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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산 이들의 하느님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신부님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10 조회수614 추천수9 반대(0) 신고

 

 

 

연중 제32주일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루카  20,27-38


 

 

산 이들의 하느님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잘못과 죄, 허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사랑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사랑을 멈추신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앞에 계실 것입니다. 주님은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고 우리도 영원에로 초대받았기 때문입니다. 천상의 영원한 삶을 지금 여기서부터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우리 삶의 여정은 과거, 현재, 미래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다 소중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미래를 소중히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주님께서 약속해 주신 천상의 삶,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과거에 묶여 삽니다. 성경의 인물을 생각하면 바리사이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 시대가 시작되었음에도 늘 모세의 율법을 들먹이고 옛 삶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쓴 소리를 들었습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 그때가 좋았는데 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허물에 대해서 이미 용서를 받았는데도 정말 용서를 받았을까? 의문을 제기하며 죄책감에 묶여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마침표를 찍어 주셨는데도 자꾸 물음표를 던지는 잘못을 또 범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미래가 없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미래의 약속된 천상이 없기 때문에 지금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최고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오늘이 있을 뿐입니다. 다른 어떤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는 듯 살아갑니다. 지극히 개인적이며 이기적입니다. 사두가이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삶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누리고 사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현실에 밝아 자기 잇속을 챙겼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웃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나의 부와 명예를 추구하며 자기만족에 빠진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주셨다”(1코린2,9)하며 약속된 부활의 삶을 확인시켜줍니다. 인간이 생각할 수조차 없는 훨씬 좋은 것을 준비해 놓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당신이 몸소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우리에게도 새 생명에 대한 희망을 안겨 주셨습니다. 따라서 부활에 대한 희망을 간직한 사람은 지금 여기서부터 부활의 생명을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미래의 성공에 잘못 집착해서 오늘을 인색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일을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그야말로 너무 짜게 살아서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잃어갑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과거를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고 미래를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면서 오늘을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약속된 미래가 오늘을 통해서 오기 때문에 미래를 희망하는 만큼 오늘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약속된 미래를 희망하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살았습니다.

 

 

오늘 1독서의 한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순교이야기는 죽음을 넘어서는 하느님에 대한 희망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줍니다. 사실 죽음은 인간의 지상논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주 하느님께는 죽음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하십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것은 사람이지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지상을 넘어 천상의 새 삶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지상은 중간역이고 천상이 종착역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있습니다.

 

 

부활을 믿는 이에게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견디어 냅니다. 그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그분의 약속을 믿기에 현세적인 것보다도 영적인 것에 더 마음을 씁니다. 현세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약속된 미래를 희망하는 만큼 가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늘을 희망하십시오. 그리고 씨를 뿌리십시오. ‘눈물로 씨를 뿌리면 곡식 단 들고 올 제 춤추며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농사를 잘 지으려면 지금 수확을 하고서 농토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거름을 주고 밭을 갈아엎으며 다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지력이 떨어져 다음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지금 고달프고 힘들어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합니다. 농사를 계속하려면 힘들다고 멈출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삶이 세속적인 삶과는 다르게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하더라도 풍요로운 결실을 희망한다면 해야 합니다. 영적인 거름을 주는 일을 반드시 해야만 합니다. 시간을 내서 성경을 읽고, 미사참례를 하며 기도시간을 반드시 챙겨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고, 약속에 충실하신 하느님으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천상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지상에서의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언제나 살아계시고 나도 영적인 사람으로 항상 그분 앞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이 산란해 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요한14,1). 이렇게 주님께서는 우리를 아버지의 집, 하느님의 나라, 영원한 새 생명에로 초대하셨고, “그분께서 명령하시면 뜻하시는 바가 모두 이루어지고 아무도 그분의 구원하시는 능력의 손길을 막지 못한다”(집회39,18).고 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는 그 약속을 믿고 사는 이에게 언제나 살아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산 사람들의 하느님이라는 말은 결국 깨어 있는 이에게 능력의 하느님으로 다가오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의지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것은 사람입니다. 다만 우리의 마음이 흔들비쭉일 뿐입니다. 이 시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으로 살아계신 하느님을 영접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늘의 문은 지금 여기 땅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믿고, 지금 여기서부터 영원을 즐겁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말고 또한 거기에는 축복된 새 삶이 펼쳐질 것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말고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을 지옥처럼 사는 사람은 내일도 지옥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에게 하느님은 죽은 분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오늘을 천국으로 사는 사람은 내일도 천국을 살게 되어있습니다. 그에게 하느님은 늘 살아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영원을’ 즐겁게, 희망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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