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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월2일(목) 聖 그레고리오, 聖 아벨 님..등♥
작성자정태욱 쪽지 캡슐 작성일2014-01-01 조회수459 추천수1 반대(0) 신고


 

 

1월2일(목) 음12/2 

聖 그레고리오, 聖 아벨 님..등


  

 

 

       ▶그레고리오(대)(1.2)
 
     성인명 그레고리오(Gregory)
     축일 1월 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교회학자, 교부
     활동지역 나지안주스(Nazianzus)
     활동연도 329/330-389/390년
     같은이름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성 그레고리오(Gregory)

 

 



 

 


나지안주스의 주교로 45년간 봉직했던 성 그레고리우스(1월 1일)와
성녀 논나(Nonna, 8월 5일)의 아들로 태어난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그레고리오)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나지안주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서 공부하던 중에
성 대 바실리우스(Basilius)를 만났고,
그 후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 수사학교를 다녔으며,
아테네(Athenae)에서도 10여 년을 성 바실리우스(Basilius)
미래의 황제 율리아누스 배교자와 함께 공부하였다.
30세 때에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즉시 바실리우스와 함께
이리스 강변에서 은수생활을 하다가 2년 후부터 부친을 돕던 중,
362년에 사제로 서품되고, 372년경에는 사시마의 주교로 임명받았다.


성 대 바실리오(Basilius, 좌)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Joannes Chrisostomus, 중)와
나지안주스의 성 그레고리오(Gregorius, 우)


 

이 교구는 아리우스(Arius) 지역이었으므로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주교로 축성은 되었으나 부임하지는 못하였다.
발렌스 황제가 죽고 정통교회에 대한 박해가 수그러들게 될 때,
일단의 주교들이 그를 콘스탄티노플로 초청하여 아리우스파(Arianism)
지역에서
정통교회의 활성화를 도모하게 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아나스타시아(Anastasia) 교회에서 설교를 시작하여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이때 그는 아리우스파인 막시무스(Maximus)와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고,
388년에는 새로 입교한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그의 가르침을
정통교리로 인정하고 아리우스파 지도자를 축출하는 칙서를
발표케 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되었다.
그의 임명은 굉장한 파문을 일으켜 381년에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Council of Constantinople)까지 열려 문제가 심상치 않게 발전하므로,
그는 교회 내의 평화를 위하여 주교직을 사임하였다.
그는 엄격한 은수생활을 하다가 고향 땅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정통교회의 수호에 큰 공적을 남겼고,
또 니케아 공의회(Council of Nicaea)의 선언문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교회학자’로 불린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아리우스파를 배척하여
초기 교회의 바른 신앙을 지킨
교회 학자 성 그레고리오 님이시여 
 

교회가 언제나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도록 
천상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바실리오(대) (1.2)

 

성인명

바실리오(대)(Basil the Great)

 축일

1월 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교회학자, 교부

활동지역

 

활동연도

329-379년

같은이름

바실리우스



 

성 바실리오(Basilus)와 성 그레고리오(Gregorius)와 성 치릴로(Cyrillus)

 

 


 

 

 



성 대 바실리우스(Basilius, 바실리오)는 부유하고 이름 있는 그리스도교 집안
출신으로, 교회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가문 중의 하나이다.
그의 할머니는 마크리나(Macrina, 1월 14일),
그의 부친은 바실리우스(5월 30일),
그의 모친은 엠멜리아(Emmelia, 5월 30일),
그의 큰 누이는 마크리나(7월 19일),
그리고 두 동생은 니사(Nyssa)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3월 9일)
세바스테(Sebaste)의 베드로(Petrus, 1월 9일)인데,
모두가 성인품에 오른 분들이다.

그는 카이사레아(Caesarea), 콘스탄티노플
(Constantinople)
그리고 아테네(Athenae)의 학교에서 교육받았으며,
이곳에서 나지안주스(Nazianzus)의 그레고리우스와 깊은 우정을 맺었다.
 
357년경에 그는 동방의 주요 수도원들을 방문하였으며,
358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다음
네오카이사레아(Neocaesarea)의 이리스(Iris) 강변의 안네시에서
은수자로 정착하였다.
바실리우스는 불과 5년 동안을 그의 공동체와 생활했을 뿐인데도
동방 수도생활의 아버지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는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와는 달리 법 제정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영향은 정교회 수도생활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주요한 원리로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사제로 서품된 후 성 바실리우스는 365년부터 카이사레아 교구를 위하여
일했고, 370년에는 그곳의 주교로 선임되었다.
그는 또 아리우스파(Arianism) 황제인 발렌스(Valens)
정통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때 용감히 맞서 싸웠다.
이 때문에 그는 지방 총독 앞에 끌려가서 자신을 변명하여야 했다.
바실리우스의 태도가 너무나 당당하였기 때문에 총독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당신 같은 주교는 일찍이 본적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 대화를 보더라도 그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으며,
그의 강직성 때문에 교황 성 다마수스(Damasus)
서방 교회간의 관계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는 병자와 가난한 사람을 구하는데 매우 적극적이었고,
요양원을 짓거나 혹은 대대적으로 진료사업을 펼쳤으며
설교가로도 명성을 얻었다.
그는 아리우스파(Arianism)와의 투쟁을 계속하면서
동방 정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발렌스 황제가 전투에서 사망한 지 불과 한 달 만인
1월 1일 카이사레아에서 사망하였다.



성 대 바실리오(Basilius)


 
바실리우스는 초대 교회의 큰 거인이었다.
비잔틴 제국에서 아리우스파를 몰아낸 것이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아리우스파를 단죄한 배경에는
바실리우스의 영향력이 대단히 컸음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그가 네오카이사레아에서 제정한 규칙과 조직이 동방 수도생활의 기초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그 전통이 이어져 온다.
또한 바실리우스는 성직매매를 완강히 거절하였으며,
가뭄과 한발의 희생자를 대대적으로 원조하였으며,
보다 훌륭한 성직자 양성을 도모하였고, 엄격한 성직자 법규를 주장하고,
과감하게 악습을 끊어버리면서,
카파도키아(Cappadocia)에서 만연된 매춘행위 관계자들을 파문하였다.

그는 유식하고 정치력도 있는 사람이면서 성덕이 뛰어났으며,
그리스도교회의 가장 위대한 설교가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의 해박한 저서들과 4백여 통의 편지들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성령에 관한 저서와 에우노미우스를 반박하는 세 권의 저서 그리고
그레고리우스 나지안주스와 함께 편집한 “필로칼리아”가
그 중에서도 유명하다.
그는 교회학자이며 동방 수도자의 아버지로 큰 공경을 받는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아리우스파를 배척하여
초기 교회의 바른 신앙을 지킨
교회 학자 성 바실리오 님이시여

현세 교회가 언제나 주님의 바른 길 안에 머물도록
천상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아벨(1.2)◀
 

성인명

아벨(Abel)

 축일

1월 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구약인물

활동지역

 

활동연도

+연대미상

같은이름

 

카인(Cain)과 아벨(Abel)


 
 


아담과 하와의 둘째 아들(창세 4,2)
밭을 가는 농부인 형 카인(Cain)과는 달리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였다.
아담의 가족은 하느님께 정기적으로 제사를 드렸는데,
이때 우발적인 사건으로 아벨은 형 카인에게 죽임을 당하여
인류 최초로 살해당한 인물이 되었다.
기르던 양떼 가운데에서 맏배를 잡아 기름기를 봉헌한 아벨의 예물은
하느님께 받아들여졌으나 카인이 드린 곡식 예물은 반기시지 않자,
시기심에 사로잡힌 카인이 동생 아벨을 들로 나가자고 꼬여
죽였던 것이다(창세 4,3-8).

창세기에서는 아벨에 대하여 아무런 평가도 하지 않았지만,
복음서에서는 아벨은 무죄하다고 평가되었다(마태 23,35; 루가 11,51).
복음서는 아벨의 죽음을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이 원인이 되어 빚어진
언자 내지 순교자의 죽음과 유사하게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산 첫 번째 인물로 ‘아벨’을 꼽았다(히브 11,4).
 
아벨의 예물이 하느님께 받아들여진 것은
믿음으로 형 카인보다 더 나은 제물을 바쳤기 때문이라고 풀이함으로써
아벨을 하느님께 대한 믿음 때문에 살해된 인물로 평가하였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  
 

 


 

형과의 갈등으로 목숨을 잃은 첫 순교자

성 아벨 님이시여

 

형제 자매들이 우애로 화합하도록

천상의 기도를 보내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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