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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해야 할 일을 하지않는 - 믿음에 때묻은 종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12 조회수501 추천수0 반대(0) 신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와, 죽음에 속한 자들은 그것을 맛보게 된다......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지혜서, 제1독서 참조 / 화요일>

 

사람 = 하느님의 모상 / 모상; 본성의 모습에 따라입니다. 하느님의 본성 = 사랑과 지혜(진리,복음; 교리서 참조)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사랑의 모상'입니다. 예전의 게시글에서도 이미 말한 적이 있습니다.'하느님의 나라' 역시 '사랑의 나라'이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말하였듯이 사랑의 모상인 사람은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모습 (곧, 하느님의 사랑의 모습)을 지녀야 한다라고 묵상하였습니다.

[게시글; 내 안의 2번 사람]과 [게시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가짜 봉헌]에서와 같이 오늘의 지혜서는 상기의 2가지 게시글 외에도 최근의 게시글 모두의 묵상이 참되다고 믿습니다. 최근의 게시글에서, 그리스도와 결합하여야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과 일치(한 영)하고 그리스도의 힘으로 '사랑의 힘'에 무기력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람은 사랑의 모상이어야 한다는 묵상의 내용은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과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사랑에서 나신 사랑이신 분, 곧 예수님의 사랑]과 같은 모습을 갖도록 오래 전부터 사랑의 사람, 사랑의 모상으로서 하느님의 사람을 창조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세상에서 오는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의 모습인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이셨던 예수님의 사랑의 모습입니다. 이처럼 사랑의 모상은 선악과 열매를 통해서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는 이미 작정하셨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안에 하느님께서 미리 마련해 두셨던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주님과 한 영이 되게 하셨습니다.교회 교리서 가르침에서 살펴보면, [ 사람들이 사람이 되신 말씀, 곧 그리스도통하여 + 성령 안에서 성부께 다가가고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도록 하셨다.<51 참조>]라고 합니다. (최근의 게시글 참조)

오늘 지혜서의 말씀에서도 이러합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입니다.하느님의 본성이신 사랑과 진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랑의 나라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하는 "어린 양의 혼인예복"이다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육과 영)과 결합한 사랑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오늘 지혜서에서 잘 볼 수 있듯이, '살아있지만 실상은 죽어있는' 죽음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회칠한 무덤과 같은 이들은 사랑을 미워하고 죄,악스러운 것들을 서로 공유했던 사람들입니다.사랑의 나라는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 때문에 미움을 받아 죽었지만 실상은 살아있는 예수님의 사랑과 진리의 생명에 속한 자들입니다. 

사랑과 복음(진리, 지혜) 때문에 '제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예수님의 벗이 됩니다. 사랑의 사람(하느님의 모상)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각자 "제 십자가"에서 사랑의 힘이시고 진리의 힘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몸으로 결합)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함으로써 사랑의 나라에 선택되어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생명에 속한 자들'입니다.

영혼은 육체의 형상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죄,악된 육체는 죄악된 영혼과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게시글; 몸 신앙) 이 죄악된 영혼으로 죽음에 속한 자들이 됩니다. 육체는 영혼을 통해서 생명력을 얻게 되는데 죄악된 영혼은 생명력이 아니라, 그 반대로 이미 죽음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용서는 구원의 힘이 있는 용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그리고 그분 말씀의 가르침에서 용서의 은총은 '구원의 힘을 가진 용서'이다는 참된 깨달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구원이란 죄,악을 쳐부시고 죄,악의 종살이에서 사람을 해방시키심이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살과 피에 의해서 자기 안에 있는 죄와 자기 곁에 있는 악의 여러 죄,악스러운 것들을 서로 공유하도록 하신게 아니라, 죄악을 힘써 피하도록 하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죄, 악을 힘써 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것이 죄, 악을 쳐부시어 죄,악의 종살이에서 우리가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악된 육체는 죄악된 영혼으로써 죽음에 이르지만,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예수님의 사랑의 삶을 따라 일치되면, 회개하는 죄인으로써 예수님께로부터 구원의 용서를 받았다는 것을 자기 몸으로 하느님의 생명을 분명히 드러내삶인 것입니다. 이 육체의 형상이 바로 생명력을 지닌 영혼이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하느님께서는 참된 깨달음을 주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교리서 216 참조) - 지난 최근의 게시글 참조 -

그리고 죄, 악에서 해방되는 구원적인 사랑의 차원에서 우리도 용서를 할 때는 육적인 참음이 아니라 영적인 구원의 모습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용서'를 닮아가야 하는 것입니다.만일 용서에 구원의 힘이 없다면 인간이 자유남용으로 죄를 범한 범례의 '용서의 자유남용'일 뿐입니다.

분명하건대 예수님의 가르침이신 용서는 은총입니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게 아닌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써 용서이다고 믿는다면 죄, 악을 힘써 피하는 구원적인 용서를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죄,악을 피해야 하는 것과 상관이 없는 참음이다고 믿는다면 내키지 않는 것은 안 하는 것으로, 이 경우에는 죄악의 때가 엉켜붙은 혼탁한 믿음에 불과합니다.(게시글; 내 안의 2번 사람 참조)

예수님의 말씀을 보십시오. 왜 죄짓거든 꾸짖어라 하셨으며 회개하면 용서하라고 하시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이는 영적인 소경입니다.예수님의 용서는 죄, 악과 상관이 있으며 꾸짖고 회개하게 하는 구원적인 용서인 것입니다. 영적인 소경에 의해서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남들까지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늘나라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 참된 깨달음의 가르침을 분별하면서 세속에서 오는 온갖 거짓된 때를 씻어내는 순수한 믿음을 단련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때묻지 않는 순수한 믿음은 겨자씨와 같이 아주 작아 집니다. (게시글; 내 안의 2번 사람)

순수한 믿음은 비록 작지만 자신의 (공동체의) 몸을 불순종에서 순종의 몸으로 믿음을 움직이게 하는 피앗이 됩니다.믿음의 순종은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는 티없는 깨끗한 마음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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