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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 26일 목요일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R)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3-12-26 조회수774 추천수14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1226일 목요일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R) - 사도  6,8-10; 7,54-59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이 보입니다."

 

<제2의 예수 그리스도, 스테파노>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교회 전례는 아기 예수님의 성탄 대축일 바로 다음날 돌에 맞아 참혹하게 순교한 스테파노 성인의 축일을 기념합니다. 결국 이 말은 우리 가톨릭교회는 고통이나 십자가를 멀리하거나 외면하는 교회가 아니라 아주 긴밀한 관계,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스테파노의 삶과 죽음은 어찌 그리도 예수님의 생애와 흡사한지 모릅니다. 전승에 따르면 스테파노는 현재 예루살렘 동쪽 성벽의 북쪽 끝에 있는 성문 밖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 성문은 스테파노 성문이라고 불렸습니다.

 

스테파노는 신성모독이란 죄명으로 성문 밖으로 끌려 나가 돌에 맞아 죽는 형벌을 당합니다. 굵직굵직한 돌들을 고스란히 맞으며 죽어가던 스테파노는 십자가상 예수님과 유사한 모습을 보입니다.

 

무지막지한 적대자들은 무죄한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한 것도 모자라 극심한 고통 중에 신음 중이던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욕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해도 해도 너무한 그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들고 있던 돌을 하나하나 던질 때 마다 조금도 피하지 않고 맞으며 죽어가던 스테파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스테파노가 고발당한 이유, 다시 말해서 신성모독죄에 걸린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적대자들 앞에서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너무도 당당하고 의연하게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조리 있게 표현했습니다. 그 유명한 설교, 길고도 논리정연한 스테파노의 설교는 사도행전에 잘 소개되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말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스테파노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자 하느님의 아들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고, 예수님께 대한 확고한 신앙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만이 영원한 생명과 구원의 길이라는 진리도 확실히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죽음이나 권세, 적대자들의 횡포 앞에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그리고 당당히 맞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수도회 입회하기 전에 직장생활을 좀 했었습니다. 그때 마침 한국 순교자 시성식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주례로 여의도에서 개최되었고, 전국에서 모인 수십만 인파 속에 저도 들어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꽤 웃기는데 그때 당시 여의도 시성식을 마치고 제가 살던 거제도로 돌아가는 길에 제 마음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정말이지 순교영성으로 활활 불타올랐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저는 기회만 닿으면 순교해야지 하면서 계속 어디 순교할 기회가 없나?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녔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순교할 기회는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습니다. 당장이라도 순교를 하려고 했지만 시대가 저를 받쳐주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꼭 피를 흘려야만 순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입니다. 신유박해나 기해박해가 없는 지금 이 시대 하느님께서 제게 바라시는 순교는 피를 흘리는 적색 순교가 아니라 매일의 고통과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가는 백색순교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우리 한국 천주교 신자들은 모두 순교자들의 후예들입니다. 우리들의 피 속에는 순교자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토록 큰 은총을 입은 우리 순교자들의 후예에게 주어지는 한 가지 중요한 과제가 있습니다.

 

더 이상 신유박해나 기해박해가 없는 오늘 날의 이 시대, 우리 선조들이 지니셨던 그 놀라운 순교정신, 순교영성을 어떻게 우리 삶 가운데서 실천할까 하는 것입니다.

 

정답은 너무나 간단하더라구요. 죽을 각오로 현실의 고통에 직면하는 일입니다. 죽기 살기로 열심히 기도하는 일입니다. 순교자의 마음으로 정말 용서하기 힘든 그 인간, 정말 꼴보기 싫은 그 인간을 다시 한 번 용서하고 포용하는 일입니다.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이다.’ 라고 외치며 최선을 다해서 사는 일입니다. ‘앞으로의 1년을 내 생애 가장 멋진 1년으로 장식하겠다.’고 다짐하며 불꽃처럼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바로 순교영성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의 삶이란 것, 멋진 티브이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호화찬란하다거나 특별하지가 않습니다. 때로 지루하고 때로 따분하고 때로 구질구질하고, 때로 엄청나게 구립니다. 기쁨보다는 슬픔이, 희망보다는 절망이 더 많은 우리들의 삶입니다.

 

순교영성을 산다는 것은 이렇게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매일의 삶 가운데서도 활짝 웃으면서, 기쁜 얼굴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순교는 한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은총입니다. 순교자는 자신의 순교를 통해 또 다른 예수 그리스도가 되기 때문에 제2의 예수 그리스도로 불리게 됩니다. 인간이 하느님화되는 것이 순교입니다.

 

현대의 순교자는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오늘날 순교란 순간순간 죽고 순간순간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순교란 죽은 사람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죽은 사람은 어떻게 처신합니까? 그저 묵묵부답입니다. 모욕을 줘도 침묵합니다. 멸시를 당해도 침묵합니다. 그저 하느님 자비와 은총만을 바랄 뿐입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부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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