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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12-08 조회수835 추천수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12월 8일 대림 제2주일
 
“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Mt.3,2)
 
 
제1독서 이사 11,1-10
제2독서 로마 15,4-9
복음 마태 3,1-12
 
언젠가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대형 마트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워낙 큰 매장이다보니 그 물건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지를 잘 모르겠더군요. 한참을 물건을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해서 제 근처에서 바쁘게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 마트 직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죄송한데요. 혹시 이 물건이 어디에 있을까요?”

바쁘게 일하고 있었던 이 직원은 얼른 자신의 일을 멈추고는 웃으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뭐가 죄송한데요? 저희는 원래 이런 일을 하는 거예요.”라면서 저를 끌고 물건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정말로 죄송하다고 말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죄송한 마음을 간직하고 말했던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단지 습관적으로만 ‘죄송한데요.’라고 말했던 것뿐이었지요.

아무튼 마트 직원은 제게 장난삼아 그렇게 말했지만, 형식적이고 습관적으로만 또 입으로만 사과를 외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가 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삶 안에서 이루어지는 나의 회개에 대해서도 이처럼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것은 아닐까요? 즉, 말로만 뉘우친다고 말하고 실제로는 전혀 뉘우치지 않는 위선자의 모습은 아닐까요?

대림시기에 우리들은 다가올 성탄을 준비하면서 고해성사를 봅니다. 그런데 이 고해성사를 들으면서 아쉬운 분들은 그냥 형식적으로만 죄 고백을 하시는 분입니다. 스스로의 깊은 성찰 없이 몇 가지 죄만을 쭉 나열한 뒤에 스스로 할 일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앞서 마트에서 그냥 형식적으로 말하는 ‘죄송한데요.’라는 말과 다를 바가 과연 무엇일까요?

주님께서는 이러한 형식적인 뉘우침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형식적이고 위선으로 가득 차 있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을 꾸짖으셨던 것입니다. 이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를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말하고 있지요.

여기서 독사의 습성을 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독사는 사람을 문 뒤에 곧바로 물로 가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물을 찾지 못하면 죽게 된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 점을 비유해서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꾸짖었던 것입니다. 즉, 물의 힘으로 죽음의 위험을 벗어나려는 독사처럼 죄를 짓고서는 부리나케 세례 받으러 왔다는 것이지요.

우리의 모습 역시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진정한 회개 없이 고해성사만 보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 것처럼 생각한다면, 우리도 ‘독사의 자식들아!’라는 꾸짖음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뉘우침이 아닌, 주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는 이번 대림시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러한 회개만이 가까이 다가온 하늘나라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에서 눈을 떼면 그 밖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삶도 마찬가지다(빅터 프랭클).

 
마지막까지도 '시신기증'이라는 사랑을 보여주신 아버지의 장례미사가 있었던 주안1동성당.

 
후회 없는 삶이란?

어제 친구 아버님의 장례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오랫동안 병중에 계시면서 많이 힘드셨는데, 그 모든 힘든 수고를 뒤로 하고 주님 곁으로 가셨지요.

사실 아버님은 정말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장례 미사 전날에 조문을 하러 갔었는데 장례식장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오신 것입니다. 세상 안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많은 재산을 가지고 계신 것도 아니지요. 단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봉사활동을 하셨던 고인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자신의 시신까지도 기증하면서 마지막 돌아가는 순간까지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당신 몸으로 직접 보여주셨지요.

아버님의 죽음 앞에서 과연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언젠가 어떤 책에서 봤던 구절이 생각납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날 때 사람들은 웃었고, 나는 울었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나는 웃고, 사람들은 울어주기를.”

웃으면서 이 세상을 떠나기를, 그리고 이렇게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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