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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최승정 신부님 성서백주간2 제24회 메뚜기 재앙(시즌2 끝)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15 조회수623 추천수0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제24회 메뚜기 떼: 탈출 10,1-20

 

수사적 의문에서 우리는 어떤 야훼의 인내의 한계를 이제 보기 시작합니다.

"내 백성을 내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여라."

여기서 예배한다는 말은 조금 다른 표현으로 섬기게 한다. 또는 공경한다라는

표현과도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탈출 10,4: 내가 나의 백성을 내보내기를 거부한다면, 나는 내일 너의 영토 안으로

                메뚜기 떼를 끌어들이겠다."

 

그 불순종에 대한 야훼의 경고는 메뚜기 떼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아르베'라고 합니다.

우리 말로는 메뚜기 떼라는 복수의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데 여기서는 단수가 쓰여져

있어서 따라서 집합적입니다. 영어에서도 왜 단수랑 복수랑 같은 경우가 있잖아요.

 

예를 들어 fish 뭐 이런 단어들은 fishs 이러지 않고 그냥 집합적으로도 그냥 생선 떼,

생선 여러 마리도 그냥 fish 라고  쓰듯이 여기서도 어떤 떼의 그와 같은 개념입니다.

이 메뚜기 떼에 관해서는 그 메뚜기 떼의 재앙은 고대 사회에 있어서 특히 어떤 농업

사회에 있어서 아주 무서운 재앙이었던 거 같애요.

 

여러분들 왜 펄벅이라는 사람이 쓴 대지라는 소설을 보면 마지막에 메뚜기 떼가 와서

모든 수확을 완전히 싹 쓸어가는 그런 어떤 무서운 장면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실지로 고대 근동이나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그와 같은 일들이 빈번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1열왕 8장에 나오는 솔로몬의 기도 이게 어떤 기도냐 하면은 솔로몬이 야훼의

성전을 세우고 그 성전에 이제 계약의 궤가 들어가는 장면입니다. 그 장면에서 솔로몬

긴 기도를 하는데 그 기도에서 어떤 내용이 등장하냐 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

합니다.

 

*솔로몬의 기도(1열왕 8,37-39)

이  땅에 기근이 들 때, 흑사병과 마름병과 깜부깃병이 돌거나 메뚜기 떼와 누리 떼가

설칠 때, 적이 성읍을 포위할 때, 온갖 환난과 온갖 질병이 번질 때, 당신 백성 이스라엘

이 개인으로나 전체로나 저마다 마음으로 고통을 느끼며, 이 집을 향하여 두 손을 펼치

고 무엇이나 기도하고 간청하면, 당신께서는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으시어 용서해

주시고 행동하십시오. 당신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아시니, 그 모든 행실에 따라 갚아

주십시오. 당신만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십니다.

 

간절한 기도지요? 이랬을 때 당신께서는 나의 백성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나의 백성을

도와 주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이 집을 당신께 봉헌합니다라는 내용인데 거기

에서도 메뚜기 떼가 상당히 전반부에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식으로 얘기 하면은 뭐가 될까요? 우리가 탁 생각하면, 나에게 일어날

있는 큰 재앙, 첫째 뭐뭐를 하지 말게 하시고. 첫 번째로 생각나는 것. 아, 그런 거

없어요? ^^*~~~ 뭐든지 사람이 두려워하는 거 있잖아요. 교통사고, 암, 뇌질환,

심장병, 사망 원인이 쭉 이렇게 있잖아요. 그런 것들 일어나지 말게 하시고. 우리가

머리 속으로 생각날 꺼예요.

 

그런데 솔로몬은 뭐부터 생각난 겁니까? 흑사병, 마름병, 깜부깃병, 물론 기근,

그리고 나서 메뚜기 떼. 굉장히 이와 같은 재앙이 빈번했고 그리고 굉장히 그 어떤

재앙의 피해가 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 그리고 여기서 "너희 영토 안으로" 그런데 어떤 느낌이냐 하면, 하나의 국경의

의미입니다. 경계 안으로 메뚜기 떼를 들어오게 하겠다라는 구역의 의미이지요.

파라오의 구역에 하느님께서 메뚜기 떼를 몰고 오겠다라는 그와 같은 재앙을

예고를 하는 겁니다.

 

*탈출 10,5: 메뚜기들이 온 땅을 덮어 땅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건 정말 성경 번역하신 분이 아주 기가 막히게 의역을 하신 겁니다.

본문은 뭐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그리고 그것은 그 땅의 눈을 덮었다. 그리하여 그것이 그 땅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여기서 그것은 당연히 메뚜기 떼겠죠? 메뚜기 떼가 땅의 눈을 덮었다. 그리하여

그것이 그 땅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좀 이상한 표현입니다.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데 같은 표현이 민수기 22장에서도 등장합니다. 모압 임금 바락이

예언자였던 발라암에게 와 가지고 뭐라고 얘기하냐 하면,

 

"보라, 어떤 백성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왔다.

보라, 그가 그 땅의 눈을 덮었다."라고 얘기합니다. 따라서 두 개를 연결 시켜서 생각해

보면, 여기서 눈이라는 것은 그 땅의 어떤 표면을 얘기하는 것 같다. 눈은 정말 이

눈을 이야기합니다. 히브리 말 단어 하고 똑같습니다. 이 눈을 얘기합니다.

땅의 표면을 이야기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메뚜기 떼들이 그럼 그 땅의 눈을, 표면을 가득히 덮을, 메뚜기 떼로 가득한

그런 엄청난 수의 메뚜기 떼들이 무엇을 할 것이냐? 우박으로부터 구해진 그리고

너희를 위해 남겨진 나머지들을 먹을 것이다라고 얘기합니다. 이거는 9장 32절에서

언급한 밀과 귀리를 포함한 모든 작물들을 이제 메뚜기 떼들이 먹어 치울 것이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표면은 이렇습니다. 조금 더 직역하자면은, 메뚜기 떼들이 온 땅을 덮어

땅의 눈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박의 피해를 입지 않고. 거기다

 우리 말 성경에서는 표현이 이상하기 때문에 의역하면서 넘어 갔습니다.

 

"너희들을 위해 남은 것들을 먹어 버리고 들에서 자라는 너희들을 위한 나무들도

모조리 먹어 버릴 것이다."

 

따라서 너희들을 위해, 너희들을 위한 이 동일한 표현이 히브리 말 본문에서는 두번

연속적으로 등장하는데 그것을 모두 메뚜기들이 먹어 버릴 꺼라는 겁니다. 따라서

너희들을 위한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두 번이나 반복되서 사용

했다는 것은 의도적인 그와 같은 표현이라는 뜻입니다.

 

* 탈출 10,6: 야훼의 경고가 한층 더 상승합니다. "또 너의 궁궐과 네 모든 신하의

                   집과 모든 이집트인의 집이 메뚜기로 가득 찰 것이다."

 

앞에서도 이런 재앙이 있었지요? 기억하십니까?

개구리들이 사방으로 뛰어 오르는 그와 같은 건데 그런데 그냥 침상 위로 올라 오고

이 정도가 아니라 모두 메뚜기로 가득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되는 거죠?

"너의 아버지와 너의 조상들이 이 땅에서 살기 시작한 날부터 오늘날까지 일찍이 보지

못한 일이 될 것이다."

 

앞서서는 어떻게 얘기했습니까? 이집트가 이 땅에 생긴 이래로. 국가가 생긴 것을

앞선 재앙에서 얘기했는데 여기서는 어떤 거지요? 너희 조상들이 이 땅 위에서 국가를

세우는 것보다 훨씬 더 앞에, 이 땅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로 보지 못한 유래 없는 일이

될 것이다라는 그와 같은 표현입니다.

 

이것은 앞선 내용과도 좀 연결이 됩니다. 모세에게 뭐라고 얘기합니까? 

"너의 아들과 너의 아들의 아들들에게" 여기서는 "너의 아버지와 너의 아버지의

아버지에게" 단지 모세에게 얘기했을 때는 이스라엘의 미래에 관해서 얘기하는

겁니다. 너의 아들과 아들들의 아들들에게.

 

하지마는 여기서 파라오에게 얘기할 때는 과거에 관해서 얘기하는 겁니다.

"너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에게"  그리고 나서 모세는 돌아서서 그렇게

파라오에게로부터 나옵니다.

 

여기서 돌아선다는 말은 단지 어떤 동작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선다는 말은

단지 어떤 동작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내면적인 반목, 내면적인 거부의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 탈출 10,7: 파라오의 신하들이 이제 그에게 이야기합니다. "저자가 언제까지

   우리에게 올가미가 되도록 내버려 두시렵니까? 저자들을 내보내시어 주 그들의

   하느님께 예배 드리게 하십시오. 이집트가 망한 것을 아직도 모르십니까?

 

제가 아무래도 좀 저기, 성서 공부를 한 사람이니까 잘난척 하는 거를 좋아합니다.

그러다보니까 자꾸 직역을 하게 되는데 이제 우리 말 성경을 번역하신 탈출기를

어떤 신부님께서 하셨는지 제가 개인적으로는 정보가 없습니다만 신부님께서는

신자들이 그것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 말로 많이 의역을 하셨어요.

본문의 의미를 살려 드리느라고 자꾸 이런 짓(?)을 합니다. ^^*~~~

예, 10장 7절,

 

 

 

뭐가 보이시지요? 아까 제가 밑줄 치라고 그랬는데 ^^*~~~  언제까지.

앞에서는 언제까지 니가 나에게 순종하지 않을 셈이냐? 라고 야훼가 자신의 인내의

한계를 드러냈다면, 여기서는 파라오의 신하들이 언제까지. 이제 점점.

 

따라서 이 여덟 번째 재앙에서는 점점 야훼도 그렇고 이집트도 그렇고 파라오의 탐욕,

집착 이런 거를 참는 데에 한계에 오르고 있는 겁니다. 언제까지. 그리고 나서 우리 말

성경은 올가미라고 번역을 했는데 '모케쉬'라는 그와 같은 히브리 말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탈출기 23장, 34장, 판관기 2장, 8장 뭐 이런 데 등장하는데 미끼, 함정, 덫.

 

미끼라는 게 그런 거 아니예요? 그런거, 쥐덫 같은 거 보면은 그걸 먹으면은 좋을 것

같은데 그걸 잡는 순간 내가 붙잡히게 되는 좋지 않은 그와 같은 일이잖아요.

옛날에도 어떤 짐승을 잡을 때 그런 거를 실지로 그런 방법을 원주민들이 쓴다고 그래요.

아마 남미쪽 어딘거 같은데 원숭인가 뭔가를 이렇게 잡으려고 그러면은 그런 독 같은

데다가 입구를 좁게 하고 그 안에 먹을 걸 놔 둔대요.

 

그러면 그 안에 와서 걔가 그거를 먹고 그리고 나서 못 빠져 나온대요. 몸이 뚱뚱해져서

배가 나와서. 그 정도까지 뚱뚱해지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그런 식으로 짐승을 잡는.

아마 그런 것들이 이런 '모케쉬'라는 단어의 개념이 아닌가 실습니다. 그거를 하면은

좋을 것 같지만 그것 때문에 커다란 불행이 생기는 그와 같은 의미입니다.

 

판관기에서 그 단어가 쓰였을 때는 판관기 2장 또는 8장에서 그 단어가 쓰였을 때는

주로 어떤 뜻으로 쓰이냐 하면, 이집트의 가나안 땅에 들어온,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

온 이스라엘이 그런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이방신을 섬기는 겁니다. 그랬을 때 그런

미끼, 덫, 함정이라는 단어로 그와 같은 이방신을 섬기는 행위 그 위험을 경고합니다.

 

자, 여기서 파라오의 신하들이 이와 같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겁니다. 우리 안에

이렇게 나쁜 일이 생기는데 그 모든 이유는 쟤네들이 여기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파라오의 신하들은 파라오에 관해서 얘기하지 않습니다. 파라오의 잘못에 관해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인들이 이렇게 나쁜 일들을 여기다 몰고 오게 됩니다.

그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왜 옛날에 좋지 않은 시어머니들이 항상 하는 얘기가 무슨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서 그렇다고 며느리 구박하는 그런 어떤 악행을 하는 그런 시어머

니들이 있잖아요. 여기서도 그런 비슷한 개념입니다. 쟤네 때문에 이런 나쁜 일이 생기

니까 쟤네들을 내보내십시오. 상황 파악이 아직도 안 되는 거예요.

 

나쁜 일이 생기는 이유는 뭡니까? 파라오의 심장의 완강함, 그 완고함 때문에 생기는

건데 그런데 이스라엘 쟤네 때문에 나쁜 일이 생긴다. 따라서 쟤네를 내보내십시오

라는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따라서 더 이상 이스라엘과 함께 살고 싶지 않아하는

그와 같은 모습입니다.

 

* 탈출 10,8: 신하들의 요청에 따라 모세와 아론이 다시 파라오에게 돌아 옵니다.

그리고 파라오가 그들에게 말합니다. "가서 주 너희 하느님께 예배 드려라. 그런데

갈 사람은 누구 누구냐?"

 

* 10,8: 가서 야훼 너희 엘로힘을 섬겨라. 누구와 누구가 가는가?

앞선 대목에서는 파라오가 보내주겠다고 하는 대목들이 있었지만 하지만 사실은 보내

줄 마음이 전혀 없었던 거 같애요. 그런데 여기서는 이제 물어 봅니다. "야, 인제 가!

그런데 누구 누구 갈꺼야?" 그러니까 보내 줄 마음이 이제는 조금 있는 거 같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우리가 왜 자꾸 조건을 다는 거지요?

 

"누구와 누구  갈꺼야?" 모든 사람을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 조금 조건을 달아서

제한하는, 모두를 보내주지는 않으려는 그와 같은 파라오의 의도를 알게 됩니다.

그러자 9절 모세가 대답합니다. "저희의 아이들과 노인들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아들딸과 함께 양 떼와 소 떼도 몰고 가야겠습니다. 저희가 주님의 축제를 지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 비슷한 장면이 창세기 50장에서도 나옵니다. 여기서 모세의 대답은 아이들과

노인들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곧 연령에 관계 없이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양 떼와  소 떼를 데려가겠습니다. 즉 모든 소유, 모든 재산을 다 갖고 가겠습니다

라는 그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59장에서는 야곱이 죽자 요셉이 야곱을

장사 지내기 위해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그때와는 조금 다릅니다.

 

* 창세 50,8: 그리고 요셉의 온 집안과 그의 형제들과 아버지의 집안

사람들이 올라갔다. 그들의 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지방에

남겨 두었다.

 

창세 50,5에서 요셉이 당시의 파라오에게 약속을 합니다. 아버지만 장사지내고

돌아오겠습니다. 따라서 돌아올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아이들

이랑 재산은 두고 가는 거죠. 그것까지 가지고 갈 필요는 없는 거지요. 따라서

앞에 이런 선례가 있는데 그런데 모세는 뭐라고 얘기합니까? 아이들도 다 데리고

가고 재산도 양 떼와 소 떼도 다 갖고 가겠습니다. 그러면서 모세가 이유를 댑니다.

"저희가 주님의 축제를 지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야훼의 축제이기 때문입니다."

앞선 경우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간 거는 야곱을 장사지내기 위해서

간 거여서 그렇게 가도 됐지만 나는 야훼의 축제 때문에 갑니다. 따라서

야곱이 간 경우와 내가 간 경우는 다릅니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자 파라오가 대답을 하는데, 굉장히 어려운 문장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우리 성경은 번역을 정말 잘 하셨어요.

 

* 탈출 10,10-11: 그러자 파라오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아무리 주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다 한들, 내가 너희와 너희 어린것들을 함께 내보낼 성싶으냐? 너희가 흉계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어림도 없다. 장정들이나 가서 주님께 예배 드려라.

이것이 너희가 바라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쫓아냅니다. 그 파라오의 언사를 직역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야훼가 그렇게 너희들과 함께 있기를" 되게 이상하지요? 야훼가 그렇게 너희들과

함께 있기를. 어떤 정도로? "내가 너희들을 너희들의 어린아이와 함께 보낼 정도로."

야훼가 너희들과 함께 있기를. 이거는 대단히 비꼬는 말입니다. "아, 그래! 하느님이

그렇게 너희와 함께 하셔? 아이고, 그랬어!" 이 정도로 굉장히 비꼬는 말투입니다.

"내가 너희들을 보낼 정도로."

 

따라서 야훼가 이렇게 함께 있어서 내가 너희를 보내겠다는 겁니까? 안 보내겠다는

겁니까? 안 보내겠다는 것에 대한 아주 강한 부정을 상대방에게. 이런 거죠. 우리들이

누구한테 정말 듣기 싫은 소리를 이런 말 하잖아요. "아이구! 그래, 그렇게 잘 사세요.

그렇게!" ^^*~~~ 이거는 정말 잘 살라는 뜻입니까? 아니죠.

 

그래도 "잘 사세요!" 그 얘기 한 문장만 딱 보면은 아, 상대방이 정말 상대방을 축복해

주는 거 같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정반대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의미입니다. "보아라, 악함이 너희들의 얼굴들 앞에 있다. 그렇게는 안 된다."

 

이 문장도 조금 이상합니다. "악함이 너희들의 얼굴들 앞에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그들이, 그러니까 모세가 있는데 모세의 얼굴에 악함이 이렇게 씌어져 있다. 너는 나를

속이고 있다라는 그런 뜻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너희들 그렇게 보면은

악한 일이 너희한테 생길 줄 알아라라는 뜻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주석가들의 의견이

서로 일치하지 않습니다. 굉장히 조금 복잡한 그런 문장이기 때문에.

 

또 어떤 사람은 요 악함이 고대 점성술에서 등장하는 어떤 별의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악한 별이 너희들 얼굴들 앞에 있다. 그러니까 너희는 거짓말 하고 있는 것이 분명

하다. 또는 어떤 주석가는 이거를 악함이라는 단어가 이집트의 '라'의 이름이랑 비슷해

요. 이집트의 신인 '라'가 너희들의 얼굴들 앞에 있다. 내가 너희들이 거짓말 하는 거를

모를 줄 아느냐? 이런 어감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거는 뭐냐? 파라오가 나는 너희들이 나를 속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는

뉘앙스로 그런 어감으로 이 문장을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허락하지 않습니다.

"장정들은  제발 가라." 장정들만 보내는 겁니다. 노인과 어린애들 양 떼와 소 떼 또는

여자들은 보내지 않는 겁니다.

 

앞선 모세는 여성들은 언급하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장정들은, 그리고 야훼를 섬겨라.

야훼께 예배하여라. 왜냐하면 너희가 그것을 찾고 있기 때문에 가서. 우리도 제사 드릴

때 보면은 남자만 지내지 않느냐? 너희도 항상 그렇게 하지 않느냐? 그러니까 제사드릴

그 사람들만 가라. 그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자, 그러자 12절, 파라오 앞에서 그들은 쫓겨나지요?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결국 야훼는 자신이 예고한 것을 이제 실행에 옮깁니다. 야훼는 모세로 하여금 그의

손을 이집트 땅 위로 뻗도록 명령합니다. 그리고 그 뻗는 이유가 뭐냐하면은 우리 말

성경에서는 그냥 이집트 땅 위로 뻗어라라고 얘기했는데 이것도 좀 생략이 돼 있습니다.

내 손을 이집트 땅 위로 메뚜기 떼를 불러 일으키기 위하여, 이제는 메뚜기 떼를 향해

그렇게 뻗어라라는 것이 그 어떤 본래의 문장의 의미입니다.

 

예, 그렇게 뻗은 야훼의 명령의 그와 같은 목적은 12절 나머지 부분에서 이중으로 묘사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메뚜기 떼가 이집트 땅으로 몰려와 땅의 풀을 모조리, 우박이

남겨 놓은 것을 모조리 먹어 치우게 하여라. 따라서 메뚜기 떼는 여기서 문장의 의미는

그겁니다. 이집트 땅 위로 올라온다라는 의미에 있습니다. 따라서 메뚜기 떼는 땅 밑에

이렇게 숨어 있다가 이렇게 땅 위로 등장하는 것처럼 그런 식의 어떤 표현으로 여기서는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모세가 이집트 위로 지팡이를 뻗자 주님께서 그날 온종일, 그리고 밤새도록

그 땅으로 샛바람을 몰아칩니다. 재미있는 것은 모세가 지팡이를 뻗자 야훼가 일을

합니다. 앞서도 계속 얘기하지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관계는 하느님은

명령하고 예언자들이 노동을 해야 되는데, 일을 해야 되는데 이게 신과 인간의 일반적인

관계인데 아주 웃기는 게 모세가 지팡이를 뻗자 하느님이 일을 합니다. 그냥 하느님이

하면 되는데 ^^*~~~ 꼭 모세가 지팡이를 뻗어야 되요.

 

그 다음에 또 이상한 거는 하느님이, 야훼가 모세에게 명령하는 거는 손을 뻗으라고

명령했는데 모세는 자꾸 지팡이를 뻗습니다. 손과 지팡이가 여기서 두 가지 십볼이

서로 혼용되는 그와 같은 내요입니다.

 

'밤새도록' 우리 말로 직역한다면은 '그날의 그 모든 낮과 그 모든 밤에' 로 밤새고 뭐를

한 겁니다. 여러분들 마지막으로 밤새고 해 보신 일이 뭡니까? ^^*~~~ 수 년 전에.

저는 마지막으로 밤 샌 게 한국이랑 스위스랑 월드컵  축구할 때 ^^*~~~ 광화문 광장에

나가서, 제가 아는 청년들이 거기 와 있다고 그래서 음료수 사 가지고 갔다 주러 갔다가

거기서 못 나왔어요. ^^*~~~ 그 바람에 밤샌 게 마지막 밤 샘 그런 기억인 거 같습니다.

 

예, 아무튼 밤새도록 그와 같은 일을 합니다. 그리고 샛바람이 메뚜기 떼를 몰고 옵니다.

요기 재미있는 표현이 등장하는데요. 샛바람이라는 그와 같은 표현입니다. 히브리 말은

'르하 하까딤' 그러는데요. 여기서 샛바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제 나중에 팔레스타

인 지형으로 보자면은 이스라엘의 동쪽은 어떤 곳이지요? 요르단 강 동편은 사막, 광야

지역입니다.

 

따라서 이 샛바람은 마른 바람입니까? 아니면 습한 바람입니까? 마른 바람입니다.

따라서 이 샛바람이 나중에도 역활을 하는데 언제 역활을 할까요? 갈대 바다가 갈라

질 때 하느님이 거센 샛바람을 불어 와서, 마른 바람을 갖고 와서 바다를 말리는 듯한

그와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따라서 샛바람의 반대인 서풍은 하늬바람이라고 하거든요. 

뱃사람들의 용어라고 합니다.

 

아무튼 그 서풍, 바다 쪽에서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 바닷 바람, 습한 바람이

아니라 건조한 바람이 불어 왔다. 동풍이 불어 왔다라는 뜻으로 그 샛바람은 이해하시

면은 좋을 거 같애요. 우리 말 어감으로 샛바람, 어감은 좋은데 이게 조금 샛바람, 하늬

바람 이런 바람의 용어를 잘 모르는 분들에게는 조금 혼동될 수 있는 표현일 것 같기도

합니다.

 

예, 아무튼 그와 같은 샛바람을 그날과 그날의 그 모든 낮과 밤에 야훼 하느님이 수고해서

그렇게 불어와서 메뚜기 떼를 들어 올립니다. 자, 여기서 메뚜기 떼를 몰고 왔다라고

했는데 메뚜기 떼를 들어 오립니다. 그래서 이제 메뚜기 떼가 들어 올려져서 이집트

땅으로 올라옵니다.

 

* 탈출 10,14: 메뚜기 떼는 온 이집트 땅으로 올라오고 이집트의 온 영토, 경계 안에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14절 b에서, 14절 후반부에서 그 메뚜기 떼의 규모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어떻게 설명합니까? "엄청난 메뚜기 떼"라고 설명하지요?

예, 그런데 그 엄청난이라는 형용사는 '카밧'이라는 형용사가 쓰였습니다. 이 '카밧'

이라는 형용사는 엄청난이라고 번역한 이 형용사는 '무겁다'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따라서 파라오의 심장을 완강하게, 무겁게 할 때도 이 단어가 쓰이고, 엄청난 메뚜기

떼라고 할 때도 그 단어가 쓰이고,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나다, 하느님의 영광스러움을

나타내는 그 영광이라는 단어에도 역시 같은 단어가 쓰입니다.

 

따라서 이거는 일종의 언어의 유희가 그 안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엄청난 매우 무거운 그와 같은 메뚜기 떼입니다. 그의 앞에서 그와 같은 메뚜기 떼가

그렇게 있지 않았고, 그리고 그의 뒤에서 그렇게 있지 않을 것이다. 성경의 번역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의 앞에서 없었고 그의 뒤에도 없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는 이집트일 수도 있고, 메뚜기 떼일 수도 있는 조금 애매한 그와 같은

표현입니다. 아무튼 전에도 없었고 앞에도 없을 것이다. 계속해서 비슷한 그런 시간적인

의미에서의 확장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예, 앞에서는 뭐였죠? 9장 18절: 이집트가 수립된 날부터 지금까지, 10장 6절:  너의

아버지들과 너의 아버지들의 아버지들이 그 땅에서 살기 시작한 날부터 이때까지.

요번에는 앞에서도 없었고 후에도 없음. 점점점점 시간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 탈출 10,15: 여기서는 우선 메뚜기 떼의 엄청난 규모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강조가 됩니다.

그리고 그는 온 땅의 눈을 덮었다. 그리고 그 땅은 어두워졌다. 이것은 15절에서 이미

예고된 내용입니다. 5절에서 표현은 약간 다릅니다마는

 

* 10,15: 그리고 그 (= 메뚜기 떼)는 온 땅의 눈을 덮었다. 그리고 그 땅은 어두워졌다.

그 땅이 볼 수 없게 된 것이 아니다. 앞에서는 그 땅이 더 이상 볼 수 없었다라고 얘기

하는데 여기서는 그 땅이 어두워졌다라고 얘기합니다.

메뚜기 떼가 너무 많이 와서 햇볕을 다 가려버린거죠. 이것은 요 다음에 등장할 아홉

번째 재앙, 어둠의 재앙을 조금 미리 앞당기는 그와 같은 역활을 합니다. 예, 그렇게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 메뚜기 떼는 땅의 모든 풀과 나무의 모든 열매를 먹습니다.

앞에서는 단지 풀과 나무에 관해서 얘기 했는데 여기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합니다.

 

나무의 열매를 모두 먹었다. 그리하여 이집트의 온 땅에는 들의 풀이고 나무고 할 것

없이 푸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최종적인 결론입니다. 푸른 것.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땅 위에 하느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그런 풀과 나무,

모든 푸른 것들은 거기에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 재앙의 어떤 최종적인 결론

이겠지요.

 

* 탈출 10,16: 그러자 파라오가 서둘러 모세와 아론을 불렀다. 직역한다면,

그리고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을 부르는 것을 서둘렀다라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제 파라오는 두 번째로 모세와 아론에게 자신의 죄를 인정합니다.

 

  

 

내가 야훼 너희들의 엘로힘과 너희들에게 잘못했다. 그러니 이제 나의 잘못을 이번만

제발 들어올려라. 그리고 야훼 너희들의 엘로힘에게 빌어라.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나로부터 이 죽음을 비켜가게만 하여라. 직역하면은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여기서 나의 잘못을 들어올려라라고 얘기 했는데 이건 어떤 뜻이냐 하면, 이것도

비슷하지요? 메뚜기 떼가 들어올려지는 것과 비슷하게 파라오의 잘못을 들어올려라고

하는데 이건 어떤 뜻이냐하면, 잘못한 사람은 고개를 세우고 있습니까?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까? 숙인 고개를 들어올려라. 어떤 용서에 대한 하나의 어떤 동작을 얘기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파라오는 이제 모세에게 용서를 청하는 그와 같은 셈입니다.

 

그리고 "이번만 제발 들어올려라."라고 얘기하는데 여기서 이번만이라는 표현은 구약

성경에서는 자주 등장하지 않습니다. 찾아보니까 어디서 한번 더 등장하냐 하면,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 하느님께 빌 때 그 때 "이번만 용서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하고 빌 때  매우 드물게 사용되는, 창세 18,32에서 한번 사용되는

그와 같은 표현입니다.

 

그리고 파라오의 요청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야훼 너희들의 엘로힘에게 빌어라라고

합니다. 자기가 좀 빌지. ^^*~~~ 모세에게 빌어 달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나서

뭐라고 얘기하죠? 그리고 그로하여금 나로부터 이 죽음을 비켜가게만 하라.
요 마지막 대목은 이거 좀 의도적인 거 같애요. 제가 이집트의 왕이라면, 내지는

여러분들이 이집트의 왕이라면 어떻게 빌어야겠습니까?

"그리고 야훼로 하여금 이집트로부터 이 재앙을 벗어나게 해라." 라고 얘기한 것

같은데 이집트는 관심이 없습니다. 파라오의 관심은 뭡니까? 자기입니다. 이집트 땅,

백성 여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자기에 관해서만 관심이 있습니다.

 

앞서서 그 나일 강 물이 피로 변했을 때, 개구리들이 막 올라왔을 때, 막 종기 이런

것들이 생겼을 때도 파라오는 이집트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관심이 없이 그냥 몸을

돌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겪지 않기 때문에.

 

정작 이와 같은 메뚜기 떼의 재앙이 생기니까 누구를 구해 달라고 그럽니까? 파라오의

관심은 자기밖에 없는 거예요. 예, 그러면서 비켜가게만  하여라. 어떤 파라오가 갖고

있는 한 단면을 우리가 이 대목에서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 탈출 10,18: 모세가 파라오에게서 물러 나와 주님께 기도하였다.

 

모세도 좀 이상해요. 거기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고 그냥 나옵니다.

그는 파라오로부터 나왔고 야훼에게 빌었다. 이게 문장입니다.  파라오의 요청에

대해서 모세가 어떤 정치적인 그런 어떤 협상 이런 거를 하지 않고 그냥 파라오의

요청을 받아들입니다. 아무런 말 없이 모세가 나와서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19절: 그러자 주님께서 바람을 매우 세찬 하늬바람으로 바꾸셨다.

그 바람이 메뚜기 떼를 몰고 가서 갈대 바다로 처넣으니, 이집트의 온 영토에

메뚜기가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모세의 기도에 따라 야훼는 동풍을 서풍으로 바꿉니다. 세찬 하늬바람으로 바꿉니다.

그 바람이 메뚜기 떼를 몰고 가서 어디에 처넣습니까? 갈대 바다에. 따라서 샛바람,

하늬바람, 갈대 바다 이런 얘기들이 여기서 등장하는 것은 나중에 바다를 건너는

사건을 여기서 미리 미리 몇 개의 단어들을 준비해 두고 있는 겁니다. 직역하자면,

'르하흐 얌'

 

아까 육지에서 불어오는 그 바람은 '루하까딤'이라는 그와 같은 표현이고 여기서는

'루하흐 얌'인데 얌은 바다입니다. 우리 식으로 직역하지면 그냥 바닷바람입니다.

이게 인제 서풍이 되겠지요? 이스라엘의 어떤 지형에서 본다면 그 서풍은 매우 강한

바람입니다. 매우 세찬.

 

따라서  앞서 불었던 동풍보다 서풍은 더 센 바람입니다. 센 바람을 통해서 메뚜기

들이 갈대 바다 쪽으로 밀어 넣어지는데, 우리 말 성경은 뭐라고 되어 있지요?

처넣으니. 그런데 어떻게 처넣느냐? 이집트의 온 영토에 메뚜기가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라고 얘기합니다. 단 한마리도 남아 있지 않았다.

 

따라서 이것은 자연적으로 메뚜기 떼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야훼 하느님의 어떤 신적인

개입이 있었다라는 내용입니다. 야훼는 이미  7장 3절에서  모세에게 예고한 대로 그리고

9장 12절에서 그랬던 것처럼 파라오의 심장을 다시 한번 강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내보내지 않습니다.

 

이 여덟 번째 재앙에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될 첫 번째 내용은 2절의 내용입니다.

"내가 너의 아들과 너의 손자에게 들려 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다음 세대에게 그것을 들려 주어야 된다. 글로 적어서 또 말로

그것들을 넘겨 주어야 한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탈출기의 굉장히 중요한 의미

중에 하나입니다. 그것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나중에 여러분들 파스카 이야기로 넘어가면은 그렇게 너희 아버지가 아들에게

파스카의 밤, 그 파스카 전례를 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하는지에 관해서

아예 텍스트로 고정이 돼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파스카 하까다라는 아예 파스카

저녁에 유다인들의 축제가 되면은 방에서 그렇게 누룩 없는 빵이랑, 쓴 나물이랑

이런 걸 차려 놓고 포도주 잔을 돌리면서 그 파스카의 밤 전례를 하는 그 책이

고정이 돼 있습니다.

 

그러면은 그 책에 따라서 아버지가 마치 우리가 미사 때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 하듯이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들이 질문을

합니다. "이거는 왜 이렇게 해요?" 아이들의 질문도 텍스트로 정해져 있습니다.

지금은 왜 쓴 나물을 먹습니까? 왜 포도주는 이렇게 마십니까? 왜 우리는 누룩 없는

빵을 먹습니까? 그럼 거기에 대답하는 아버지의 대답도 정해져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따라서 탈출기의 텍스트는

한편으로는 하느님이 누구인가에 관해서 신학적인 전개를 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

으로는 이것이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된다. 그것이 계속해서 이야기 되어야 한다.

그것이 계속해서 사람들의 입에서 사람들의 입으로, 글에서 글로 전해져야 한다

라는 것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한국에서 파나서스 박사의 상상 극장이라는 영화가 개봉이 됐었는데요.

그런데 그 중간에 보면은 어떤 대목이 나오느냐 하면은 사탄이 등장을 합니다. 그리고

그 사탄이 원하는 게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보면은 그런 어떤 수도자들이 계속

해서 하는 일이 있는데 수도자들이 하는 일이 뭐냐하면은 이야기하는 겁니다. 세상에

관해서, 세상의 창조에 관헤서, 신에 대해서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럼 사탄이 원하는 건 뭐냐하면, 그들이 더 이상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을

멈추게 하는 겁니다. 이야기가 멈추는 순간 그 수도자들이 더 이상 신에 관해서 그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멈추는 순간, 세상은 사탄의 손에 떨어지는 겁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메세지를 저는 그 영화가 담고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이스라엘이 그들이 하느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이집트로부터 구해내셨는지를 이야기 하는 것을 더 이상 아야기하지 않게 될 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하지만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는지를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게 될 때 세상은 구원의 희망을 잃어버린다는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우리들이 주일 날마다 만나서 이렇게 미사하는 이유가 뭡니까?

예,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잃어버리지 않게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단지 그것이 전례의 형태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도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그런 신앙 이야기를 많이 해 줍니까? 예, 그거 필요합니다.

 

아주 어린 자녀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성모님이 아기 예수님을 어떻게 낳았는지, 바오로가 세상에 어떻게 신앙을

전했는지,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국가를 잃었는지, 다윗은 왜 어떻게

해서 왕이 되었고 하지만 그 나라가 어떻게 망했는지...

 

그 좋은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 흥망성쇄의 이야기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 넘어

하느님께서 우리와 어떻게 함께 계셨는지. 그 이야기를 멈추는 순간, 우리가 더 이상

그것에 대하여 얘기하지 않는 순간, 세상이 더 이상 그 이야기에 관해서 들으려고

하지 않는 순간 세상은 구원의 희망을 잃어버린다라는 겁니다.

 

예, 메뚜기 떼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집트로부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넓게 서식을

합니다. 실지로 데이비스라는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전하냐 하면, 1926-1927년까지

메뚜기 떼가 아프리카에서 500만 마일 이상을 돌아다니면서 미국의 두배에 달하는

초지를 황폐화시킨 그와 같은 기록을 전합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구약에서 메뚜기 떼는 신적 심판으로 해석되고는 합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묵시록에서 최종적인 심판을 얘기하면서,

 

* 묵시 9,3: 그리고 그 연기 속에서 메뚜기들에게 권한이 주어졌는데, 땅의 전갈들이

                 가진 권한과 같았습니다.

 

* 묵시 9,7: 그 메뚜기들의 모습은 전투 준비를 갖춘 말들과 같았는데, 머리에는

                 금관 같은 것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들의 얼굴은 사람 얼굴 같았고

 

메뚜기들이 세상을 심판하는 그와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고 자주 이렇게 메뚜기들은

하느님의 어떤 심판의 도구로서 그런 어떤 문학적인 은유에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신약에서 메뚜기가 등장하는 경우가 있었을까요? 같은 의미인지는

모르겠는데 신약에서 메뚜기가 세례자 요한의 먹거리로 등장합니다. ^^*~~~

 

지형이 중요한데요. (이 부분은 강의를 직접 보셔야 도움이 되십니다)

 

  

 

 

여기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이고, 여기가 가나안 지역이고, 팔레스타인 지역이고, 여기가

이집트 지역이고 이게 지중해입니다. 이게 지금의 터키가 되겠지요. 이스라엘이 있고,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란 이런 나라들이 있는 겁니다.

 

여기에 이렇게 조금 꺼멓게 표시된 부분들은 이곳에는 작물을 할 수가 있다. 풀들이

자란다. 나머지는 사막이라는 그와 같은 내용이 되겠지요. 사람이 살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다라는 내용입니다.

 

자,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거죠. 맨 처음에 불어오는 바람은 이 바람입니다.

그래서 메뚜기들을 몰고 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 바람이 불어와서 메뚜기들이 어디

빠집니까? 갈대 바다에 빠집니다. 그런데 이쪽 방향으로 보면은 사실은 육지쪽으로

메뚜기 떼들이 가는 겁니다.

 

이것 때문에 사람들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루하까딤과 루하흐 얌을 서풍과 동풍으로

방향이 고정되어 있는 거로 생각하면 안 된다. 따라서 하나는 육지쪽에서 부는 바람,

하나는 바다 쪽에서 부는 바람으로만 생각해 봐야 된다.

 

따라서 이집트 입장에서 보면은 어떤 바람이냐? 하나는 남풍이고, 하나는 북풍을

얘기한다. 갈대 바다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따라서 루하흐 얌, 루하까딤 그와

같은 단어를 서풍, 동풍으로 번역할 게 아니라 육지풍과 해양풍으로 번역해야 된다

라고.

 

왜냐하면 지금은 여기 와 있는 상황이 아니라 이집트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니까

이집트를 나오는 과정에서 이쪽 방향에서의 바람과 이쪽 방향에서의 바람을 생각

하자라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입니다.

 

저는 그런 학자들의 토론에 함께 하기보다는 제가 생각하는 거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학적인 지형입니다. 어떤 말씀이냐 하면은 여기서 신학적인 지형이라는

것은 이집트를 떠나서 이스라엘은 자신의 가나안 땅으로 돌아옵니다. 따라서

이집트가 있고 이집트를 떠나게 될 이스라엘 백성이 있고 그 다음에는 뭐가

있겠습니까? 갈대 바다가 있습니다. 따라서 순서만 보시면 됩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집트, 이스라엘, 갈대 바다. 약속의 땅.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샛바람이라는 것은 약속의 땅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고

하늬바람이라는 것은, 루하까딤은 약속의 땅에서 이집트 쪽으로 불어오는 바람

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고.

 

반대로 루하흐 얌. 바닷바람이라는 것은 우리가 서풍으로 번역했습니다만

이집트에서 약속의 땅 쪽으로 불어오는 바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뭐가 있는 겁니까? 갈대 바다가 있는 겁니다.

 

메뚜기 떼들은 결국 약속의 땅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통해서 이집트로 올라왔고

이집트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통해서 갈대 바다에 빠졌다라는 신학적인 구도

안에서 신학적인 지형으로 전체를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희가 10장 마지막까지 읽었습니다.

시즌 2를 열심히 했는데 아직 갈대 바다에 못 갔지요? ^^*~~~

아홉째 재앙 그리고 이제 다음 시즌 3에서부터는 파스카 그리고 광야로 나가는 거

갈대 바다, 갈대 바다를 건너서 그들이 시나아 산에서 계약을 맺는 그와 같은

대목들을 다루게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전체적으로 한 시즌 굉장히 오랜 시간을 이렇게 저희가 되짚어 왔는데요.

끝까지 이렇게 열심히 함께 해 주셔서 저한테도 굉장히 함께 해 주신 많은

분들이 힘이 되었고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려야 될 거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성서백주간 시즌 2 ㅡ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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