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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 제1주간 월요일 - 송영진 모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3-12-02 조회수741 추천수15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예수님의 자비

 
<대림 제1주간 월요일>(2013. 12. 2. 월) - (마태 8,5-11)

12월 2일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떤 백인대장의 병든 종을 고쳐 주시는 이야기인데,

그 병든 종은 이야기 속에서 그냥 무대 배경 같은 존재이고,

진짜 주인공은 예수님과 백인대장입니다.

(그 종이 예수님을 알았는지, 예수님을 믿었는지, 그것은 알 수 없고,

또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이 이야기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백인대장의 믿음입니다.)

 

그 백인대장은 이방인이고, 유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유대교 회당도 지어 준 사람입니다(루카 7,5).

그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실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마태 8,8)

일차적으로는 그의 겸손을 나타내지만,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것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것과

이방인의 집으로 들어가면 부정을 탄다는

유대인들의 율법을 알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유대교의 율법과 관습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면서도

유대인들이 믿는 야훼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었던 것 같고,

예수님에 관한 소문만 듣고서도(루카 7,3) 예수님을 믿었던 것 같습니다.

 

(소문만 듣고서도 믿었다는 말은

예수님을 직접 만나기 전인데도 이미 믿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꼭 직접 만나서 얼굴을 마주 보아야만 신앙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빌라도나 헤로데 같은 사람들은 바로 앞에서 예수님을 보면서도 믿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예수님을 직접 만났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났던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는다면 누구든지 언젠가는 예수님을 직접 만나게 될 것입니다.)

 

백인대장의 믿음은 예수님께서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마태 8,10)." 라고 칭찬하실 정도로 특별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병자를 직접 만나지 않고 멀리서 말씀만 하셔도,

또 어떤 예식 같은 것을 행하지 않아도 병을 고치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구약성경 열왕기에 나오는 '나아만'의 믿음과 비교됩니다.

 

나아만이 병을 고쳐 달라고 청했을 때,

엘리사 예언자는 그를 만나 주지도 않고 심부름꾼을 시켜서

요르단 강에 가서 몸을 씻으라는 말만 전하게 했습니다(2열왕 5,10).

그러자 나아만은 화를 내면서

"나는 당연히 그가 나에게 나와 서서, 주 그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병든 곳 위에 손을 흔들어" 병을 고쳐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합니다(2열왕 5,11).

그러면서 그냥 돌아가려고 했는데...... (2열왕 5,12)

(그랬는데 그의 부하들이 설득해서

엘리사 예언자가 하라는 대로 했고, 그래서 병이 나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의 믿음에 대해서 감탄하시면서

그가 청한 대로 멀리서 그냥 한마디 말씀만으로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내가 너의 집으로 가는 것을 사양하지 마라.

집에 가서 직접 병자를 보고 만지면서 고쳐 주겠다." 라고 하시면서

백인대장의 집으로 가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자비를 나타내는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한 말씀만으로

병자를 고치실 수 있는 분"이라는

백인대장의 믿음이 흔들리는 일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백인대장의 집에 가시지 않은 것은

그가 오시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믿음에 대한 응답, 또는 배려 차원에서 가시지 않은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 응답과 배려도 자비입니다.

예수님께서 꼭 병자 앞에 직접 나타나셔야만

따뜻한 사랑과 자비를 드러내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르코복음을 보면 아주 대조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안수를 청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손가락을 그 장애자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고,

그 다음에는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에,

그에게 "에파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르 7,32-34).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 주시는 다른 이야기들과는 달리 아주 복잡합니다.

이 복잡한 예식은 믿음이 없는 그 장애자를 위한 배려라고 해석됩니다.

믿음도 없고 듣지도 못하기 때문에 우선 시각적인 행위를 보여주고,

그의 귀가 열린 다음에는 말씀으로 치유를 완성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병자마다 다른 방식을 사용하신 것도 예수님의 자비입니다.

 

(요한복음 5장, 벳자타 못 가의 병자는 예수님을 알지 못했고, 믿지도 않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병자를 딱하게 여기셔서

믿음과 상관없이 그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처럼 자비라는 것은 원래 조건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믿어야 예수님의 자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과 상관없이 언제나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과 자비를 어떤 방식으로 베풀어 주실 것인지는

예수님께 맡겨 드려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쪽에서

어떤 특정한 '방식'을 예수님께 요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직접 집으로 오셔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든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말씀만으로 자비를 베풀어 주시든지 간에

그것은 예수님께서 정하실 일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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