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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2013년11월27일 연중 제 34주간 수요일 복음묵상)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27 조회수596 추천수7 반대(0) 신고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2013년11월27일 연중 제 34주간 수요일 복음묵상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루카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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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리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박해가 있을 것이고 그 때는 당신을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박해(迫害)란 말의 의미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본다.
① 약한 처지의 개인이나 세력을 억누르거나 괴롭혀 해를 끼침.
② 억누르거나 못 견디게 굴어서 괴롭히거나 해를 끼치다.

박해가 이러한 의미라 한다면 박해는 인류와 늘 함께 있어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박해를 하는 힘을 가진 자와 박해를 받는 힘없는 자들은 항상 존재해왔다.
작게는 어린아이들의 집단 따돌림이나 폭력으로 시작해서, 크게는 정치적 권력을 휘둘러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은 늘 있어왔다.

오늘의 한국 정세를 바라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사흘 전, 전주교구 사제들이 불법선거의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그 뜻을 밝힌 시국미사가 있었고, 그에 대해 발끈한 정부는 방송매체를 통해 언론조작과 여론몰이에 힘을 쏟고 있다.
늘 그랬듯이 보수단체라는 이름의 사람들은 소리를 높여 천주교 사제들을 규탄하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언제부터 나온 단어인지 사전에도 없는 종북(從北)이라는 말을 사제들에게 씌우기까지 한다.
그 의미는 북한 체제나 사상을 따르거나 우호적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어이없는 이야기다.
이념적 갈등을 부추기기 위해 만들어진 과거의 망령들이 떠오른다.
역적, 반동, 빨갱이 그리고 종북.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의 선봉에 선 커다란 힘들 중의 하나는 교회였다.
그 중심이 사제들이었고 그들을 따르는 선한 신자들이었다.
사제들은 정치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세상 안에 기승을 부리고 있는 악과 맞서 하느님의 백성을 지키려는 것이다.
사제양심을 저버리면서까지 타협과 안주를 선택하기에는 사제의 소명이 너무 크다.

가톨릭 신앙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지, 20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초창기 네 번의 박해(신유박해: 순조 1년. 1801년/ 기해박해: 헌종 5년. 1839년/ 병오박해: 헌종12년. 1846년/ 병인박해: 고종3년. 1866년)로 인해 흘린 순교자들의 피로 인해 그 기반을 만들어낸 오늘날의 한국 천주교회이다.
당시는 신앙의 인정을 위한 순교였다면, 오늘날은 세상의 정의를 위한 순교가 될 것이다.
항상 더러운 권력을 움켜쥐려는 세력과 그에 기생하려는 무리들은 있어왔고,
그들의 삶의 방식도 지저분하기 그지 없다.
늘 약자를 짓누르려는 전형적인 소인배의 모습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아무리 짓밟혀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것이 약자라고 불려졌던 옳은 마음들이었다.

신자들 입장에서는 동요할 수 있다.
어떤 것이 옳은지 헷갈릴 수 있다.
다만 오랜 시행착오를 겪으며 여기까지 온 교회를 신뢰해야 한다.
성령께서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 판단의 기준은 예수님의 삶과 말씀이어야 한다.

한 가지 부탁하고 자 하는 것은 세상 언론에 흔들리지 말았으면 한다.
섣부른 판단으로 옳은 마음들에 돌을 던져서는 안 된다.

고 김수한 추기경의 말씀이 떠오른다.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면 국민들은 빛 속에서 살 것이고,
언론이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면 국민들은 어둠 속에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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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제주교구장이신 강우일 주교님의 말씀을 들어보셨으면 좋겠다.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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