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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예수,마리아,요셉의 성가정 축일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12-28 조회수540 추천수4 반대(0) 신고

 

새로운 마음으로 아버지 집 향해 예전에 한 일 간 신문의 새해 대담에는 김수환 추기경님과 작가 최인호 선생님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그때 추기경님께서는 이 같은 질문을 최인호 선생님께 하셨 습니다. “최 선생,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긴 여행이 무엇인지 아세요?” 최인호 선생님이 모르겠다고 하시자 추기경님은 손을 들어 당신의 머리와 가슴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머리’에서‘가슴’으로 가는 여행이지요. 나 역시 평생 이 짧은 것처럼 보이는 여행을 떠났지만 아직도 도착하기엔 멀었소이다. 그리스도교 인들은 항상 자기반성과 회개를 통해 조금 씩 조금씩 우리 마음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하느님께 나아가고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내 삶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남은 생 동안 하느님께 얼마나 더 가까이 갈 수 있을까 그것이 걱정이에요. 이 죄 많은 죄인을 하느님께서 어떻게 받아 주실까. 물론 하느님께서는 무엇이든 용서해 주시는 분이시지만 그래도 하느님 앞에 나아갈 때 부끄럽지 않은 영혼으로 서고 싶은데 그것이 걱정이에요. 나같이 죄 많은 죄인을 하느님께서 용서해 주실까. 그것이 요즘의 소망이에요.”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으로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하느님 아버지의 집으로 향한 여정에는 새해라는 표현보다는 새롭게 옷깃을 여미고 새 출발을 다짐하며 실천하는 시작일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집, 본 고향으로의 여정은 어느 한 순간도 멈춰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지난 해 얼룩진 과오가 있었다 하더라도 다시 이 거룩한 여정의 길을 걸어 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머리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어도 가슴과 다리로는 그 뜻을 따르지 못했던 지난 시간들에 대하여 한탄과 죄스러움 과 낙담으로 얼룩진 새해를 살아서는 안 됩니다. 모든 성인 성녀들은 우리에게 신앙 여정의 선배로서 충고합니다. 잘못한 부분이 삶에서 생겨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에 안주하거나 뒤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영적 진보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신앙의 열정 속에 멈추지 않고 달렸던 사도 성 바오로도 늘 자신안의 선과 악의 싸움에 힘들어 하였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자신 곁에 힘을 북돋아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믿었기에 끝내는 아버지의 집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갈라 4, 4~5). 1972년 한국에 들어와 한국인에게 사기를 당하고도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하기에 근 30여년을 살아온 일본인 ‘이케하라 마모루’라는 분이 한국에서의 체험기를 쓰면서 진정어린 충고로 이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한국 사회에는 인재를 키워 주는 풍토가 거의 없다. 다른 사람이 앞서 가는 기미라도 보이면 철저하게 견제하고 방해해서 올라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그래야 자기가 올라갈 가능성이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이다.” 올바른 지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너무나 경직된 경쟁화 시대에 남을 누르고 올라 서야 살 수 있다는 그릇된 풍토 속에 저마다 야비한 얼굴로 동료를 깎아 내립니다. 더불어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줄 모릅니다. 새해를 맞이한 오늘 민수기의 저자는 하느님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남에게 축복을 빌어 줄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느님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민수 6, 24; 27). 계시는 하느님께서 어떻게 달라지실 분이 아니시건만 교회와 신학은 시대에 따라 하느님을 달리 가르쳤습니다. 중세에는 하느님을 “우리 위에 계시는 분” 으로, 근세에는 “우리 안에 계시는 분”으로, 그러나 현대에는 교회와 신학이 하느님을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으로 가르칩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늘 저 끝, 저 멀리에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또한 내 안에만 머물러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둘이나 셋이 모인 공동체 안에 함께 계십니다. 더불어 함께일 때, 그곳에 계시는 공동체의 하느님입니다. 이기적인 신앙, 개인적인 구원관을 가진 마음 안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새해에는 모두가 모두를 생각해 주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축복을 빌어 주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배 광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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