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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운명이다 -삶의 의미-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12-23 조회수593 추천수6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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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3 대림 제4주간 월요일, 말라3,1-4.23-24 루카1,5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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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다

-삶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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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입니다.

사람마다 다 다른 운명입니다.

그렇게 사람이 많아도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고 다 그만의 고유한 운명이듯이

다 다른 성인들입니다.

공동체에 똑같이 몸담아 살고 있어도 다 다른 고유한 삶이듯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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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란 말도 있듯이 죽음을 포함해 삶 전체가 운명이란 생각이 듭니다.

지난 후 ‘만약…했더라면’ 이런 저런 생각도 해보지만 다 부질없는 상상일 뿐입니다.

자유로운 것 같지만 우리는 얼마나 많은 한계 내에서 부자유하게 살아가는 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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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지를 비롯하여 가까이 살다가 떠난 많은 분들을 대하면

‘아, 그분의 운명이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 그만의 운명의 십자가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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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온통 고생하며 힘들게 살다가 불행하게 세상을 떠난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앞으로 인간 수명은 늘어나면서 불우한 노년 인생은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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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깊이 들여다보면 저절로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운명론자가 되는 기분입니다.

정말 힘든 것은

살아가면서 욥이 의문을 제기했던 것처럼 알 수 없는 삶의 부조리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기가, 삶의 의미를 찾기가 참 힘들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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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희수(77세)를 맞는 '우리 시대의 현자'라 일컫는 어느 석학과의 인터뷰 한 대목입니다.

-올해로 희수(77세)를 맞았다. 나이 듦에 대한 생각은?-

“인생에 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느낌이다.

다시 한 번 릴케를 인용하자면,

릴케는 삶과 죽음 중 죽음이 진짜이고

삶이란 죽음의 바다 위에 일어나는 작은 파동에 불과하다고 했다.

아주 깊은 의미를 담은 이야기다.

조심스럽게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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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는 아니지만 깨달음의 수준이 상당한 분입니다.

사부 성 베네딕도 역시 늘 눈앞에 죽음을 환히 두고 살라 했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저절로 하느님을 찾게 되며 삶 역시 조심스럽고 겸손해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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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덕의 어머니이자 성덕의 잣대가 겸손입니다.

겸손할 때 삶의 의미인 주님도 계시됩니다.

내가 삶의 의미가 아니라 주님이 내 삶의 의미임을 깨닫습니다.

‘운명이다’가 ‘하느님 뜻이다’로 바뀝니다.

숙명론적 비관주의의 삶에서 해방되어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늘나라를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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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의 주인공인 세례자 요한의 삶이 좋은 본보기입니다.

인간적 눈으로 볼 때 얼마나 불우한 운명의 세례자 요한의 생애였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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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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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말라키 예언자를 통해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운명이 점지된 세례자 요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의 작명과정 중 의견이 분분했지만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쓰는 순간

즈카르야는 즉시 혀가 풀리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고 ‘이 아이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말합니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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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자 요한뿐 아니라 우리 역시 타고난 고유한 운명입니다.

요한의 이름 뜻은 ‘하느님이 불쌍히 여기신다.’입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이 불쌍히 여기시는 또 하나의 요한입니다.

주님이 세례자 요한의 운명이자 삶의 의미였듯이 주님은 또한 우리의 운명이자 삶의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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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운명이지만 믿는 우리들에겐 하느님의 부르심, 성소입니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우리를 보살핍니다.

이런 깨달음이 우리를 부자유하게 하는 숙명론에서 벗어나 참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합니다.

이래서 하느님 찬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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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한 즈카르야가 운명론에 대한 유일한 답입니다.

끊임없는 하느님 찬미가 우리의 운명을 바꿉니다.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오로 사도의 권고처럼

항상 기뻐하면서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늘 감사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양 날개를 달고 끊임없이 하느님 창공을 비상할 때 참 자유요 기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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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평생, 매일 끊임없이

찬미와 감사의 미사와 성무일도의 공동전례기도를 바치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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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매일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사하시어

운명론에서 벗어나 각자의 성소에 항구할 수 있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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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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