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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3-12-25 조회수456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예수 성탄 대축일 낮 미사>(2013. 12. 25. 수) (요한 1,1-18)

    "......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10-11)."

    이 구절은 세상 사람들이 전부 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맞아들이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알아보고 맞이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

    앞의 1절에서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라고 했기 때문에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에게 오셨다." 라는 뜻이 됩니다.

    또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라는 말은

    "우리는 예수님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알아보았고, 맞아들였다." 라는 뜻이 됩니다.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라는 말은

    "예수님은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시고 하느님이신 분이다." 라고 증언하는 말입니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이라는 말은

    아버지가 아니라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됩니다.

    '은총'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은총이고,

    '진리'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는 구원의 진리입니다.

    (우리 쪽에서 생각하면 '은총'은 무상으로 받는 것이고 '진리'는 깨닫는 것인데,

    그 깨달음도 사실은 은총으로 받는 것입니다.)

    "충만하신"이라는 말은 일차적으로는 예수님 안에 가득 차 있다는 뜻이지만,

    모든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일부 사람들만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는 권능을 갖고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써

    인류는 예수님을 알아본 사람들과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로,

    또 예수님을 맞아들인 사람들과 맞아들이지 않은 사람들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왜 누구는 알아보고 누구는 못 알아볼까?

    왜 누구는 맞아들이고 누구는 맞아들이지 않을까?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에서 복음을 선포하셨을 때,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기는커녕 죽이려고 했습니다(루카 4,29).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소."

    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요한 4,42).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나자렛 사람들에게나 사마리아인들에게나

    같은 복음을 선포하셨을 것이고, 같은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자렛 사람들은 그 말씀이 듣고 싶어 하던 말씀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사마리아인들은 그 말씀이 바로 자기들이 듣고 싶어 하던 말씀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였습니다.

    이 차이에 대해서, 나자렛 사람들은(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마을의 사마리아인들은

    영적인 구원을 가져다주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좋은 예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계실 때의 상황입니다.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예수님께

    "당신이 메시아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라고 하면서 비아냥거렸습니다(마르 15,32).

    그러나 그 자리에 있었던 백인대장은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라고 말합니다(마르 15,39).

    (이 말은 단순한 증언이 아니라 신앙고백입니다.)

    왜 누구의 눈에는 그냥 죄수로만 보이고,

    누구의 눈에는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보였을까?

    백인대장은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보지 못한 어떤 것을 보았던 것일까?

    그가 무엇을 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평소에 추구하던 것이 달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바라던 메시아의 모습은

    나자렛 사람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와 같았고,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죄수를 도저히 메시아로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백인대장은 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함께 같은 죄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아마도 그는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메시아가 아닌

    다른 메시아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요한 3,19-20)."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싫어할 수밖에 없고, 예수님을 거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속된 욕망을 채워주려고 오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기적인 욕망에서 해방되기를 바라고 참으로 구원받기를 바라는 사람은

    예수님을 받아들이게 되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게 됩니다.

    - 송영진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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