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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12-27 조회수711 추천수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12월 27일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They both ran,
but the other disciple ran faster than Peter
and arrived at the tomb first;

 

 

(Jn.20,4)
 
 
제1독서 1요한 1,1-4
복음 요한 20,2-8
 
어떤 책을 보다가 이런 구절을 보게 되었습니다.

“늘 바쁘다고 하는 사람들을 수첩에 잘 적어 두었다가 연말에 살펴보게. 그런 사람들은 대게 1년 내내 별로 한 일이 없다네.”

사실 저 역시 작년에는 정말로 입에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강의와 일들로 인해서 바쁘기도 했습니다. 제 다이어리를 보면 더 이상 일정을 적을 수 없을 정도로 항상 일정이 꽉 차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항상 쫓기는 생활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올 초에 스스로 다짐했지요. ‘한 해 동안은 바쁘다는 말 대신에 한가하다는 말을 달고 살자’고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한가했습니다. 강의도 잘 들어오지 않고, 제가 맡은 일의 양도 많이 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에 다이어리 수첩을 정리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작년이나 올해의 강의 다닌 숫자가 거의 똑같습니다. 또한 제가 한 일도 늘었으면 늘었지 결코 줄지 않았습니다.

저의 이 체험을 통해서 느낀 것은 자신이 생각한데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바쁘다고 생각하면 바쁜 몸이 되는 것이고, 한가하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일이 많아도 한가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 더 많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긴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며칠 전에 어떤 수녀님께서 수도원 성탄 미사를 부탁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부님께서는 바쁘셔서 그 동안 차마 부탁도 하지 못했어요.”

얼마나 바쁘다는 표시를 하고 살았으면 수녀님이 그런 생각을 했을까 라는 반성을 하게 되더군요. ‘바쁘다’라고 말하는 순간, 사람들은 그만큼 다가서기 힘듭니다. 그러나 ‘한가하다’라고 말하는 순간, 사람들도 다가서기 쉽고 그 만큼 사랑을 실천할 기회도 생길 것입니다.

오늘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을 맞이해서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둘은 부활 소식을 듣고 무덤으로 달려가지요. 요한이 먼저 무덤에 도착하지만, 무덤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제자들의 수장인 베드로가 먼저 들어간 뒤에야 그도 따라 들어가지요. 요한은 예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셨던 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사랑을 받았던 그가 왜 부활 소식을 듣고서 먼저 무덤으로 들어가 확인해보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제자들의 수장인 베드로에게 그 첫 자리를 양보하는,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았던 이유가 바로 이러한 여유 있는 기다림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자신이 독차지 하려는 욕심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 양보하고 첫째 자리를 넘겨주는 모습에서 주님의 사랑을 받는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바쁘다고 서두르는 모습에서는 주님을 받아들일 여유조차 생기지 않습니다. 요한 사도처럼 기다리고 양보하는 모습에서 주님의 사랑도 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바쁘다면서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여유를 가지고 주님의 사랑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가족과 친구, 소중한 이웃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사랑의 빚을 지며 살고 있다. 그러니까 행복한 것은, 언젠가 갚아야 할 빚이다(위지안).

 
사도 성 요한 복음사가와 그의 상징인 독수리.

 

 
못생긴 강아지(‘좋은생각’ 중에서)

영국의 로리 가족에게 기쁜 일이 생겼다. 집에서 기르던 개가 강아지를 아홉 마리나 낳은 것이다. 하지만 강아지들은 어미와 달리 못생겼다. 그래도 로리 가족은 튼튼하게 태어났다는 데 감사했다.

그들은 아홉 마리를 모두 키울 수 없어 신문에 광고를 냈다. 그러나 전화 한 통 걸려 오지 않았다.

이번엔 무료로 나누어 주겠다는 광고를 냈다. 그런데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막내가 말했다.

“아빠, 아무 연락도 없는데, 제일 못생긴 이 강아지는 제가 키울래요. 나머지는 한스 삼촌에게 주면 어떨까요?”

아버지는 “왜 하필 제일 못생긴 강아지니?”라고 물었다. 막내가 답했다.

“몰라요. 절망적으로 못생긴 이 강아지한테 왠지 마음이 더 끌려요.”

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이런 광로를 냈다.

“절망적으로 못생긴 강아지 아홉 마리를 나누어 드립니다.”

그러자 전화가 쇄도했다.

“저에게 절망적으로 못생긴 강아지 보내 주세요.”

누구나 연약함을 보면 보듬고 싶은 마음이 드는 모양이었다. 결국 로리 가족은 강아지 아홉 마리를 모두 나누었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의 무관심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들이 돌보아야 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향한 기도와 보살핌이 필요한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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