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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지금도 열에 아홉 격인 우리는/신앙의 해[357]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13 조회수416 추천수1 반대(0) 신고

 

                                                                     그림 : 원주 교구 용소막 성당

어떤 이가 건강을 위해 아침 식사 때 꿀 한 숟가락을 먹으면서도 이렇게 하느님께 기도한단다. “이걸 위해 당신은 엄청난 벌을 수 없는 시간 날게 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저 수많은 꽃을 피게 하셨고 비가 오면 벌들이 날 수 없기에 태양도 비추셨습니다.” 그 꿀 한 숟가락에 하느님의 엄청난 사랑이 담겨 있다는 감사의 고백이리라.

모든 은총마다 감사가 따라야 한다. 그러면 더 큰 축복으로 인도될 게다. 감사는 은총을 붙잡는 행위이기에. 불만이 아홉이고 감사가 하나이더라도, 그 하나를 기억하며 기도해야만 한다. 그러면 신앙생활도 차츰 바뀌리라. 기쁨이 아홉, 불평은 하나인데도 불평만을 잡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언제라도 삶의 시각이 바뀔 게다.  

예수님은 나병 환자 열 사람을 고치셨다. 당시에 나병이 어떤 병이었는지는 나았더라도 공인을 받아야 했기에 예수님은 ‘사제들에게 몸을 보여라.’라고 하셨던 게다.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사제의 선언을 들었을 때 그들 심정은 어땠을까? 그런데 감사를 드린 이는 열에 단 한 사람뿐, 그토록 애원한 그들이었건만 그 아홉은 없었다.  

우리는 지금도 상상할 수 있다. 그들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을 거다. 그러한 판단을 내린 사제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렸으리라. ‘이젠 병이 나았다. 이젠 나병 환자가 아니다.’ 하는 생각이 평생 잊을 수 없는 가족을 떠올리면서 그들의 가슴을 부풀게 했을 거다. 열에 아홉의 그 여기까지가 지금의 우리일 수 있는 한계였다.

그들은 왜 예수님께 가지 못했을까? 아마도 너무 기뻐서? 벅찬 감정에 취해 순간적으로 예수님을 잊어버렸기에. 아니면 병이 나은 것에 너무 놀란 나머지 판단력을 상실했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그들은 은혜를 망각한 이가 되었다. 은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누구라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아무리 작은 은총이라도 감사드리지 않으면 더 큰 축복을 스스로 가로막게 됩니다. 그들 모습이 지금의 우리일 수도. 

예수님에 비하면 우리란 누구인가? 그분의 종이 아닌가. 밭 갈고 양치고 들에서 돌아와서도 주인을 위해 허리띠를 매고 시중들어야 할 우리이다.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야 할 그분의 종이다. 더더구나 받은 분부를 죄다 다 하고서도,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또 말해야만 할 그러한 우리이다.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는 미사 때마다 ‘감사송’을 바치면서 기도드린다.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이처럼 감사는 하느님께 드려야 할 첫째 의무이자 마땅한 도리이다. 지금도 열에 아홉 격인 우리이다. 그 하나라도 되자고 이 시각 그분께 감사를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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