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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27일(수) 聖 프란치스코 파사니 님..등♥
작성자정유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26 조회수511 추천수0 반대(0) 신고


 

 

11월27일(수) 음10/25
聖 프란치스코 파사니 님..등

 

 


 

프란치스코 파사니(11.27)

 

 

성인명 프란치스코 파사니(Francis Fasani)
축일 11월 27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활동지역 루체라(Lucera)
활동연도 1681-1742년
같은이름 방지거, 프란체스꼬, 프란체스꾸스, 프란체스코, 프란체스쿠스,
프란치스꼬, 프란치스꾸스, 프란치스쿠스, 프랜시스


 

루체라의 성 프란치스코 안토니오 파사니(Franciscus Antonius Fasani)


 

 


 


 

성 프란치스코 안토니우스 파사니(Franciscus Antonius Fasani, 또는 프란체스코)
1681년 8월 6일 이탈리아 남동부 풀리아(Puglia)의 루체라에서 태어나
도나투스 안토니우스 요한 니콜라우스 파사니
(Donatus Antonius Joannes Nicholaus Fasani)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10세 되던 해에 부친을 잃고 새 아버지와 함께 살아야 했다.
그런데 그의 새 아버지는 좋은 사람으로 프란치스코를
루체라에 있는 콘벤투알 프란치스코회 학교에 보내 교육을 받도록 했다.
그는 학업 중에 수도 성소를 깨닫고,
15세 때에 몬테 산 안젤로 고르가노(Monte San Angelo Gorgano)
콘벤투알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여
수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고, 1705년 9월 19일 모든 학업을 마치고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 무덤 앞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로마(Roma)에서 다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여 1707년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루체라의 수도원으로 돌아와 철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늘 겸손하게 생활하면서
가난한 사람, 병자 그리고 감옥에 갇힌 이들을 위해 헌신했다.
또한 그의 학문적 소양이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알기 쉽게 설교하고 교리를 가르쳤다.
그래서 그는 뛰어난 교수이자 설교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또한 그는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가 반포되기 전에 이미
이에 대한 특별한 신심을 가졌고, 사람들이 즐겨 부를 수 있는 찬미가를 쓰기도 했다. 또한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를 위한 9일 기도를 작성했으며,
지금도 루체라에서 이런 관습이 전해지고 있다.
그는 1742년 11월 29일 루체라의 수도원에서 선종하였고,
1951년 4월 15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으며,
1986년 4월 1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누구나 알기 쉽게 설교하고 가르친
뛰어난 교수이며 사랑의 설교가이신,
성 프란치스코 파시니 님이시여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에 대한 님의 신심을 본받아
티없이 깨끗한 영성을 가꿀 수 있도록
천상의 기도로 저희를 이끌어 주옵소서!...아멘+



 

 

  

 


 

후밀리스(11.27)

 

 

성인명 후밀리스(Humilis)
축일 11월 27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사
활동지역 비지냐노(Bisignano)
활동연도 1582-1637년
같은이름 후밀리쓰


비지냐노의 성 후밀리스(Humilis)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Calabria)의 비지냐노 출신인 성 후밀리스는
세례명으로 루카 안토니오(Lucas Antonio)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는 농부로 생계를 유지하던 중
18세 때에 작은 형제회 회원이 되려고 결심하였으나,
그로부터 9년 뒤에야 평수사로 입회할 수 있었다.

그는 자기 옷에다 ‘후밀리스’(낮은, 겸손한 등의 뜻을 지님)란 글자를 써 붙이고 다니면서
겸손을 비롯한 모든 덕을 실천하려고 무던히 노력하였다.
이윽고 그는 유식한 형제들보다 더욱 훌륭한 지혜를 지닌 수사로 성장했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의 초청으로 로마(Roma)를 방문한 사실도 있었다.
그는 병으로 임종을 맞이했는데, 죽을 때까지 그의 고행은 중단되지 않았다.
그는 1882년 1월 29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2002년 5월 19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후밀리스'(라틴어-낮은, 겸손한 등의 뜻) 를
옷에다 써 붙이고 다니면서

덕행 가운데 특히 겸손을 추구했던
성 후밀리스 님이시여

교만과 판단으로 일그러진 이 영혼을
천상의 기도로 이끌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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