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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왕 버려진 몸으로 살고있다는 점을 모른다 [순수한 믿음]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12 조회수421 추천수0 반대(0) 신고

 

미천한 이들은 자비로 용서를 받지만, 권력자들은 엄하게 재판을 받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을 듣고, 지혜를 배워 탈선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지키는 이들은 거룩한 사람이 되고, 거룩한 것을 익힌 이들은 변호를 받을 것이다.그러므로 너희가 나의 말을 갈망하고 갈구하면 가르침을 얻을 것이다. <지혜서 참조 / 수요일>

오늘 지혜서에서 미천한 이들과 권력자들에 대한 두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미천한 이들은 권력자(세력가)들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세상의 일에는 어쩔 수 없이 이같은 관계는 아니다고 부정하여도 엄연한 현실적입니다. 정치, 경제, 종교등 모든 부분에서 실재한다는 뜻입니다.

종교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실적인 일입니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에 비해서 사제들과 수도자들의 책임은 더 있다는게 올바른 판단이 됩니다.종교에서 권력이란 타고나는 것이 아니며 주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다고 지혜서는 밝히고 있듯이 그들의 책임도 한층 더 있슴은 당연한 것입니다. 미천한 이들보다 더욱 미천한 이들도 또한 실재합니다.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들, 버려진 이들이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그분의 십자가 피로 거룩해 졌습니다. 원래는 우리 자력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죄, 악을 쳐부시어 십자가의 공로에 의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혹여 누구라도 죄,악 없는 사람을 견주어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할런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있을 수 없다며 죄,악을 옹호하기도 합니다.

물론 사람은 자신 스스로의 자력에 의해서 '나 홀로 수덕주의'에 속한다고 하여도 예수님의 피가 없이는 그렇게 불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십자가의 살과 피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인간의 힘이 아닌 탓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죄,악은 쳐부수어졌고 죄,악의 종살이에서 결코 매이지 않게 되어졌다 하겠습니다.그런즉 우리는 얼마든지 새로운 사람이 되어서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전에는 '이왕 버려진 몸의 창녀'들이었습니다.창녀가 말하길 '이왕 버려진 내 몸'이니 이왕 버리면서 살겠다면 새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새로운 내 몸이니 새롭게 살겠다면 우리 중에 누가 그 창녀를 예전의 더러운 그 사람으로 여길 수 있을까요. '내 몸이 새롭게 되었다' 라고 여기는 사람만이 이제는 새롭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죄,악에 몸 담았던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 입니다.예수님의 살과 피로 회개하여 용서를 받아 새로운 몸이 되었다면 이제는 죄,악을 피하면서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 죄,악은 그 몸에서 떠나지는 않겠지만 이왕 버린 몸 그대로 버리며 살겠다는 사람하고는 크게 다릅니다. 새로운 사람의 몸에는, 그 몸을 깨끗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은총과 그 몸을 계속해서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의 은총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또 한편으로 마찬가지의 일이 있습니다. 믿음에 때를 계속 묻히며 사는 사람과 믿음에 묻혀진 때를 벗기면서 정말 순수한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새로운 사람은 그 몸이 달라 집니다.예수님과 성령의 작용으로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새롭게 살려는 사람은 거룩하고 의롭게 살고자 죄, 악을 피하려는 생명력이 그 몸 안에 존재한다고 할 것입니다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몸(육과 영)이 있는지라 그리스도 십자가의 힘이 작용하여 죄,악을 힘써 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죄,악을 쳐부셨다는 것이지 죄,악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다음의 말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셨다면 인간은 죄,악을 짓지 않는다 하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인간적으로 말하지만 만약에 인간이 죄, 악을 짓지 않고 살려면 이 세상을 틀림없이 떠나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에 의해서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인간은 새로운 사람(그리스도인)들을 아주 많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로마 8, 19; 22 참조)

미천하고 버려진 이들은 그자신들의 진통에 무관심(방관)하는 종교의 권력자들을 조금도 바라지 않습니다.악에 의한 고통과 죄에 따른 죽음으로 '평화와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십자가 살과 피, 그리스도의 영은 사랑에 방관적인 그들의 욕망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죄, 악과 때묻은 믿음의 '이왕 버린 몸으로 계속 사는 사람'들에게서는 멀리 피하고, 대신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평화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랑의 자녀 (하느님의 자녀)들에게는 희망을 지닙니다. 그러한즉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기도로 그리스도적 고난에 참여하도록 하는 소명을 주셨습니다.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요한 17,15; 18 참조) 하셨듯이 세상을 떠나는게 아닙니다. 도리어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가짜 제자들은 이 소명에 책임을 다하지 못합니다. 죄악에 물들고 믿음에는 세속의 때가 엉켜붙어서  사랑의 힘에 무기력해져 있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죄와 자기 곁에 있는 악을 자기 죄,악 때문에 분별하지 못하고 종교적 권력에 열정을 쏟기도 하는 것입니다. 순수한 믿음이라고는 없고 여러 욕망의 때가 더덕더덕 자기 믿음에 달라 붙어져 있습니다.예수님 말씀에 믿음의 순종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8, 19)하신 가르침을 깨닫지 못합니다.이는 참된 깨달음을 주지 못하는 사제들에게도 그 책임이 없지는 않습니다.'나 홀로 수덕주의'에 빠져 과연 그리스도의 고난의 잔에 예수님과 일치될 수는 없다고 할 것입니다.진리로 거룩해진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진리의 참된 깨달음으로 거룩해진다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이왕 버려진 몸으로 살고 있다는 것은 진리의 참된 깨달음이 자기 육체에 없다는 것이 됩니다.진리의 영(말씀의 영)이 자기 육체에 생명력으로 가동하지 못하여 몸의 순종이 없어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육, 영)을 강생에서부터 십자가까지 당신의 몸으로 받으셨습니다. 

성모신심은 강생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결합하고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일치하는 것이다라고 개인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자신을 내어주신 사랑, 그리스도의 몸'은 강생에서 십자가까지 끊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한 사람만 이왕 버려진 몸이 아닙니다.  사랑의 힘으로 죄,악을 피하고 버려진 이들과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예수님과 결합하며 버려진 이들과 일치한다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믿음의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는 다른 남들까지 생명의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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