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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10 조회수641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11월 10일 연중 제32주일
 
 
'Lord, '
the God of Abraham,
the God of Isaac,
and the God of Jacob;
and he is not God of the dead, but of the living,
for to him all are alive.
(Lk.20,37-38)
 

제1독서 2마카 7,1-2.9-14
제2독서 2테살 2,16─3,5
복음 루카 20,17-38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을 어떻게든 실천하려고 노력하다보니 상당히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 새벽 묵상 글입니다. 사람들은 제게 이런 말을 종종 하십니다.

“신부님, 새벽을 열며 묵상 글을 쓰시는 것이 정말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니 어떻게 매일 묵상 글을 10년 넘게 쓸 수가 있지요?”

사실 저 역시 1년이 넘어가니 글 쓰는 것이 점점 부담되더군요. 매일 다른 소재를 찾는다는 것도 힘들었고, 형편없는 글 솜씨가 더욱 더 바닥나는 것 같아서 힘들어졌지요. 글 쓴다는 것이 고역으로 생각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하면 새벽 묵상 글을 멈출까만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갈등으로 힘들던 어느 날, 식사를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어요.

하루 세 끼 식사를 하는 것에 대해서 고역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식사를 해야만 내가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왕이면 맛있는 식사를 찾는 것이지요. 반드시 먹을 수밖에 없는 식사라면 그 식사 자체를 즐기는 것입니다. 묵상을 하고 글을 쓰는 것 역시 내 영혼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고역이 아니라 이 자체를 즐겨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즐기면서 글을 쓰다 보니 벌써 13년이 넘었습니다.

운동을 즐기는 선수는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합니다. 공부를 즐기는 사람 역시 평생 공부를 즐거움으로 살게 됩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일들을 만약 단순히 돈벌이로만 인식하고 행동한다면 금방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지친 상태에서는 즐거워도 순간의 즐거움뿐이고, 일시적인 성공만을 거둘 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게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즐겨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삶은 고생만 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닌 행복하라고 주신 것으로 즐기면 즐길수록 기쁨과 행복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 섣부르게 판단함으로써 행복의 길이 아닌 불행의 길로 들어섭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희망이 되시는 말씀을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말입니다. 즉, 아브라함에게는 아브라함에게 맞게 활동하시는 하느님, 이사악에게는 이사악에게 맞게 활동하시는 하느님, 야곱에게는 야곱에게 딱 맞게 활동하시는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게는 어떻게 활동하실까요? 맞습니다. 지금 내게도 딱 맞게 활동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런데 무엇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냥 지금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면 그만입니다.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과 함께 하면서 지금을 즐겨보세요. 분명히 삶 자체가 달라집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십시오!!!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그 길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음미하는 여행이다(잭 웰치).

 
부활이 없다던 사두가이. 그러나 예수님께서 직접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성당에서의 미사.

 

 
지금 여기(‘Ambler’ 중에서)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미국 국가 대표로 활약했던 R.A.디키. 그는 야구란 후회를 관리하는 게임이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공의 속도에 변화를 주지 않은 것을, 타자가 쉽게 예측하도록 던진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계속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면 경기에 집중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이 손에서 떠나는 즉시 후회를 버려야 해요. 자신이 가진 힘 100퍼센트를 다음 투구에 쏟아야 하죠.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던질 수 있는 유일한 공이니까요.”

그는 요즘도 아쉬움이 들 때면 다짐한다.

“더는 ‘거기’에 살 필요 없어. ‘지금 여기’에 살면 돼.”

아주 단순한 진리입니다. ‘거기’가 아닌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나인데, 왜 늘 ‘거기’만 찾고 있었을까요? ‘지금 여기’가 가장 좋고 행복할 자리라는 것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십시오. 특히 산 이들의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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