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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육안으로 보고 영안으로 보다 [달콤하지 않다] 월요일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17 조회수375 추천수0 반대(0) 신고

 

다음의 글은 어느 강의에서도 없었던 이야기 입니다.

선악과 열매와 생명나무 열매

사람은 선악과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본성과 생명에 참여한다.

(창세기 3, 4 - 5) "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인간은 선과 악을 알게 됨으로써 아닙니다. 인간은 그리스도와 일치 됨으로써 하느님처럼 (하느님의 본성과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됩니다. 인간은 하느님없이 선악을 알게 되지 못합니다. 인간은 '절대의 선'이신 하느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악과 열매가 아닌, 그리스도(생명나무 열매)를 통해서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게 됩니다. 인간은 절대의 선이 아니기에 절대의 선이신 '하느님 없이'는 결코 하느님처럼 될 수 없는 것입니다.유혹자는 인간에게 선과 악을 동시에 알게 하였습니다. 이는 생명의 '선'과 죽음의 '악'을 동시에 인간에게 심어 넣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뱀은 죽음이었기에 인간에게 '악'과 '죽음'을 선택하게 하였습니다.

본래 '선'했던 인간은, '선' 외에도 '악'을 수용하게 되었고 인간 자신의 자유를 남용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함에 따라서 인간에게는 '죄'로 말미암은 첫번째 죽음이 들어가게 됩니다.생물학적인 죽음인 [첫째 죽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죄, 악의 죽음에서 인간을 해방시키셨습니다.선악과를 통해서 죽음이 왔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이 왔습니다.인간은 영(위,성령)으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두번째 탄생'을 맞습니다. 육(흙)적인 인간은 영(성령)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은 그리스도 때문입니다.육적인 몸이 영적인 몸으로, 첫째 탄생이 둘째 탄생으로, 첫 창조가 새 창조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느님 없이' 하느님처럼 되려고 했던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 있어' 하느님(본성,생명)처럼(참여) 되었습니다.그러나  또 다시 창세기 때와 같이 하느님의 말씀을 두번째 거역한다면, 영적인 두번째 탄생은 영적인 멸망으로 둘째 죽음을 맞이합니다. 도식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혹자 뱀 - 선,악과 열매 - 하느님 없이 /  (흙) 첫째 탄생 - 첫째 죽음 - (물질의 육적인 몸)

그리스도 - 생명나무 열매 - 하느님 있어 / (영) 둘째 탄생 - 둘째 죽음 - (성령의 영적인 몸)

(창세기 3, 24) 사람을 내쫓으신 다음 에덴 동산 동쪽에 커룹들과 번쩍이는 불 칼을 세워,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합니다.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루카 21, 8) 하신 말씀입니다.인간은 생명나무에 이르는 그리스도가 (길이) 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창세기 때부터 지키게 하셨습니다.인간은 하느님에게서 오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 있어'가 되어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 다만 인간은 '그리스도와 일치' 하는가 혹은 아닌가의 선택에 달렸습니다.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과거) + 하느님께서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현재) + 하느님께서 다시 사람으로 오신다 하셨습니다 (미래) 왜냐하면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이기 때문입니다. 진복팔단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가 사람들(그들)의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이전에는 율법이 내려왔습니다. 지금은 사랑이 내려왔습니다. 인간은 창세기 때에도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불순종합니다. 자신 안에 자리잡은 '죄'와 자기 곁에 있는 '악'은, 뱀이 속으로 노렸던 '하느님처럼' 되지 못하게 선악과 열매로 진리에 반대되는 거짓말로 인간을 속여 - 말씀에 대한 믿음에 불순종하게 만듭니다. 말씀과 실행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그때의 뱀처럼 '인간의 나약성'을 달콤하게 유혹하여 거짓으로 '죄악'을 숨기게 하고 더 나아가서 믿음을 추락토록 한다는 것을 늘 염두해 두어야 합니다. 성모님의 믿음은 그리스도와 일치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삶이었습니다.예수님은 생명의 빵이시고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이셨습니다. 누가 '빵'이 되고 누가 '말씀'이 될까요.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느님 없이' 참된 생명을 얻고자 요령을 피우는 것과 같습니다.그리스도와 일치하면 나약하지 않고 강해지며 세속의 여러 거짓된 힘들에게 지배 당하여 믿음이 추락될 수 없습니다. 뱀의 유혹은 아주 달콤했습니다. 지금도 달콤한 말들이 많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통받는 수난의 잔을 받으시고,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삶을 사셨습니다. 특이한 이 사랑의 삶은 자신의 힘이 아니고 하느님의 힘으로 인간 자신이 그리스도와 일치되어지면 그리스도의 힘에 따라서 성체성사적인 사랑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율법이 내려진게 아니라 사랑이 내려졌습니다. 

사랑에 대한 믿음의 눈은 예수님께로부터 구원의 생명을 결코 잃지 않습니다.[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 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 소리 외쳤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리스도와의 일치됨을 의미합니다. 그의 눈에는 예수님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는 사랑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자비로운 사랑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자신의 몸이 그리스도와 일치하지 않는 외침은 단지 소리에 불과합니다. 기도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적인 사랑의 고난에 일치하지 않는다면 요령을 피우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결합하는 일은 거짓처럼 항상 달콤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없으면 몸은 움직이지 못합니다. 거짓된 사랑은 악에 의한 고통과 죄에 의한 죽음에 빠지는데 - 그들 (공동체) 가운데에 - 자비로운 그리스도의 영과 사랑의 영이 없기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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