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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장터의 어린이같은 마음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3-12-13 조회수773 추천수6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예수님께서는 당신 세대의 사람들을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에 비유하시며

          아이들이 놀며 부르는 다음의 노래를 들려주십니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즉시 두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그 세대>와 다른 바오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 세대는 그 세대와 다른가?’였습니다.

           

          먼저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씀들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약한 이들을 얻으려고 약한 이들에게는

          약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1코린 9장)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로마 12장)

           

          장터의 아이들이 부른 노래와

          바오로 사도가 하신 말씀들은 정반대지요.

          장터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이고

          바오로 사도는 남 중심적입니다.

           

          장터 아이들은 자기는 남의 장단에 맞추지 않으면서

          남은 자기 장단에 맞추지 않는다고 타박을 하는데 비해

          바오로 사도는 철저히

          다른 사람의 처지와 상태에 맞춥니다.

           

          장터 아이들은 자기만족이 모든 것의 목적이고

          바오로 사도는 사랑과 구원이 모든 것의 목적입니다.

           

          예수님은 물론이고 세례자 요한도

          자기중심과는 정 반대입니다.

          어떻게 보면 요한은 너무 금욕적이고 엄격하며, 반대로

          예수님은 너무 자유스럽게

          먹고 마시며 죄인들과 어울리시지만

          결코 자기중심적이지 않다는 면에서

          두 분 다 공통적입니다.

           

          두 분 다 하느님 나라를 실천하십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 나라의 정의를 실천하고,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그 낮추시는 사랑을 실천하십니다.

           

          죄인에게 맞추시고,

          약한 자에게 맞추시고,

          우는 자에게 맞추시고,

          물론 기뻐하는 사람에게도 맞추십니다.

           

          그런데 사랑만이 자신을 굽힐 수 있고 맞출 수 없습니다.

          당연히 사랑 없는 사람은

          굽힐 수 없고 맞출 수가 없습니다.

          혹 머리로는 그리 해야 한다고 생각해도

          그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장바닥에서 노는 아이들에 비유하십니다.

          자기중심성은 어린 아이,

          곧 자기 밖에 모르는 미성숙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우리 세대는 주님께서

          어린 아이와 비교한 <그 세대>와 다릅니까?

          우리 세대도 <그 세대>와 다를 것 없고,

          남 얘기할 것 없이 제가 바로 그러합니다.

           

          올해 저희 공동체는

          <더불어 살아가는 지역 공동체> 운동 차원에서

          이와 관련한 공부를 신자들과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어제는 그 네 번째 공부를 하였는데

          눈비가 왔기 때문인지

          그리 많은 분들이 오시지 않았습니다.

           

          이때 저에게는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일었습니다.

          서운한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인데,

          아시다시피 서운한 마음은

          나를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이고

          안타까운 마음은 나 아닌

          누구를 염려하는 사랑의 마음이지요.

           

          그러니까 좋은 것을 놓치는

          그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지만

          이렇게 좋은 교육을 일껏 마련하였는데도, 다시 말해서

          멍석을 깔아놓았는데도

          저희 장단에 춤추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장터의 어린이처럼 서운해 하는 마음이

          더 크게 일었습니다.

           

          양들을 위한 목자가 아니라

          목자를 위한 양이기를 요구했던 셈이지요.

          좋은 일을 한다면서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를

          절실히 깨달은 어제였습니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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