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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초보시절의 내 모습을 생각하며 - ▒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3-12-26 조회수445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초보시절의 내 모습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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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티성지의 구유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찬미예수님

제가 한 이십 여 년 연구를 했어요.
손가락이 열 개인 이유가 무엇일까?
손가락 열 개를 보면서 엄마가 열 달 동안 생명을 걸고
나를 지켜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으로 손가락이 열 개예요.

손가락 발가락 합해서 이십 개인 이유는
사람구실 하려면 이십년은 되어야 하니, 너 혼자 컸다고 까불지 마라!
절대로 하느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라!

얼굴에 있는 일곱 개의 구멍으로는 성령칠은이 들어가는 곳이다.
아멘!

코는 냄새만 맡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으라는 것입니다.
눈으로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세상 이면의 것, 영적인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귀로는 영적인 것, 아름다운 것을 들어야 돼요.

과연 성모님은 어떤 태교를 하셨을까?
기도의 태교를 하셨을 겁니다.

우리가 성체를 영할 때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내 몸에 잉태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걸어 다니는 감실, 움직이는 감실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몸 안에 모신 사람은 기도의 태교를 해야 합니다.

태교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태교는 내 안에 머무시는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기도의 태교입니다.

성모님의 기도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오늘은 예수님의 탄생으로 알고 있지만 정확한 날짜는 아니예요.
예수님의 탄생을 12월 25일로 정하기 전까지
로마제국은 우상숭배에 빠져있었던 제국이었어요.

로마의 국교를 가톨릭으로 정할 당시 로마 사람들의 머릿속에
가장 뚜렷이 박혀있었던 날이 태양신의 축제일인 12월 25일이었어요.
태양신의 날 대신, 그 자리에 예수님의 탄생일을 정한 거예요.

우리 머릿속에 예수님은 눈 오고, 춥고, 바람 부는 날에
태어나신 걸로 기억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짐승냄새 풀풀 나는 구유 안에서 태어나신 것은 분명한 사실이에요.
이것이 메시아의 탄생 모습이에요.

하느님께서 왜 그렇게 태어나셨을까요?

제가 피정 때, 주님의 강생에 대해서 예를 들어드린 적이 있어요.
시골아줌마가 서울에 와서 쇼핑을 다녔어요.
휘황찬란한 서울의 거리, 윈도우 아래에서 얼마나 구경거리가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아이는 자꾸 울면서 보채기만 합니다.
“야, 임마, 저것 좀 봐! 우리 시골에는 저런 게 없잖아!”
우는 아이를 달래다가 아이 신발 끈을 묶어주려고 바닥에 앉아서
아이 눈높이에서 보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의 엉덩이 밖에 안 보이는 거예요.
‘아, 이래서 아이가 이렇게 보채었구나!’

십계명만 강조하면서 ‘이리로 올라와!’
이것은 구약이었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내려오셨어요.
눈높이 사랑!
시궁창에서 허덕이는 우리에게 오셔서 함께 팔짱을 끼고 올라가신
예수님의 눈높이 사랑이 바로 강생의 사랑입니다.

교만한 인간을 부끄럽게 만드시려고
사치스런 인간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더 이상 가난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게 태어나신 거지요.

교만때문에 끊어졌던 우리와 하느님과의 다리가
예수님의 겸손으로 이어지는 순간이 바로 그리스도 강생의 뜻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겸손하게, 가난하게 오신 메시아께 우리는 머리 숙여 경배 드립시다.

여러분이 오늘 이 깊은 배티 산골에 오신 이유가 있을 겁니다.
아기 낳은 집에 오는 이유는 축하하려는 뜻이지요.
축하하러 갈 때는 반드시 선물을 가지고 가야 됩니다.

대축일 구유예물 몇 만원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영적인 선물!
예수님이 가장 원하는 선물이 무엇이겠습니까?
용서와 화해의 제물입니다.

어떻게 용서와 화해를 해야 하느냐!
지금 신부님이 용서라는 단어를 꺼내니까 그동안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갑자기 그놈의 얼굴이 떠올라 소름이 쫘악~ 끼치고 주먹이 불끈 쥐어질 수 있어요.

저는 피정 때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만큼 용서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싸워야 되는 화두입니다.

누구나 다 초보인생 시절이 반드시 있었습니다.
초보운전자들이 앞길을 가로막아서 정체 현상을 일으키거나
시동을 꺼트려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때가 있습니다.

처음 차를 모는 사람들은 뒤에다가 뭐라고 써 붙여요?
‘초보운전’
‘운전시작 이틀째’
‘왕초보’
‘나는 이유도 없이 브레이크를 자주 밟습니다.’
협박성 문구 중에는
‘알아서 피하시오!’
‘나는 옆도 못 봐요!’
그런 문구를 보면 초보 운전자들이 운전대를 잡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보여요.

제가 본 글귀 중에 가장 인상 깊고 돋보이던 문구는
‘당신도 초보운전이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는 글귀였습니다.

운전을 오래하면 한 손으로 여유 있게 고개도 돌리곤 하지만
그러다 그런 글귀를 보면서
‘나도 필기, 실기에서도 몇 번씩 떨어지고, 버벅거리던 시절이 있었지~’

우리들은 누구나 인생의 초보자 시절이 있었어요.
철없던 시절에 어른께 혼도 많이 나기도 했고, 신입생시절도 있었고,
사회초년생으로 실수도 많이 했던 시절도 있었어요.

그러나 올챙이 적 시절을 잊어버린 입 큰 개구리 마냥
내게는 한 번도 초보자 시절이 없었다는 듯이~
나는 처음부터 전문가였던 것처럼~
나는 처음부터 품성이 괜찮았던 사람인 것처럼 착각해서
내 앞에서 잘 모르거나 실수하는 사람을 다짜고짜 다그치고
화를 내고, 분노한다면 얼마나 자기기만이요, 자기모순입니까?
내 꼬라지가 과연 저 사람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 걸까!

내가 초보였던 시절을 기억해 보면 용서는 어려운 것이 아닌 겁니다.
미워하기보다 사랑하기가 더 어렵다고 하지만
용서가 사랑의 시작이니 그렇다면 사랑도 내 것 입니다.

용서하고 난 다음단계가 사랑이 아니에요.
용서가 시작되면 사랑도 분명히 내 것이 됩니다.

아기 예수님은 인성으로는 오늘 초보자로서의 삶을 시작합니다.

성모님 품안에서 울며 보채는 핏덩이, 갓난아이로 우는 모습을 보면서
감히 메시아의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나에게 상처를 주는 그 못된 사람의 모습에서 천방지축으로 살던
옛날의 초보시절의 내 모습이 분명히 있다는 겁니다.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하느님 앞에서 초보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그 인간도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나에게 상처를 주는 저 인간이 영원히 저렇게 초보자로서
인생을 끝내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도록 합시다.
그리고 용서해 줍시다!

갈라디아서 6장 1절에서 3절을 보면
형제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보면,
영적인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를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대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의 율법을 완수하게 될 겁니다.
사실 누가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나 되는 듯이 생각한다면, 그는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오늘 여러분에게 기쁨과 평화를 주심을 믿으면서
나에게도 초보자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그런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에 영과 육의 성장을 축원합니다.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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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성전에 설치된 성탄 구유의 모습 - photo by 느티나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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