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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3. 12. 15. 대림 제3주일 - 송영진 모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3-12-14 조회수594 추천수8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대림 제3주일>(2013. 12. 15.)(마태 11,2-11)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

 

"그런데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마태 11,2-3)."

 

지금 이 내용만 보면,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의심한 것처럼 보이는데,

만일에 진짜로 요한이 그랬다면 복음서의 다른 내용들과 많이 모순됩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려고 하실 때에 그것을 말렸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마태 3,14)."

 

그는 사람들에게, 또 자기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소개했습니다(요한 1,29.36).

 

또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직접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 주셨다고 증언했습니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요한 1,33-34)."

 

그래서 요한이 예수님을 의심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고,

뭔가 다른 이유로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라는 뜻인데,

이 말은 요한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라고 묻게 한 것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안 믿었기 때문에 그들을 믿게 하려고,

또는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을 믿게 하려고 그랬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라고 하시면서 장애자들과 병자들이 치유를 받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는 말씀을 하시는데(마태 11,4-5),

이 말씀은 "너희가 나의 일들을 보았고, 나의 설교를 들었다면

나를 믿어라." 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요한이 믿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요한의 제자들과 사람들이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마태 11,6)." 라는 말씀도

세례자 요한을 겨냥해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해서 하신 말씀으로 해석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오해를 막기 위해서(요한을 변호하기 위해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 설명하십니다.

 

요한은 세속의 인기나 명성이나 존경을 추구하지 않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아닌) 사람이고,

또 사람들에게 그것을 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요한은 세속적인 부귀영화를 추구하지 않는

(왕궁에서 살지도 않고 고운 옷을 입지도 않는) 사람이고,

또 사람들에게 그것을 약속하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요한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인데,

사실은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위대한) 인물" 입니다(마태 11,9).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일을 준비하기 위한 선구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요한이라는 인물을 설명하신 것은

요한이 예수님을 의심한 것은 아니라는 변호이고,

또 요한이 다른 예언자들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을 강조하신 것은

당신의 사명이 그만큼 위대하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세례자 요한이라는 인물이 아니라

요한이 증언한 '예수님'이라는 분과 '예수님의 일'과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얻고자 하는 것들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세속적인 뭔가를 얻으려고

광야에 있는 요한을 찾아간 것이 아닌 것처럼,

지금 우리도 세속적인 뭔가를 얻으려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서 어떤 세속적인 것들을 얻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세속의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마태 11,7)" 라는 질문은

"너희는 무엇을 구하러 나를 믿느냐?"

라는 질문으로 바꿔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은 다시

"너희는 왜 대림시기를 지내느냐?" 라는 질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그렇게 하라고 정해 놓았기 때문에?

늘 해왔던 일이기 때문에?

그저 단순히 성탄절을 잘 지내기 위한 예행연습으로?

 

(구유와 트리 설치나 성탄절 성가 연습이나 잔치 준비 같은 일만 신경 쓰고,

대림시기의 의미 같은 것은 무시해버리고, 회개와 보속을 소홀히 여긴다면,

그건 대림시기를 지내는 것이 아닙니다.)

 

성탄절을 잘 준비하기 위해서 정성을 쏟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지만,

외적인 정성 말고(화려한 껍데기 말고)

내적인 정성이(진실한 회개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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