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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23일(토) 聖 골룸바노 님♥
작성자정유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22 조회수440 추천수0 반대(0) 신고


 

11월23일(토) 음10/21
聖 골 룸 바 노
 


 


 

골룸바노(11.23)

성인명 골룸바노(Columban)
축일 11월 23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설립자, 수도원장, 선교사
활동지역 보비오(Bobbio)
활동연도 540-615년
같은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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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룸바노,콜룸바누스, 콜룸반



보비오의 성 골룸바노(Columbanus)

 


 


아일랜드의 웨스트 렌스터(West Leinster) 태생인
성 콜룸바누스(Columbanus, 골룸바노)는 그의 모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도생활을 하기로 결심하였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아주 어렸다고 한다.
그는 얼마동안 신넬(Sinnel)이란 수도자와 함께 언(Erne) 호수의
수백 개의 섬 중의 하나인 클루아인(Cluain) 섬에서 살다가
뱅거(Bangor)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12명의 다른 수도자와 함께 프랑스 지방의 선교사로 파견되었고(590년경),
이 선교활동이 성공적이었으므로 뤽세이유(Luxeuil)와 퐁텐(Fontaine) 지방도 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의 추종자들이 유럽 전역을 선교하면서,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에 수도원을 세우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많은 반대를 받았는데,
특히 프랑크계의 주교들로부터 극심한 반대를 받았다.
그는 성좌에 서한을 보내어 실정을 보고하는 한편,
603년에 샬롱(Chalon)에서 개최된 갈리아(Gallia) 시노드에 불참하면서 항의하였다.
또한 610년에는 부르고뉴(Bourgogne)의 국왕 테오도리쿠스 2세의 결혼을 반대하여
이 지역의 모든 아일랜드 수도자가 추방당하는 곤경을 겪기도 하였다.

그 후 그는 롬바르디아(Lombardia)의 아리우스계 왕인 아지올드의 영접을 받고
이탈리아 선교에 착수하였다.
그는 보비오, 밀라노(Milano), 제노바(Genova) 등지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들 수도원들은 당시의 학문과 문화 그리고 영성의 중심지로서 큰 기여를 하였다.
성 콜룸바누스는 자신의 수도회 규칙, 강론집, 시 그리고
아리우스(Arius) 이단 반박문 등 수많은 글을 남겼다.
그는 615년 11월 23일 자신이 발견해서 성모님께 봉헌한
보비오 수도원 부근의 한 동굴에서 생활하다가 선종하였다.
그의 유해는 보비오에 있는 성 콜룸바누스 성당의 지하에 모셔져 있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골룸바노는 유럽 대륙에서 활동한 아일랜드 선교사들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그는 청년 시기에 육적 유혹으로 큰 시련을 겪은 후
수년 동안 은둔 생활을 하고 있던 수녀에게 충고를 청했다.

그는 그녀의 충고에서 세상을 떠나라는 부르심을 느꼈다.
그는 먼저 러프언의 어느 섬에 사는 한 수도자에게 갔다가
다음에는 밴고르에서 학문을 연구하는 대수도원으로 갔다.
여러 해 동안 은거와 기도 생활을 한 다음 그는
12명의 동료 선교사들과 더불어 골-오늘의 프랑스-지방으로 갔다.
그들은 그들의 엄격한 규율과 설교로,그리고 성직자들의 게으름과 시민들의 불화로 특징지을 수 있던 그 당시에 애덕과 수도 생활에 완전히 헌신함으로써 많은 존경을 받게 되었다.

콜룸바노는 유럽에 여러 개의 수도원을 세웠으며 그곳은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모든 성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그도 프랑스 주교들의 불평에 대해
자신의 정통성을 내세우고 아일랜드 관습을 인정받기 위해서 교황에게 호소해야 했다.
그는 왕의 결혼을 지적하면서 그의 방탕한 생활을 꾸짖었다.
이것은 황태후의 권력을 위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콜룸바노는 아일랜드로 되돌아 가라는 추방령을 받았다.
그의 배는 폭풍에 떠돌다가 유럽에 정착했으므로 다시 그의 일을 계속했으며
후에는 이탈리아로 가서 그곳에서 롬바르디아 왕의 호의를 얻었다.
이 마지막 해에 그는 유명한 보비오 수도원을 설립했으며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저술에는 참회와 아리아니즘에 관한 논문들이 있으며
설교와 시 그리고 자기 수도원의 규칙서 등이 있다.


대중의 성적 방종이 그 절정에 이르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콜룸바노만큼 순결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젊은이들에 대한
교회의 감동적인 기억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안일에 빠진 서구 세계가
수백만의 굶주린 사람들과는 비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는 현대에서,
우리는 아일랜드 수도자들의 엄격한 생활과 규율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들이 너무 엄격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너무 멀리 나아 갔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나아 갈 수 있을 것인가?

콜룸바노는 룸바르디아에 있는 이단적 교리에 대하여 교황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이 세상의 가장 먼 곳에 사는 우리 아일랜드 사람들은 성베드로와 성바오로,
그리고 성령의 인도 아래 거룩한 법전을 기록한 제자들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과 사도들의 가르침이외에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이 나라에서 성베드로의 어좌에 대한 나쁜 평판으로
매우 고통스럽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로마는 위대하고 멀리까지 알려졌지만 그것은 오직 이 베드로의 교좌 때문에
우리에게 영광스럽고 위대한 것입니다.
당신의 양떼와 이리 사이에 서서 교회의 평화를 지켜 주십시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아일렌드 출신의 수도자로서
골로반 수도회의 위대한 주보 성인이신
성 골룸바노 님이시여

골룸반 수도회의 발전을 위한
저희의 작은 기도와 희생에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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