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세속화된 믿음의 공동체 [거짓에서 눈이 열리지 못하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12-05 조회수436 추천수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눈먼 사람 둘이 따라오면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시자 그 눈먼 이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예, 주님!” 하고 대답하였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르셨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마태오 9,27 - 31 / 금>

....................................................................

 

예수님께서 눈먼 사람 둘에게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느냐" 하고 물으시고 그들이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믿는 대로 되어라" 라며 말씀하십니다.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하느님의 능력이 일어나지 않고 믿음이 있는 곳에서는 하느님의 능력이 드러납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이란 없다] 라고 말씀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주님이십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도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가르침을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눈먼 두 사람에게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하시며 묻습니다.

 

사람들(신자들)은 어떤 일에 대해서 하느님의 기적을 바랍니다. 인간 자신의 노력이 불필요하다는 그런 소극적인 의미는 '하느님의 능력을 믿는 바' 믿음에 올바르지 않습니다.강도를 만난 나그네에게 기도하라고 말만 던져주고 가버리는 정도는 믿음을 오해하는 것들입니다. 

[사랑이 없는 믿음]은 인간 자신들이 생각하는 만큼 진정한 '하느님의 힘'이 아닌 것입니다. 나그네에게 사랑의 실천도 없이 그 나그네에게 단지 기도하라는 말은 하느님께 향한 믿음의 차원이 전혀 아니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황당한 소리입니까. [사랑을 회피하는 믿음]은 예수님과 거리가 한참 멀다고 할 것입니다.

 

믿는 대로 되어라 하시는 믿음의 기적은 언제나 '예수님의 마음'(사랑) 안에서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일치된 믿음 곧 [사랑과 결합한 믿음]을 가리킵니다.오늘 이 시대에는 예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과 일치되지 않는 엉뚱한 기적의 믿음에 대한 생각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믿음의 현상들이 비일비재 합니다.

여기에서 '믿음의 현상'이란, 겉 모습은 믿음의 모양이지만 - 속 모습은 참된 믿음이 아니다는 것을 말합니다.  참된 믿음이란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을 나타냅니다.'사랑이 없는 믿음'이 아니라, '사랑이 있는 믿음'을 말합니다.사랑이 있는 믿음이 바로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이다는 설명입니다. 예수님과 결합한 믿음인 것입니다.

 

눈먼 두 사람은 예수님을 자기 안에 주님으로 모셨고 [예수님의 사랑이 그들 안에 작용한 믿음]이 진정 하느님의 힘이시다는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현재 이 시대에서는 얼마나 - 자기 이기주의적인 믿음의 기적들-을 바라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사랑과 일치하지 않는 믿음의 모양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자신마저도 알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와 결합하지 않은 믿음의 모양]들이 마치 믿음의 참 모습인 것처럼 오해하면서 살아갑니다.사랑과 결합하지 않은 믿음 혹은 사랑과 일치되지 않은 기도를 [예수님의 믿음, 예수님의 기도]로 여기며 헛된 미신의 수준을 삶에서 그대로 유지합니다.

 

자신들의 행복과 평화를 아주 갈망하면서도 버려진 이들의 가난한 육신, 영혼은 도외시합니다.  버려진 이들이 겪는 악에 의한 고통과 죄에 따른 죽음에 대해서는 [강도를 만난 나그네를 피하는 것]과 같이 회피하면서, 믿음의 기도를 강조합니다.세속화에 지배받은 거짓된 강의에 따라 그렇게 세뇌 당하면서 인간 정신까지 황폐하게 만들어진 탓입니다.

세속과 결합해도 예수님과는 결합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일치할 수 없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 생전에 유다의 종교 지도자들이 -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사형시키듯이 그런 일을 반복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잘못된 율법의 적용이나 잘못된 믿음의 적용]이나 다를 것이 전혀 없습니다.

 

사랑(예수님)과 결합하지 못하면 그때 율법의 정신을 망각한 것처럼 - 오늘 믿음의 정신도 썩은 것입니다. 버려진 이들의 고통과 밀접하게 일치되지 못하고 '예수님의 믿음'을 설명하지 못합니다.[세속화된 잘못된 믿음]은 예수님의 반대자, 사랑의 반대자가 될 뿐입니다. 사랑을 십자가에 매달아 심판하는 것입니다.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요한 3, 19 참조)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요한 16, 8 참조) 나를 물리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를 심판하는 것이 따로 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요한 12, 48 참조)

 

오늘 이 시대는 왜 예수님 보다(사랑 보다) 세속의 힘에 지배 당하는지를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세속의 힘을 믿고 사랑의 힘(능력)에는 믿지 못하는 원인은 어디에서부터 올까요.예수님의 믿음은, 사랑의 힘 (사랑의 능력) 이십니다. [믿음의 힘은 - 사랑의 힘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아계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믿음 역시도 살아있는 믿음으로 마땅히 표현되어야 합니다.   눈먼 두 사람의 눈이 예수님 안에서 곧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열리는, 예수님의 믿음(예수님의 기도)을 항상 기억해야 할 복음의 깨어있슴이다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기적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죄,악의 고통과 죽음으로는 결코 표현되지 않는다는 명확성이다 하겠습니다.  바로 거짓에서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