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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3. 12. 11.대림 제2주간 수요일 - 송영진 모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3-12-11 조회수620 추천수4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대림 제2주간 수요일>(2013. 12. 11. 수)(마태 11,28-30)

 

<안식>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

 

이 말씀은 "나는 너희의 짐과 멍에를 없애는 구세주다.

그러니 나에게 와서 참된 자유와 안식을 얻어라."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 속에 "내 멍에를 메고" 라는 말씀과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라는 말씀이 들어 있어서

예수님께서 새로운 멍에와 짐을 주시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라는 말씀은

(번역이 잘못된 것은 아닌데) 뜻에 따라서 표현을 바꾸면

"내 멍에는 편안함(해방)이고 내 짐은 가벼움(자유)이다."입니다.

이 말씀은 "내가 너희를 멍에와 짐에서 해방시켜서

참된 자유를 주겠다." 라는 뜻입니다.

"내 멍에를 메고" 라는 말씀도 "나에게 와서 멍에를 벗어라."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문자에 얽매여서

'내 멍에, 내 짐'이라는 말을 예수님의 가르침과 계명으로 해석하고,

"예수님의 가르침과 계명은

우리가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가벼운 멍에와 짐이다." 라고만 해석합니다.

 

만일에 예수님이 인간들의 무거운 짐과 멍에를 벗기고

가벼운 짐과 멍에로 바꿔주시는 분이라면, 예수님은 구세주가 아닙니다.

이것은 무거운 차꼬에 묶여 있는 죄수가 가엾어서

가벼운 수갑과 족쇄로 바꿔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차꼬에 묶여 있든 가벼운 수갑과 족쇄에 묶여 있든

죄수의 처지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무거운 짐과 멍에를

가벼운 짐과 멍에로 바꿔주시는 분이 아니라

모든 짐과 멍에를 아예 없애고 감옥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참으로 해방자이시고 구세주이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계명은 멍에와 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각자 져야 하는 십자가도 멍에와 짐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멍에를 벗겨주는 열쇠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생활은

하나의 멍에를 벗고 다른 멍에로 바꾸는 생활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계명은 (십자가도) 그 자체로 해방이고 자유입니다.

신앙생활은 해방된 자유인의 생활입니다.

 

"그래도 신자들의 기본 의무로 규정되어 있는 일들이 있지 않은가?"

라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 영성체, 고해성사, 교무금,

사랑의 실천, 복음을 전하는 일 등이 기본 의무로 규정되어 있지만,

사실 그런 일들은 '의무'가 아니라 신자들의 '특권'입니다.

(그래서 '신자들의 기본 의무' 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일들을

'신자이기 때문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신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고

'신자이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은총'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사랑의 실천은 의무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의무이기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관한 계명은

사실은 계명이 아니라 우리에게 참 기쁨을 주는 은총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 곧 받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잊으면 안 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해방과 자유와 안식을 제대로 받아서 누리고 있는가?"

를 반성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해방시키고 우리에게 자유와 안식을 주셨는데,

만일에 지금 자유롭지 못하고,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면?

우선 먼저 자기 안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혹시 사탄의 유혹들을 과감하게 물리치지 못하고

끌려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닌가?(마태 13,19)

혹시 믿음이 부족해서

어떤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마태 13,21)

혹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여러 가지 욕심과 쾌락 때문에

숨이 막혀 있는 것은 아닌가?(마태 13,22 ; 마르 4,19 ; 루카 8,14)

 

공동체 안에 원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세속의 힘이 너무 깊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거나,

교회가 너무 깊이 세속 속에 들어가 있다면

공동체 전체가 자유와 안식을 잃을 수 있습니다.

세속과 다르지 않은 교회의 모습 때문에

교회에서 안식을 얻기는커녕 더 많은 스트레스를 얻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는 세속과 달라야 합니다.

이것은 공동체 구성원이 모두 마음을 모아서 함께 노력해야 할 일입니다.

 

가정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경우에 가정이(집이) 안식처가 되기는커녕

전쟁터가 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는데, '사랑' 말고는 따로 답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모범'은 예수님과 성모님과 요셉 성인의 성가정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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