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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학의 향기’를 추구해가는 고달프고도 즐거운 삶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13-12-29 조회수432 추천수1 반대(7)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문학의 향기’를 추구해가는 고달프고도 즐거운 삶 




                                                        
드라마작가 이환경씨가 먼저 지면에 공개한 이야기입니다만, 나는 청년 시절 노동자 생활을 할 때 훗날 드라마작가로 대성하게 되는 이씨를 만났습니다. 당시 이씨는 배관기술자였는데, 서울 가리봉동의 한 건물 건축공사장에서 그를 처음 만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나는 그에게 달라붙어서 조수 노릇을 했고, 연립주택과 아파트 건축공사장 등에서 함께 일했습니다.


 

 


▲ 대일비호대상 수상 / 소설가로 문학 업적을 크게 쌓지는 못했지만, 1999년 제43회 ‘충청남도문화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08년에는 대전일보사가 주는 제35회 ‘대일비호대상’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아내에게 기쁨을 주게 된 것이 흐뭇했다.  
ⓒ 지요하

그는 나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문학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고, 나에게서 기초적인 것들을 배웠습니다. 문예지들과 여러 가지 책들을 빌려다가 틈틈이 읽었고, 심지어는 내게서 원고지 사용법도 배웠지요. 비가 와서 일을 하지 못하는 날은 싸구려 대폿집에서 오래도록 막걸리를 마시며 많은 얘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나는 선생님처럼 열강을 했고 그는 주로 듣는 편이었지요.            

그러다가 그는 노동자 생활을 접고 여의도의 KBS 방송작가 양성소를 다니며 드라마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그 길을 택하면서 내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소설 쪽으로는 자신이 없어. 소설은 내게 너무 어려워. 문학을 하겠다는 거창한 꿈을 접고 방송드라마 쪽으로 가볼 생각인데, 어때요, 지형도 나와 함께 드라마 쪽으로 가지 않을래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그에게 내 뜻을 명확하게 밝혔습니다.

“나는 그냥 소설을 할래. 문학의 중심은 소설이야. 나는 문학의 길, 소설의 길을 가겠어.  현실적으로는 전망이 좋지 않더라도, 나는 문학의 길, 자존심의 길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 후 나는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고, 이환경씨는 KBS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전설의 고향’ 등 단막극을 집필하고, 유명 소설들을 드라마로 각색하는 일을 주로 하더니, <용의 눈물>이라는 대하드라마를 집필하게 되면서 대성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용의 눈물> 집필은 애초 어느 선배 작가가 맡았던 일인데 갑자기 문제가 생겨 손을 놓는 바람에 이환경 작가에게로 넘어온 일이었다니,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셈이었지요. <용의 눈물>이 성공한 후로 그는 <태조 왕건>, <야인시대>, <무신> 등을 집필하며 드라마작가로 고공행진을 했지요.

그에 비해 나는 소설가로 큰 성공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등단 이후 줄곧 고향(충남 태안)에 머물면서 어렵게 소설 작업을 했습니다. <흙빛문학>, <소설충청>, <태안문학> 등 지역문예지들을 만들다보니 ‘고향을 지키는 작가’라는 별칭도 얻게 되었습니다. 5년가량 운영하다가 문을 닫아버린 지역잡지 <갯마을>과 지역신문 <새너울>을 만드는 일로 정력을 낭비하기도 했지요. 결국 소설가로 뚜렷한 업적을 이루지도 못한 채 덧없이 세월만 잃고 이제는 면구스러운 나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문학에 대한 애정과 소명의식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드라마작가 이환경씨의 대성을 부러워하면서 옛날 그의 권유를 뿌리치고 함께 방송 쪽으로 가지 않은 것이 후회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가 소설가요 시인이라는 사실에서 자부심을 갖습니다.


 

 


▲ 태안여고 문학 강연 / 종종 고장의 학교들에 초청을 받아 가서 강연을 하곤 하는데, 2011년 9월 28일에는 태안여고에 가서 수많은 여고생들 앞에서 문학 강연을 했다.  
ⓒ 지요하

가끔 드라마를 보다보면 이런 생각도 듭니다. 저 얘기를 소설로 옮긴다면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연기자들의 연기로, 움직이는 그림으로 보는 것이니까 그냥 볼 수 있지 저런 얘기를 글로 읽는다면 따분하고 재미없어 읽을 사람 별로 없을 거야. 정말 아무것도 아닌 얘기와 엉성하기 짝이 없는 내용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이 드라마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물론 드라마 중에도 의미 있고 품격 높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감동을 주고 생각을 하게 하는 드라마가 없는 게 아니지요. 하지만 드라마에는 전반적으로 자각의 눈을 뜨게 하고,  변화의 계기를 갖게 하는 어떤 ‘메시지’가 없습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사회현실에 대한 고민이 거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일정한 갈등구조 안에서 갖가지 역경을 헤쳐 나가는 주인공들도 대개는 ‘사회적 고민’이 없는 사람들이지요. 거의 모든 이야기들이 남녀의 사랑이야기이고 사랑싸움이며 그것과 관련하는 ‘행복한 고민’들일 뿐이지요. 방송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의 ‘사회적 고민’을 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방송드라마들은 우리의 사회현실과 상당히 유리된 생활공간의 이야기들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드라마 역시 ‘바보상자’의 한 요소일 뿐입니다. 드라마에 열중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사회 현실에 대한 자각의 눈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일정한 ‘수준’에 얽매이는 현상도 생겨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생각의 힘’을 갖게 되기가 어려운 거지요.

그래도 우리나라는 ‘드라마왕국’입니다. 드라마 얘기가 화제를 이루곤 합니다. 국민들로 하여금 책을 많이 읽도록 유도하고 권장하기 위해 방송 시간도, 드라마도 제한하는 호주 같은 나라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연일 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국민 생활이 돌아갑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때로는 순수 문학인으로서 묘한 열패감과 외로움 같은 것도 느낍니다. 하지만 나는 ‘문학의 향기’가 뭔지를 알고 있으며, 오로지 ‘문학의 향기’를 추구하며 살아왔고,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곤 합니다.

문학의 향기를 구성하는 요소들 중 하나가 메시지임을 잘 압니다. 실은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귀를 열게 하는 그 메시지의 창출과 전달을 위해 나는 감히 문학을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메시지 창출이 소설미학과 시 정신을 견인한다고 굳게 믿습니다.

비록 현실적인 무력감과 열패감 속에서 고민도 많이 하게 되지만 오늘도 나를 살게 하는 것은 ‘문학의 향기’를 추구하고자 하는 정신이기에 나는 오늘도 그 길을 열심히 걸어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청남도교육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종이신문 <충남교육소식>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13.12.28 10:14 l 최종 업데이트 13.12.28 10:14 l 지요하(sim-o)
태그 : 문학의 향기, 방송작가 이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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