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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신구약 인수 인계식/묵주기도 22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12-28 조회수363 추천수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빛의 신비 1: 3/5]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는 서른 살쯤에 활동을 시작하셨는데, 사람들은 그분을 요셉의 아들로 여겼다.

예수님의 공적인 활동의 시작은 갈릴래아의 요르단 강가에서 세례자 요한과의 만남이었다.

오래 전 정확히 말해 삼십여 년 전에 두 분은 어머님 태중에서 자연스레 만났으리라.

그렇게 잉태한 두 여인의 만남은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의 방문으로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지난 지금의 두 분 만남은 이게 아마도 두 번째이리라.

이렇게 이번 만남도 예수님이 스스로 요한을 찾으셔서 성사된 것이었다.

그 자리에 성모님도 그 나이 많은 엘리사벳도 함께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았듯이 예수님이 요한을 찾으신 거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 예수님께서 가신 거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라고 하면서 그분을 말렸다.

그 말에 예수님은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라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은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라고 요한에게 분명히 대답하셨다.

의로움이란 말에, 요한은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여 세례를 주었다.

그렇지만 요르단 강가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의로움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정당성을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라는 말에

지금은 이대로 해서 의로움을 이루자.’라는 세례의 정당성을 밝히셨다.

이는 요한의 깊은 의도를 알 필요가 있다.

 

사실 세례는 회개하는 죄인에게 베푸는 죄 씻는 예식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죄의 어떤 얼룩조차 없으신 분이시다.

그런데 왜 당신이 세례를 받아야하는지를 물으신 거다.

예수님은 이 뜻에 지금은이라는 말을 분명히 덧붙이셨다. 이는 영원히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 많은 예언자들은 메시아를 기다렸다.

그러나 지금 그가 왔지만 세상은 혼돈으로 혼탁해져 있다.

그래서 이 세례가 적절함을 알려야 한다. 이게 정당성의 부여이고 의로움을 이루는 거다.

 

분명한 것은 율법은 모든 계명을 지키게 하는 의로움으로 이루어진다.

예수님은 율법을 어긴 데 따르는 저주를 없애기 위해 오셨다.

사랑과 용서로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없애시고자 오신 거다.

그러기위해서 율법의 정당성을 이루어야만 했다.

율법의 규정을 그대로 이행해서 율법에 묶인 온갖 저주를 없애야만 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자말자 즉시 하늘의 문이 열렸다.

이는 예수님 안에서 이제 하느님 백성과 하느님이 하나 됨을 의미한다.

하느님과 그 백성들 사이를 가로막은 죄의 장벽이 사라진 것이다.

거기 있던 모든 이들이 예수님을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선언을 하늘로부터 듣는다.

 

예수님과 요한의 관계를 두 분께서 상대방을 향한 인물평을 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요한은 모든 이에게 세례를 주면서 예수님과의 관계를 이렇게 설정하셨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예수님도 세례자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두 분의 이야기에서 의로움을 짐작할 수 있다.

예수님의 잉태와 요한으로부터의 세례는 이미 의로움으로 정해져 있었다.

따라서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구원을 주시려는 이 세례는 필수적이었다.

 

구약과 신약의 인수 인계식이 조촐하게 열리는 요르단 강가의 모습이다.

신구약의 인수인계식은 세례자 요한에게 받은 예수님의 세례식일 것이다.

이 인수인계의 세례식에,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성부 하느님의 음성과

세례를 받으신 성자 예수님과 당신 위에 내려오는 비둘기 모양의 성령이 있었다.

지상에서의 영광스러운 삼위일체가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성경에서 삼위일체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분명히 나타나는 장면은

복음 전체를 통하여 이 세례식 말고는 없을 것이다.

구약과 신약의 이 인수인계식은 삼위일체의 출현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드디어 신구약의 인수인계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졌다.

하늘에서는 성부 하느님의 우렁찬 음성과 땅에서는 성자 예수님의 엄숙한 자세와

그 열린 하늘 사이로 비둘기 모양의 성령이 나타났다.

삼위일체의 출현이 요르단 강가의 세례의 그 장소에서 그렇게 펼쳐지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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