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제대'와 같은 인간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1-01 조회수908 추천수14 반대(0) 신고



2014년 1월 2일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복음: 요한 1,19-28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


렘브란트 작


     < '제대'와 같은 인간>

        

 

손연자씨의 소설 까망 머리 주디의 줄거리입니다.

 

이 소설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 간 12살 소녀 주디가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학교 킹카 로빈과의 들뜬 데이트가 있기 전까지 주디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아무 자각을 못하고 행복하게 삽니다. 주디는 로빈에게 잘 보이려고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데이트에 나갑니다. 그런데 반응은 매우 안 좋았습니다. 로빈은 주디를 노란 원숭이라고 놀리고 주디를 혼자 내버려둔 채 떠나버립니다.

이때부터 주디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까만 머리, 납작한 코, 옆으로 찢어진 눈... 주디는 심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노란색을 증오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노랗게 물든 머리카락을 가위로 잘라내고 보자기를 쓰고 학교에 갑니다. 주디는 점점 학교에서도 고립되고 왕따가 되어갑니다.

가정에서조차 오빠와 싸우면 부모님은 입양아인 자신보다는 오빠의 편을 들어주고, 또 외로워서 주워 키우던 고양이를 엄마가 창문으로 던져버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디는 더 이상 어디에 발을 붙여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그리고 무작정 고양이를 찾겠다고 집을 나옵니다.

그런데 어두운 골목길에서 불량배를 만나고 칼로 위협을 당하게 됩니다. 그 때 나타난 엄마가 주디 대신 불량배의 칼에 맞아 쓰러집니다. 주디는 엄마가 자신을 사랑했음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검은 머리를 가진 자신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 때 로빈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나는 너의 까만 머리가 신비로워 좋아했었던 거야.”

 

우리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자아정체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 온전한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집니다. 나를 사랑하게 되고 나의 자아정체성이 회복되는 길은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는 희생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면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지 못하게 된다면, 마치 주디가 자신의 검은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내 자신을 맞추려고합니다.

 

반면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의 태도는 매우 당당합니다. 사제들과 레위인들이 와서 당신은 누구요?”라고 물을 때,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며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고 명확히 말합니다. 그들 마음에 들기 위해 그 중 하나인 것처럼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그리스도의 길을 고르기 위해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말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 때 내가 해야 할 일도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그는 메시아의 길을 닦는 선지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역할을 위해서는 회개의 세례를 주어야 함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누가 권한을 주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누군지 명확히 알기 때문에 자신이 해야 할 일도 아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마음에 들기 위해 내 자신을 바꿀 마음은 꿈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목숨을 내걸고 왕의 잘못을 지적하다가 갇히고 순교하게 됩니다.

 

사람은 남들에게 인정받고 환영받고 싶어 합니다. 그 이유는 아직 덜 사랑받았고 덜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불안하기에 칭찬받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을 느껴 사람의 시선에 좌지우지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유입니까?

이태리 성 바오로 대성당에 들어가 보면 그 큰 성당의 규모에 비해 중심 제대가 다소 작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 이유는 바실리카를 지금 크기로 짓기 전에 제대만 제외하고는 모두 불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불나기 전 제대를 중심으로 다시 더 큰 성당을 지은 것입니다. 그러나 왜 제대는 그대로 내버려두었을까요? 왜냐하면 성당의 중심은 제대이기 때문입니다. 성당에 맞춰 제대를 만다는 것이 아니라 제대에 맞춰 성당을 지어야합니다. 제대는 하느님이 내려오시는 가장 거룩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지만,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굳건히 서있을 줄 몰라서 누구도 그의 주변에서 집이 되어주지 못합니다. 우리도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을 깨달아 세상의 중심으로 살아가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