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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3주간 수요일>(2013. 11. 20. 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20 조회수496 추천수6 반대(0) 신고

<연중 제33주간 수요일>(2013. 11. 20. 수)(루카 19,11ㄴ-28)

 

 

 

                                        <미나의 비유>

 

 

 

어떤 귀족이 먼 길을 떠나게 되었을 때, 종들에게 금화를 나누어 주면서,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라고 명령합니다(루카 19,12-13).

 

뒤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그 주인이 그렇게 한 것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종들의 성실성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자기가 왕이 되어서 돌아왔을 때

 

고을을 맡아서 다스릴 사람을 뽑고 싶었던 것입니다.

 

 

 

첫 번째 종과 두 번째 종은 주인의 명령을 잘 실천했고,

 

그래서 고을을 맡아서 다스릴 권한을 받게 됩니다(루카 19,16-19).

 

그러나 세 번째 종은 주인이 준 금화를 보관하기만 했다가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줍니다(루카 19,20).

 

 

 

그는 주인이 냉혹한 사람이어서 두려웠다고 말합니다(루카 19,21).

 

그의 말은, 주인이 준 금화로 벌이를 하려고 했다가

 

돈을 벌기는커녕 원금까지 손해 보는 일이 생길까봐

 

두려워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는 만일에 자기가 원금을 잃거나 손해를 보게 되면

 

주인에게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바로 그것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만일에 손해를 본다면 큰 벌을 받을 테니

 

차라리 원금이라도 안전하게 보관해 두었다가 주인에게 돌려주자."

 

라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세 번째 종이 원래 돈벌이에 소질이 없었던 사람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떻든 그는 주인의 명령을 실천할 의욕이 없었습니다.

 

그의 잘못은 1)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잘못 판단한 것.

 

2) 주인의 명령의 의도를 잘못 이해한 것.

 

3) 그렇더라도 주인을 위해서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 생각한 것.

 

4)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한 것. 등입니다.

 

 

 

주인은 그의 '무능'을 꾸짖지 않고, 그의 '불성실'을 꾸짖습니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종들이 명령을 실행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성실한 것이고,

 

아무것도 안 한 것은 불성실한 것입니다.

 

(첫 번째 종과 두 번째 종이 칭찬을 받은 것은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이 아니라 명령대로 실행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세 번째 종이 주인의 명령대로 하려고 노력했다가

 

원금을 손해 보는 일이 생겼더라도, 주인은 그를 꾸짖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은 예수님이고, 종들은 신앙인들입니다.

 

주인이 멀리 떠난 것은 승천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재림으로 해석됩니다.

 

주인과 종들이 셈을 하는 것은 심판입니다.

 

예수님께서 신앙인들을 심판하실 때에는

 

얼마나 많은 업적을 쌓았는지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보실 것입니다.

 

또 할 수 없는 일을 못한 것은 꾸짖지 않으실 것이고,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안 한 것을 꾸짖으실 것입니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 12,48)."

 

 

 

예를 들면, 선교활동을 할 때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말로써 복음을 전하면 되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글로써 복음을 전하면 되고,

 

다른 뭔가를 잘하면 그걸로 복음을 전하면 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함께 선교 여행을 다닐 때

 

주로 바오로가 말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사도 14,12).

 

설교는 주로 바오로가 하고, 바르나바는 말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아마도 사랑을 실천하는 등의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하든지 자기가 잘하는 방식으로 하면 되는데,

 

예수님은 그 결과를 보시는 분이 아니라,

 

그 노력을 보시고 칭찬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만일에 "나는 특별히 잘하는 일이 없다." 라고 하거나,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라고 하면서 아예 아무것도 안 하면,

 

예수님께서는 그런 태도를 꾸짖으실 것입니다.

 

귀찮아서 안 하려고 하는 이기적인 모습이든지

 

두려움 때문에 안 하려고 하는 소극적인 모습이든지 간에

 

안 하려고 하는 것은 모두 예수님 앞에서는 불성실한 태도가 됩니다.

 

 

 

그런데 사실 신앙인으로서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고,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잘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는 일마저도 못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벗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셨는데(요한 15,13),

 

실제로 그런 사랑을 실천하면 좋겠지만,

 

항상 그렇게 극한의 상황에서만 사랑을 실천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언제나 항상 목숨을 바칠 정도로

 

거창한 사랑만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사랑만 사랑인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태 10,42)."

 

 

 

'시원한 물 한 잔'을 주는 정도의 작은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우리가 늘 언제든지 일상적으로 실천해야 할 일입니다.

 

 

 

물 한 방울이 바위를 뚫는 것처럼 작은 사랑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 자신도 포함해서) 죄인들을 구원하게 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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