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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식을 가진 사람의 사랑 (과) 무자식인 가짜 제자들의 사랑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12-09 조회수423 추천수2 반대(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마태오 18, 12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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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난 한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한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복자 마더 데레사>

 
 

각각 100 마리의 양을 하느님에게서 받은 '두 양치기'가 있었습니다

한 양치기는 100 마리의 양 중에서 1 마리의 양이 세상에서 길을 잃게 되었습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양이라서 세상으로 부터 소외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양치기는 나머지 99 마리 양들이 더 중하다며 1 마리를 버려두고 떠났습니다.그러다가 또 1마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양치기는 역시 나머지 98마리가 더 중하다며 1마리를 버렸습니다. 그렇게 자꾸 자꾸 1마리씩 버리다가, 결국 50마리 양들을 끌고서 하느님께로 갔습니다. 다른 한 양치기는 100마리 중에서 1마리를 잃자 자기 목숨을 다해 그 1마리를 지켜 내었습니다. 또 1마리를 잃게 되자 역시 자기 목숨을 걸고 1마리를 지켜 내면서 결국 100마리 모두를 데리고 하느님께로 갔습니다.이 두 양치기 중에서 누가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을까요.사랑의 기본을 모르는 삯꾼 양치기는 하나를 버린 것이 결국엔 전체를 버렸습니다. 겉으로는 전체를 사랑한다고 소리치는 거짓말쟁이의 결과인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많은 이들이 100마리의 양이 소중하다고 당연히 말하고 자주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1 마리 양을 위해 찾아 가시면 나머지 99마리의 양들은 어떻게 하는가 하고 이해되지 않는 듯이 반문을 갖는 경우가 대단히 많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99 마리의 양들에 속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하지만 자신이 그 1 마리의 양이다면 예수님께서 길잃은 1마리 양을 찾으러 가시는 것에 대하여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자신이 99마리의 양들에 포함된다고 할 때와 실제로 자신이 그 1마리의 양이 될 때는 생각이 달라지는 법입니다.

하느님께는 100 %의 사랑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생각하길 1마리 양에게 90 %의 사랑을 쏟는다면 다른 99마리의 양들에게는 나머지 10% 밖에 사랑할 수 없다 라고 계산합니다. 이와같이 이기적인 사람에게서는 자기 이윤 계산에는 대단히 수치가 밝습니다.하지만 하느님의 계산에서는 다릅니다. 하느님께서는 1마리 양에게 100%의 사랑을 전부 쏟는다고 할지라도 다른 99 마리의 각각의 양들에게도 저마다 다 100%의 사랑을 전부 쏟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인간의 힘과 하느님의 힘은 너무나 다르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사랑이란 전체를 내세우지 특정한 한 마리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자신의 세속적인 논리를 주장하면서 99마리의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얻으려고 기대합니다. 그와 반대로 '하느님의 사랑'은 1마리 양에게 사랑을 다합니다.실상 이러합니다.사랑은 힘들고 고생하며 고난을 겪는 일이기에,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일은 선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편리한 것들을 택하기 위해서 - 사랑을 반대하고, 사랑을 미워하는 - 비난과 조롱이 허다하게 벌어집니다. 사랑스러운 것들을 서로 공유하기 보다는 악한 것들을 서로 공유하려고 하는데 사랑은 무거운 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체로 거짓된 사랑이 지배하는 공동체에서는 [악에 의한 고통과 죄에 따른 죽음]이 멈추지 못합니다. 악한 것들이 서로 공유되어지는 까닭입니다. 가짜 제자들까지 세속화되어 이같은 죄악스러운 짓들을 도리어 지지하며 1마리 보다 99마리의 전체성의 세속적 논리를 주장합니다. 세속과 거짓의 이기적인 힘이 [사랑의 힘 - 예수님의 힘]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가게 됩니다.
 
[인간(세상)에게서 오는 사랑과 하느님(하늘)에게서 오는 사랑]이 전혀 다른 면목입니다.인간의 사랑과 하느님의 사랑은 엄연하게 사랑의 차원이 다릅니다. 인간의 사랑은 자신과 집단의 이기적인 세속에 끌려 가지만, 하느님의 사랑은 당신의 이기적인 계산에 매여있지 않으십니다.우리 각자 자신이 바로 길잃은 소외된 1마리 양이라면 인간은 세속 계산의 '이기적인 탈'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며 1 마리의 양을 보호하고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상기의 '두 양치기'에서도 그러하듯이 [전체를 내세우며 하나를 버리는] 이기적인 사랑은 결국 전체를 버리기도 하는 '인간에게서 오는 사랑'이지만, 하나를 버리지 않음으로써 전체를 모두 온전히 하시고자 하시는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의 모습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불순종은 진리를 반대하려는 악한 마음에서 비롯되어 집니다.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마태 25, 40 ; 45)] -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41절)

 

어떤 자식을 가진 사람이 단호하게 말합니다.[ 예수님, 예수님께서 하나에게 100% 당신의 아가페 사랑을 쏟으시면 내 자식에는 도대체 몇 %의 사랑이라도 줄 수가 있겠습니까.예수님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내 자식도 소중합니다.어느 부모가 자기 열 손가락을 깨물어서 안 아픈 게 있겠습니까.그러니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사랑은 하나 하나에게 빠짐없이 100%의 사랑을 다 할 수 있다는 하느님의 힘을 너는 알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너의 이기적인 계산에서 나오는 생각일 뿐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하나에서 전체를 구하는 사랑이다. 너의 자식을 소중하게 하듯이, 나는 내 자식을 또한 사랑한다. 나의 사랑에는 모자람이 없다.]

 

인간은 전체를 내세우면서 하나를 버리기가 일쑤입니다. 가짜 제자들 역시 세속의 영광에 지배 당하여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거짓의 힘에 속박된 사람들은 그래서 결국 '두 양치기'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한 명씩,  한 명씩 가짜 제자들의 강의에 따라서 양들을 점점 버리고 갑니다. 결국에는 전체를 다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가짜 제자들의 강의에 의해서 부끄러운 짓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죄악을 모릅니다.  공동체가 세속적인 계산에만 밝으면 이런 불행을 자초하고 맙니다. 왜 예수님께서 [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 라고 가르침을 주셨을까요. 분명한 진리의 말씀으로 거짓의 논리를 경계하라는 구원의 생명 말씀을 그대 마음에 심히 새기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전체를 위해서 하나를 버리지 않습니다. 어두운 골짜기를 다니시며 전체 99마리를 위해서는 - 꼭 한 마리 양을 찾아서 돌아오는 사랑인 것입니다.하느님의 사랑은 이와같이 [자신을 내어주는 예수님의 사랑의 모습]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속을 따르는 거짓스러운 사랑의 논리는 전체의 불행(인류의 불행)을 결코 막지 못합니다. 예수님에게서 빛으로 드러나시는 사랑은 '세속화'의 악한 결과에서 빚어지는 - 가장 열악한 1마리 양은 버리고 가자 - 라고 하는 그 특정한 한 마리 양에게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완전하게 드러나게 되어 집니다. 하지만 악한 자들과 한통속인 가짜 제자들은 1마리 양을 보살피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미워하고, 반대하며 마침내 그 사랑을 십자가에서 없애고 맙니다. 성모님께서 이를 보시며 속으로 울부짖습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루카 2, 34 - 3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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