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 송영진 모세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25 조회수990 추천수10 반대(0) 신고

        

    얼마나 사랑하는가?
    <연중 제34주간 월요일>(2013. 11. 25. 월)(루카 21,1-4)

     

     

    예수님께서 헌금함에 많은 예물을 넣는 부자들과

    동전 두 닢을 넣는 어떤 가난한 과부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루카 21,3-4)."

    이 말씀은 봉헌한 돈을 보지 말고 마음을 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속을 꿰뚫어보시는 분이니까

    모든 사정을 다 아실 수 있지만, 우리는 잘 모를 때가 많다는 것,

    그것이 문제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자인데 실제로는 어떤 딱한 사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부자로 살면서 겨우 그 정도만 봉헌하나?"

    라고 쉽게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가난한 과부처럼 생활비를 다 봉헌했는데도

    풍족한 데에서 조금 봉헌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겉으로 보기에는 가난한데

    겉보기와는 달리 실제로는 재산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모르고 "가진 것을 모두 다 봉헌했구나."

    라고 칭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는 자기가 쓸 돈을 따로 챙겨 놓고

    (가난하지 않은데도 가난한 척 하면서) 동전 두 닢만 봉헌했는데도

    생활비를 모두 봉헌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다른 사람의 봉헌에 대해서 너무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매달 벌어들이는 돈은 많지만 지출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늘 쪼들리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수입만 보고 지출을 못 보면 오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봉헌이란 자기 양심을 바치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의 제물 이야기를 보면(창세 4,3-5),

    하느님께서 아벨의 제물만 받으시고 카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는데,

    아마도 두 사람의 양심의 차이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벨은 양심껏 가장 좋은 제물을 바쳤고,

    카인은 안 좋은 것을 바치면서도 가장 좋은 것을 바치는 척 하면서

    하느님을 속이려고 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하나니아스와 사피라 부부도 그런 경우입니다.

    그 부부는 땅을 팔아서 받은 돈의 일부를 떼어 놓고

    전부를 바치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사도 5,2).

    베드로 사도는 그들을 이렇게 꾸짖었습니다.

    "하나니아스, 왜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겨 성령을 속이고

    땅값의 일부를 떼어 놓았소?

    그 땅은 팔리기 전에도 그대 것이었고,

    또 팔린 뒤에도 그 돈은 그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 아니오?

    그런데 어쩌자고 이런 일을 하려는 생각을 마음속에 품었소?

    그대는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속인 것이오(사도 5,3-4)."

     

    베드로 사도는 그 부부가 땅값의 일부만 봉헌하겠다고 했어도,

    또는 아예 봉헌하지 않겠다고 했어도 비난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부부의 헌금은 십일조나 성전세처럼 율법에 규정된 헌금이 아니라,

    그냥 자유로이 바치는 헌금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그들을 꾸짖은 것은

    일부만 바치면서 전부 다 바치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사람들에게서 칭찬과 존경을 받고 싶은 욕심과

    재산에 대한 욕심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두 가지 욕심을 다 채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두 가지 욕심을 모두 버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봉헌은 오직 하느님을 위해서, 하느님께 바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 안 됩니다.

     

    이제 다시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로 돌아가서 보면,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만 예물로 넣은 부자들 가운데에는

    자기들이 가진 것을 다 봉헌하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자기가 많은 돈을 봉헌했다고 스스로 나팔을 부는(마태 6,2)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그 가난한 과부는

    사랑하는 주님께 자기가 동전 두 닢만 봉헌하는 것에 대해서

    몹시 부끄러워했을 것이고(죄송하게 여겼을 것이고),

    그 돈이 자기의 생활비 전액이라는 것을 의식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마음을 보셨습니다.

     

    (만일에 그 가난한 과부가

    "이 동전 두 닢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액이다." 라고 생색을 냈다면,

    예수님께서 그를 칭찬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봉헌은 사랑'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주었으면서도

    그것을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자꾸만 더 주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부유하냐 가난하냐 보다,

    생활비를 전부 바쳤냐 일부만 바쳤냐 보다,

    얼마나 사랑하는가? 가 더 중요합니다.

    - 송영진 모세신부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