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매일의 성탄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신부님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3-12-26 조회수619 추천수9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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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낮 미사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요한 1,1-5.9-14>



매일의 성탄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많이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랑하시기에 당신의 아들을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 주셨습니다.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아기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구세주이십니다. 어둠을 비추는 빛이십니다. 구세주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화가 여러분과 가정에, 온 누리에 함께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저희성당 구유는 2014년 교구장 사목지침 ‘성체중심의 지역 복음화’을 반영하여 만들었습니다. 이 외관을 보시면 성광의 모습입니다. 성광 안에 아기 예수님을 모셨습니다. 성체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말구유에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의 삶의 자리에 함께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구유에 태어나셨다는 것은 겸손과 당신을 밥, 양식으로 내어주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복음을 보면, “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1,1).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1,14).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적양식을 주셨고,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습니다. 그리고 성체성사를 통하여 오늘도 밥이 되어 주십니다. 영양이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6,51).하셨습니다. 성광 안에 모셔진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며 더 잘 예수님을 모실 수 있기를, 더 자주 영성체할 수 있도록 다짐하는 봉헌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처럼 낮은 자리에 겸손함으로 머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웃에게 또 하나의 양식으로, 영양으로 복이 되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성탄은 우리를 구원하러 하느님이 사람이 되셔서 역사 속으로 들어온 뜻 깊은 날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서 내 앞에 오신 날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하필이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사람이 사는 집에는 방을 얻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방은 많았지만 내어 놓은 방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비천한 마구간을 통해서 모든 가난한 사람의 힘이 되고 위로가 되셨습니다. 말구유에 눕혀서 당신의 앞으로의 삶을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장하면서도 목수인 아버지 요셉과 함께 일하심으로써 사람들의 노고와 땀, 보람을 몸소 체험하심으로써 위로와 격려를 주십니다. 그러나 끝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이들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되었습니다. 총독은 그분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다고 말하면서도 사형선고를 내리고 손을 씻었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죄악을 짊어지고 죽으셨으나 부활을 통해 죽음을 이기셨고 사랑의 승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부활하시어 영원히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사람들에게 오신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탄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사람이 되고, 예수님과 함께 죽지 않는 삶을 사는 새사람으로 오늘 이 성탄축일에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내 마음 안에서 거듭 거듭 태어나시도록 마음의 방을 내 드려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천번 만번 태어나신다 해도 내 마음 안에 그분을 낳아 드리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성탄은 단순히 과거 사건이 아니라 오늘도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날 소명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어둠이 짙어 오지만 우리는 빛이신 예수님을 가슴에 모시고 그 어둠을 비추어야 합니다. 죄악의 어둠, 시기와 질투, 분노, 적개심, 미움으로부터 벗어나 용서와 화해, 기쁨과 평화, 사랑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것이 삶의 성탄입니다.

 

어느 날, 마더데레사 수녀님께서 길을 지나시다가 한 어린이의 고름을 만지며 치료하고 있을 때 함께 살고 있던 분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수녀님, 수녀님은 잘사는 사람이나 편안하게 살아가는 사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볼 때 질투나 시기심이 생기지 않나요? 수녀님은 정말 이런 삶에 만족하십니까? 그랬더니 수녀님께서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수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수녀님께는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9,35).는 주님의 삶을 이미 살고 계셨습니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마태20,28) 하신 말씀이 가슴 안에 살아 있었습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낮추지 않고는 주님을 만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당시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 율법학자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끝내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구세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메시아가 탄생하면 당연히 자신들을 찾아와서 메시아임을 증명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잘난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잘 믿고, 교리도 많이 알고 그래서 주님이 다시 오실 때는 자신 만만하게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겐 ‘아는 게 병’이었습니다.

 

헤로데 왕은 권력의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처음부터 자기가 아닌 다른 왕이 태어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입으로는 나중에 동방박사들에게 경배하겠다고 했을 뿐 마음으로는 이미 아기를 죽여 없애버렸습니다. 이는 누구든지 나보다 더 낫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학식이나 인물, 돈을 잘 번다든지 인기가 높다든지 칭찬을 더 받든 나 보다 더 나은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성격을 지닌 사람이 있습니다. 시기와 질투, 정말 이것도 큰 병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고유한 달란트를 가지고 그것을 활용하기도 힘든 데 말 입니다.

 


진실하게 주님을 만날 수 있는 분은 데레사수녀님처럼 허리를 굽히는 사람입니다. 허리를 굽혀야 하고 말구유로 내려오신 밥통 안에서 ‘나는 네 밥이야’하고 자신을 아낌없이 내놓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2,5).

 

주님께서는 높은 데가 아니고 낮은 데에 계십니다. 우리가 이런 분을 생각하면 거기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니 거기에 이미 와 계십니다. 혹 우리가 이미 와 계신 분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내 마음의 문이 아직 그분에게 향하고 있지 못한 까닭입니다. 우리 마음을 그분께로 돌려야 하겠습니다. 자기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에로 돌리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분과 함께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눈으로 보고 그분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15,12).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매일 매순간 사랑하는 것이 삶의 성탄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사랑에 굶주려 그대를 바라보십니다. 친절에 목말라 그분은 그대에게 구걸하십니다. 충절에 헐벗어 그분은 그대에게 희망을 겁니다. 그대 안에 머물 집이 없어 그분은 간청하십니다. 그대는 그 한 사람이 되어줄 수 있겠습니까? - 마더 데레사-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이 되어서 세상을 밝게 비추고 기쁨과 평화를 나누어 주시길 희망합니다. 우리의 이웃이 여러분을 만난 것이 참 기쁨이 되고 큰 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도록 그에 걸 맞는 삶을 봉헌하시길 바랍니다. 내 삶의 자리에 예수님을 낳아드리는 매일의 성탄을 이루시길 기도 하며 다시 한 번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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