말도 아닌,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바가 믿음이고, 이같은 믿음을 몸으로 실천한다는 순종인 것입니다. 

현실의 처지에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세속의 다른 말(처지)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하게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른다는 것입니다. 순종의지를 말합니다.

 

회개하면 용서하라 말씀하셨습니다.악행을 멈추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것에 참기만 하는 것은 결코 용서가 아닙니다. 참음과 용서는 차원이 다릅니다.악에 의한 고통과 죄에 따른 죽음을에 대하여 참는 것은 평화와 생명에 관한 성령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불의한 죄,악스러운 것들을 서로 공유하는 세속 현실의 다른 말입니다. 

용서에 대한 세속의 말이 아닌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함은, 그 믿음이 순수하지 못한 탓에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믿음이 때묻지 않고 순수하다면 <뽑혀서 심기는> 순종이 일어나서, 그 영혼은 정결해질 뿐만아니라 성령의 관심사를 실행해 낼 수 있게 됩니다.그것이 하느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행하시는 참된 용서의 의미입니다.

남들을 죄, 악에 속해 있지 말도록 해야 한다는 참된 깨달음이 중요합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을 잠가 버리기 때이다.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마태 23, 13)

죽어있는 믿음 = '죽은 이들'이고, 살아있는 믿음 = '산 이들'입니다. 

 

[본문 안의 내용 ; 사랑과 복음에 전부를 쏟기 때문이었습니다] => 왜 그러했는지를 검토해 보았습니다. 교리서에서 그 대답의 가르침을 보았습니다.  [<교리서 214 참조> ‘있는 자’ 하느님께서는 진리와 사랑이시다.  <교리서 51> 하느님께서는 당신 선성(善性)과 지혜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고 당신 뜻의 신비를 기꺼이 알려 주시려 하셨으며,이로써 사람들이 사람이 되신 말씀, 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 다가가고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도록 하셨다.]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 =>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다. 하느님께서는 진리이시다. (진리 - 지혜 - 복음) /// 사랑과 복음 =>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 다가가고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도록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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