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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말씀의초대◎ 2013년 12월13일 금요일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3-12-13 조회수424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3년 12월13일 금요일

[(홍)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루치아 성녀는 로마 박해 시대에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생애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루치아의 순교 사실을 전하는 5세기의 기록에서

부분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심 깊은 부모의 영향으로 일찍

세례를 받은 그녀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딸의 신변을 염려한 어머니의 주선으로

귀족 청년과 약혼하였다.

그러나 동정을 결심하고 있던

 루치아는 한사코 혼사를 거절하였다.

이에 격분한 약혼자의 고발에 따라

그녀는 결국 300년 무렵에 순교하였다.

루치아(Lu+ ia)라는 이름은

 ‘빛’ 또는 ‘광명’을 뜻하는

라틴 말에서 유래되었다.

 

◎말씀의초대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의 계명을 저버렸던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하신다.

계명을 지켜 얻을 수 있는 생명과 평화를

그들이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제1독서).

요한 세례자는 다가올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로 회개를 촉구하였고,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와 함께

 머무르는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요한 세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예수님께서 전하시고자 하는

메시지도 알아들으려 하지 않는다.

 

◎제1독서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8,17-19

17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의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18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19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2.3.4와 6(◎ 요한 8,12 참조)
◎ 주님, 당신을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이다.
○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 주님, 당신을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이다.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 주님, 당신을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이다.

○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 주님, 당신을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이다.

 

◎복음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이 오시니 마중 나가자. 주님은 평화의 임금이시다.
◎ 알렐루야.

 

◎복음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6-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17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18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19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묵상

본당 신부로 지내다 보면

다양한 모습을 갖추어야 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본당 전체를 관리하고 교우들의 영성 지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나이에 비해 좀 더 의젓한

모습을 가져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주일 학교의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장난을 치면서 어린이나

사춘기 청소년과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제 모습을 보고 어린이 복사 한 명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신부님이 어떤 분인지

저는 감이 오질 않아요.

 어떤 때는 개그맨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정말 신부님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가수 같기도 해요.

 저보다도 유치할 때가 있는가 하면

 너무 무서운 어른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모습은 오직 한 가지의

 목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바로 ‘함께함’입니다.

교우들의 어려운 사정에

함께하고자 진지해지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하고자 때로는

미숙해지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요한 세례자와 예수님의

 삶의 방식이 대조를 이루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 세례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을

정도로 고행의 삶을 살지만,

예수님께서는 죄인들과 어울리며 먹보요

술꾼처럼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두 삶은 결국 한 가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요한 세례자가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은 것은,

하느님과 함께하지 못한 채 자신의 쾌락과

욕심에만 집중하는 이들에게 회개의

징표를 보여 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어울리신 것은,

 하느님께서 도저히 함께하실 수 없다고

보이는 죄인들에게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함께하고 싶어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복음을 통하여

우리 자신은 얼마나 하느님과 함께하고자

노력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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