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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29일(일) 聖 최창흡님등 7위 순교하신 날♥
작성자정태욱 쪽지 캡슐 작성일2013-12-28 조회수379 추천수1 반대(0) 신고


 

 

 12월29일(일) 음11/27

  최창흡님등 7위 순교하신 날



 

 

    최창흡   베드로   서소문밖   1839.12.29
 
    조증이   바르바라   서소문밖   1839.12.29
 
    한영이   막달레나   서소문밖   1839.12.29
 
    현경련   베네딕타   서소문밖   1839.12.29
 
    정정혜   엘리사벳   서소문밖   1839.12.29
 
    고순이   바르바라   서소문밖   1839.12.29
 
    이영덕   막달레나   서소문밖   1839.12.29

 



 

            
 

 

聖 최창흡 베드로님

관 련 서소문 밖 순교일 1839.12.29
 



서울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최창흡님은
어려서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으나
1801년 신유박해 때 형 최창현(崔昌顯)님이 순교한 뒤로는
외교인과 다름없는 냉담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서른 살쯤 교우인 손소벽(孫小碧)님과 혼인한 뒤로는
다시 교리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1821년 전국에 콜레라가 퍼졌을 때 아내와 함께 대세를 받고
이 때부터 열심한 신앙 생활을 하게 되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최창흡님은 순교를 결심하였고,
6월 친정으로 피신해 온 딸 최영이(崔榮伊)님의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다.
 
사위 조신철(趙信喆)님이 맡겨 둔 교회 서적과 성물 때문에

 

포청에서 혹형을 받았으나 잘 참아 냈다.
형조에서도 여러 차례의 고문을 이겨 내고 12월 29일
6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53세의 나이로 순교하시었다.

* 최창흡 1839.12.29일, 부인 손소벽 1840.1.31일님과
  사위 조신철 1839.9.26, 딸 최영이 1840.2.1일 님 모두 순교한 가정


*주교회의 자료집에서 발췌




서소문과 당고개 형장에 나누어

아내와 딸, 사위 모두 순교하신
聖 최창흡 베드로 님이시여

 

천상 정원의 영원한 향기 가운데

저희 가저을 이끌어 주옵소서!...아멘


            

 

 

 

聖女 조증이 바르바라님

관 련 서소문 밖 순교일 1839.12.29
 



조증이님은 경기도 이천(利川)의 양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시었다.
 
16세 때 남이관(南履灌)님과 혼인하였으나
1801년 신유박해로
아버지 조 프란치스코와 시부모가 순교하시고
남편도 유배를 당하게 되자
친정으로 내려가 10여 년을 살았다.
 
그 뒤 서른 살쯤 다시 상경하여 정하상(丁夏祥)님을 도우며
선교사 영입에 필요한 자금 마련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1832년 남편이 유배에서 풀려나자 남편과 함께 사제 유방제(劉方濟)님을 돌보며
공소를 세우고, 교회와 교우들을 위하여 열심히 봉사하시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남편을 이천으로 피신시킨 뒤
자신은 체포되시었다.
남편 남이관님을 잡으려는 형리들로부터 가혹한 형벌을 받았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12월 29일 6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58세에 순교하시었다.

* 아버지와 시부모 순교 후 남편 남이관님과 함께 순교 103위 순교 부부


*주교회의 자료집에서 발췌



 

친정 아버지와 시부모가 순교한 후
장부마저 체포되어 경상도에 귀양살이 머슴이 되어 떠났으나

모진 박해 아래서도 교회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다가
결국은 장부 세바스티아노 님을 뒤따라 서소문의 칼날에 순교하신
성녀 조증이 바라바라 님이시여

천상의 기도로 저희를 이끌어 주옵소서!...아멘

 

 



                  
 

聖女 한영이 막달레나님

관 련 서소문 밖 순교일 1839.12.29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난 한영이 님은
혼기에 이르러 권진사(進士)라는 양반의 후처로 들어가
딸 권진이(權珍伊)를 두었고,
남편이 대세를 받고 죽으면서 천주교를 믿어라는 유언을 남기자
딸과 함께 입교하셨다.

그 뒤 신앙 생활을 하고자 딸과 함께 집을 나와 교우 집에 몸부쳐 살다가
1839년 7월17일 딸과 딸의 친구인 이경이(李瓊伊)님과 함께 체포되어
12월
29일 6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56세에 참수형으로 순교하시었다

* 딸 권진이님은 한 달 뒤 21세에 당고개에서 참수 순교하심

*주교회의 자료집에서 발췌




장부의 유훈에 따라 주님을 찾아
사랑하는 딸 권진이 아가타님과 함께 순교하신
성녀 한영이 막달레나 님이시여

 

님을 기억하는 오늘

천상의 기도로 저희를 이끌어 주옵소서!..아멘


                 

 聖女 현경련 베네딕타님
관 련 서소문 밖 순교일 1839.12.29
 



서울의 역관(譯官) 집안에서 태어난 현경련님은 어려서 세례성사를 받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아버지 현계흠(玄啓欽)님이 황사영(黃嗣永)님의
백서(帛書) 사건과 관련되어 순교한 뒤
어머니를 따라 자주 이사다니며 살았다.
 
17세 때 최창현(崔昌顯)님의 아들과 혼인하였으나 3년 만에 남편을 여의고는
친정으로 돌아와 살았다.
규칙적인 독서와 기도 생활을 하였고,
여회장직을 맡아 보며 교회 일에 적극 헌신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현경련님은 잠시 피신했었으나 6월에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주교의 피신처를 알아 내려는 형리들로부터
동생 현석문(玄錫文)님과 함께 혹형을 당하였으나 모두 참아 냈다.
 
옥중에서 동생에게 신망애(信望愛) 삼덕에 관한 편지를 써 보내
교우들을 감동시켰다.
12월 29일 현경련님은 6명의 교우와 함께 46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시었다.

* 동생 현석문 님은 곳곳의 흩어진 교우들을 돌보시다가,
누님 현경련 님의 6년 뒤에 새남터에서 순교하심



*주교회의 자료집에서 발췌




친정 아버지는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순교하시고
20세에 남편이 타계한 후
박해의 어려움 속에서도 동생과 함께 주님의 일꾼이 되셨던
성녀 현경련 베네딕타 남매시여


저희 가정의 자녀들을 위하여

영원한 빛이 되어 주소서!...아멘



            
 

聖女 정정혜 엘리사벳님

관 련 서소문 밖 순교일 1839.12.29
 



동정 순교자인 정정혜님은 정약종(丁若鍾)님의 딸로,
네 살 때 세례성사를 받았다.
1801년 신유박해로 전가족이 함께 체포되어,
아버지와 이복 오빠 정철상(丁哲祥)님은 순교하였으나
정정혜님은 어머니 유 체칠리아, 오빠 정하상(丁夏祥)님과 함께 석방되었다.
 
그 뒤 마재의 삼촌 정약용(丁若鏞)님의 집에서 살면서
길쌈과 바느질로 가족들의 생계를 꾸려 나갔다.
친척들의 구박과 냉대를 아름다운 덕행과 인내로 극복하고,
박대하던 몇몇 친척들까지 입교시켰다.
 
1839년 7월 11일 기해박해 때 정정혜님은 서울에서
어머니, 오빠와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7회의 신문을 받으면서 320대의 곤장을 맞았고,
형조에서도 6회의 신문과 함께 혹독한 고문을 받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킨 뒤에
12월 29일 6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43세에 순교하시었다.

*오빠 정하상님, 어머니 유소사 체칠리아님과 함께 103위 성인 가정

*주교회의 자료집에서 발췌

  



초기 교회의 주춧돌이셨던
聖 정하상 바오로 님의 동생으로서

어머니 聖女 유소사 체칠리아 님과 함께 모두 순교하신
성녀 정정혜 엘리사벳 님이시여

 

저희들 가정이 성화될 수 있도록

천상의 기도를 보내 주옵소서!...아멘

 

         
 

 聖女 고순이 바르바라님
관 련 서소문 밖 순교일 1839.12.29
 



고순이님은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한 고광성(高光晟)님의 딸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18세 때 교우인 박종원(朴宗源) 아우구스티노님과 혼인하여 3남매를 두고,
모범 가정이라고 칭찬을 들으며 살으셨다.
 
또한 회장인 남편을 도와 무지한 이들을 가르치며 병약자를 간호하는 등
교회 일에도 적극적으로 봉사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10월 26일 남편이 먼저 체포되고,
그 이튿날 고순이님도 체포됨으로써 포청에서 남편과 만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순교를 준비하였다.
 
형조에서도 남편과 함께 고문을 당하였으나 굴복하지 않았다.
이렇게 남편과 함께 모든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낸 고순이님은
12월 29일 남편 박종원님보다 한 달 먼저 6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42세의 나이로 순교하시었다.
 
   * 남편 박종원님과 함께 103위 순교 부부
*주교회의 자료집에서 발췌



 

친정 아버지가 순교하시고
장부 박종원 아우구스티노님과 함께
가난한 가운데 회장댁으로서 최선을 다하시다가

부부 함께 순교하신

성녀 고순이 바르바라 님이시여
천상의 기도로 저희를 이끌어 주옵소서!....아멘



             
 

聖女 이영덕 막달레나님

관 련 서소문 밖 순교일 1839.12.29
 



동정 순교자인 이영덕님은 외교인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 외할머니의 권면으로 신앙을 갖게 되었다.
 
혼기에 이르러 아버지가 외교인과 혼인할 것을 강요하자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고는 꾀병을 앓기도 하고,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써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완고한 어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범 라우렌시오 주교에게 가출할 수 있도록 청원하였다.
그러나 주교가 허락하지 않으므로
어머니, 동생과 함께 집을 나와 교우들의 집에서 숨어 살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주교는 처음에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였으나,
조선 풍습에 가출했던 부녀자가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음을
알고는 세 모녀가 살 수 있도록 집 한 채를 마련해 주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순교를 각오하고,
주교가 체포되면 자수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자수할 틈도 없이 6월 어느 날
집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옥살이 끝에 12월 29일 6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28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시었다.

    *동생 이인덕님과 함께 103위 순교 성인 자매


*주교회의 자료집에서 발췌

 

 




오로지 주님 만을 따르기 위해
동정녀의 삶을 기원하여
동생 이인덕 마리아님과 함께  

 

동정 순교의 월계관을 받으신
성녀 이영덕 막달레나 님이시여
저희들에게 천상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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