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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17 조회수608 추천수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11월 17일 연중 제33주일
 
By your perseverance
you will secure your lives.
(Lk.21,19)
 

제1독서 말라 3,19-20ㄴ
제2독서 2테살 3,7-12
복음 루카 21,5-19
 
아마 초등학생 때였을 것입니다(벌써 30년이 훨씬 넘었네요). 우리 동네에 어마어마하게 높은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높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어지럽지 않을까 라는 말까지 하면서 저와 친구들은 매일 매일 그 앞을 지나가면서 신기하듯이 바라보았지요. 동네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자랑하는 아파트. 이 안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를 상상하곤 했었습니다. 더군다나 이 아파트에는 힘 안들이고도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는 승강기까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린 아이들의 우상이고,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이 아파트의 위용은 지금 어떨까요? 그렇게 대단하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15층 높이의 아파트면 대단했지만, 30층 높이의 아파트가 대부분인 요즘 15층은 별 것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평수도 조그맣고 너무 낡아서 그렇게 선호하는 아파트가 아닙니다.

그 대단했던 건물이 30년이 넘은 지금 형편없는 건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지상의 건물들이 다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물론 오래된 건물들이 있기는 하지요. 그리고 시간의 축적과 작품성으로 계속 보존되고 사랑받지만, 지금 시대의 건물과 비교하면 많은 불편함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즉, 작품성은 대단하지만 실용적인 면에서는 그 다지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결국 지상의 건물들 모두가 하찮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없어져 사라질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거처라고 말할 수 있는 하느님 나라의 거처와 비교하면 어떨까요? 아무리 잘 지어지고 아름다운 곳이라 해도 하찮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몇몇 사람들이 예수님께 이스라엘의 성전을 가리키면서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며 자랑합니다. 하느님께 최고의 집을 지어 드렸다는 자부심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반응은 그렇게 대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지상의 건물을 감히 하늘의 거처와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더군다나 이 대단하다는 건물이 곧 허물어지고 만다는 것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없어질 이 지상의 집 자체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하늘나라에 아름다운 나의 집을 잘 세울 수 있도록 노력하는 우리의 모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이 있는 하느님 나라의 거처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금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곧 없어질 것들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함께 할 것들에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쏟을 수 있어야 합니다.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려고 달리는 동안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는 모두 놓치는 거예요. 그리고 경주가 끝날 때쯤엔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지요(진 웹스터).

 
그 화려했던 이스라엘 성전은 어디로 갔을까요?
 
 

무엇이 더 넓은가?

어떤 스님이 모여 있는 신도들에게 선문답을 던집니다.

“땅이 넓습니까, 바다가 넓습니까?”

땅이 넓을까요? 바다가 넓을까요? 지구의 70% 이상이 바다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어디가 넓겠습니까? 당연히 바다가 넓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바다가 넓죠.”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미소 지으며 “그럼 바다 밑에는 뭐가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바다 밑에는 땅이 있습니다. 결국 땅이 넓을까요? 바다가 넓을까요?

바다가 지구의 70% 이상을 차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땅은 지구의 100%를 차지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지 가려서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많은 이들이 보이는 부분만을 믿으려고 합니다. 즉, 지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바다만을 보면서 땅보다 바다가 넓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바다 밑의 땅이 분명히 있지요.

이처럼 보이는 세상의 법칙을 쫓으려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영원한 거처로 이끌어주는 주님의 법칙을 쫓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보이는 행복보다는 아직 보이지 않는 주님이 행복이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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