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하느님의 뜻: 변화의 힘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12-15 조회수970 추천수1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3년 가해 대림 제3주일


<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


복음: 마태오 11,2-11





세례자 요한


엘 그레코(Greco, El) 작, (1600), 샌프란치스코 파인아트 미술관


     < 하느님의 뜻: 변화의 힘 >

                

  한석봉은 중국까지 이름을 떨쳤던 명필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한석봉을 알아보고 글을 써 달라고 할 때 한석봉은 먹물을 백지에 뿌렸습니다. 사람들이 화도 내고 의아해 할 때 한석봉은 그 위해 그 먹물이 튄 자국을 획 안으로 넣어서 멋진 글을 완성합니다. 이렇게 중국에서도 유명한 명필이 되었습니다.

그런 한석봉이 있기까지 당신 모든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한석봉의 어머니의 이야기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한석봉은 어렸을 때부터 천재적인 서예 능력이 있었으나 가난한 어머니는 한석봉에게 종이와 먹을 사 줄 여유가 없었습니다. 한석봉은 손가락에 물을 묻혀 바위나 항아리 위에 글쓰기 연습을 하였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어머니는 떡을 팔아 종이와 먹을 사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당신이 사다 준 종이와 먹이 줄어들지 않은 것을 보고 공부를 게을리 하는 한석봉을 나무랐습니다. 한석봉은 여전히 항아리 위에 물로 글을 썼는데 이는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해서였습니다. 한석봉은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습니다. 그것이 참다운 효도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번째 일화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절에 들어가 공부하며 3년이 지나자 스승조차 감탄해마지 않는 글 솜씨를 지니게 되자 의기양양하여 집에 돌아왔을 때 반가운 기색 하나 없이 불을 끄고 떡 썰기 시합과 글쓰기 시합을 하였습니다. 어머니의 떡은 같은 두깨로 일정하게 잘려있었지만 한석봉의 글은 영 형편없었습니다. 이에 다시 절로 올라가 수련을 마치게 됩니다.

 

한석봉을 당대 가장 유명한 명필이 되게 한 것은 바로 어머니의 희생이었습니다. 그 희생 안에는 이 존재합니다. 전에 자신의 아들을 사무라이로 만들려던 어머니가 성을 짓는데 기둥으로 들어간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그 아들은 힘들 때마다 자신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의 을 되새기며 노력하였기에 일본의 유명한 사무라이가 되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도 한석봉의 어머니도 그 희생을 받지 않으려는 한석봉을 나무라고 그 희생에 감사하면 당신의 을 따라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따르기를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우리를 위해 어떻게 희생했는지 성찬례 때 우리는 매번 그 사랑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한 그분의 이 우리 양식이 되어 우리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큰 사람은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얼마나 크든지 하늘나라의 가장 작은 사람도 그보다는 크다고 하십니다. 이 말뜻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 내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늘 높이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를 부러워하던 한 애벌레가 있었습니다. 그는 나뭇잎을 먹으며 가끔 하늘을 나는 아름다운 나비들을 부러워할 뿐 자신 안에 나비가 들어있다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애벌레는 커다란 기둥을 봅니다. 자신과 같은 애벌레들이 구름 위까지 서로를 밟고 기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나비처럼 날지는 못하더라도 하늘 위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중간쯤 올라가다가 자신이 밟은 한 여자 애벌레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둘은 내려와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남자 애벌레는 기둥의 꼭대기가 궁금합니다. 그래서 여자 애벌레를 떠나 빠르게 올라갑니다. 여자 애벌레는 슬픔에 빠져 길을 걷다가 나무 위에 위태롭게 걸려있는 애벌레를 봅니다. 누에고치가 되려는 것이었습니다.

 

애벌레가 아무리 훌륭하고 크고 대단하여 기둥 끝까지 기어 올라가더라도 가장 약한 나비의 삶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 사람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애벌레는 스스로 누에고치가 되어 나비가 될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누에로 만들어 죽일 수 있을 만큼 자신 안에 나비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자신을 죽인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늑대를 부모로 믿는 아이들이 사람을 부모로 둔 아이들과 같은 삶을 절대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은 나보다 윗 단계의 누군가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현 상태를 초월합니다. 만약 늑대를 부모로 믿는 아이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부모가 늑대라고 믿는 자기 자신을 죽이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누에고치가 되는 과정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 자신을 사람의 지위에서 하느님의 지위로 높일 수 있음을 믿는 것과 같습니다.

 

저와 함께 공부했던 한 신부가 고생하시는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 백사를 잡으러 산으로 다니다가 백사를 잡지는 못했고 그냥 뱀 한 마리를 잡아왔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것을 흰 페인트 통에 넣어 빨래 줄에 널어놓았다고 합니다.

뱀에 흰 페인트를 칠하면 백사가 될까요? 백사는 일반적으로 산삼을 먹고 사는 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백사가 발견된 곳에는 산삼 밭도 함께 있다고 합니다. 산삼에 있는 성분이 뱀의 색소를 눈만 빼 놓고 다 빠져버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뱀은 큰 값어치가 없지만 백사는 부르는 것이 값입니다. 존재의 변화는 무언가를 받아들임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 받아들임은 내 안에 있는 모든 어두운 색소들을 벗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백사들만 있는 곳에 어떻게 값어치도 없는 뱀을 함께 넣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보석들만 넣는 상자에 어떻게 돌덩이를 넣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하느님나라는 존재의 변화를 겪지 않고서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사람으로서는 세례자 요한처럼 완전해지더라도 절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지만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하느님이 된다면 하늘나라의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서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모두 신이라고 불렀다.”(요한 10,35)

 

우리는 진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진주는 아무 보잘 것 없는 작은 돌멩이 부스러기가 진주조개 안으로 들어가서 그 진주조개의 희생을 입고 모든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진주로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희생과 뜻 안에서 아무 보잘 것 없는 존재였지만 귀한 진주와 같은 존재로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의 뜻은 그러나 계속됩니다. 성당에만 다니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시고 사제가 되기를 원하셔서 오랜 갈등 끝에 사제의 길로 들어섰고 유학을 가기를 원치 않을 때는 유학을 보내셨으며 지금은 본당이 좋지만 또 다른 부임지로 옮기라고 하십니다.

작은 모래알은 진주조개 안으로 들어갈 때 자유를 빼앗긴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죽음입니다. 그러나 나의 자유를 죽이지 않으면 새로운 존재로 태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태어남만 가지고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할 수 있으나 만약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하늘나라에는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소명을 완수할 때야만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항상 성체와 함께 그분의 뜻이 내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분의 뜻 안에서 살 때야만 내 자신이 변화된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맙시다.

 

 

 

 


 



 


 

 오산 성당 홈페이지: http://cafe.daum.net/ca-osan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