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양치기신부님의 말씀산책] 1월 3일 *주님 공현 전 금요일(R)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4-01-03 조회수667 추천수14 반대(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1월 3일 *주님 공현 전 금요일(R) -요한 1장 29-34절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아름다운 뒷모습>

 

 

    겸손한 세례자 요한의 생애를 묵상하며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내가 식당을 먼저 개업했습니다. 좋은 장소도 찾았고, 손님들을 많이 끌기 위해 식당 홍보도 제대로 했습니다. 손님들의 구미에 맞는 특별한 메뉴도 계발했습니다. 백방의 노력을 다 한 결과 유명한 식당이 되었습니다. 구름처럼 손님들이 몰려왔고, 점심식사 시간에는 손님들에게 번호표를 나눠주고 대기시켜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식당 바로 옆에 누군가가 식당을 개업했습니다. 그 식당 주인은 얄밉게도 우리 식당 메뉴와 똑같은 음식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식당 한 모퉁이에 ‘원조’라는 간판을 달았습니다.

 

    우리 식당으로만 향하던 손님들의 발길에 점점 저쪽 식당으로 쏠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쪽에서는 특별 이벤트다, 경품이다, 하며 손님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하면서 결국 우리 식당은 파리만 날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먼저 시작한 식당 주인의 심기는 엄청 불편할 것입니다. 그래서 늦게 시작한 식당 사장을 찾아가서 왜 하필 여기 와서 이러느냐, 왜 남의 인생에 고춧가루를 뿌리느냐며 따질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도 비슷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구세사 전면에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세례자 요한은 정말 잘 나갔습니다. 그는 수많은 군중과 추종자들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가 설교를 시작하면 백성들은 숨죽여가며 그의 말을 경청했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환호성을 터트렸습니다.

 

    저 같았으면 어깨를 으쓱하며 착각에 빠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는 곳 마다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나를 떠받들어주고 나를 극진히 대접합니다. 인간인지라 우쭐하는 마음에 그 상태가 계속 지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왜 들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나보다 더 탁월한, 나보다 더 잘나가는 누군가가 나타났다면,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리로 쏠린다면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빈정이 많이 상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달랐습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부여한 사명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절대로 메시아가 아니며, 단지 자기 뒤에 오실 분이 어떤 분인지를 백성들에게 알리는 이정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 쪽을 향해 다가오십니다. 그때 세례자 요한은 수많은 군중들에 둘러싸여 감동적인 회개의 설교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설교의 핵심은 당연히 임박한 메시아의 도래, 즉 예수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저 분이시다고 외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주인공이신 예수님, 세상을 구원하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보다 확연히 드러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정말 눈물겹습니다. 그분을 위해 자신은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하나의 불쏘시개가 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더 이상 나 자신의 영예나 체면, 백성들의 관심과 박수갈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아름다운 한 송이 꽃으로 활짝 피어나도록 한 줌 재로 산화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정녕 감동적입니다.

 

    요즘 또 다시 교회 인사이동 시즌입니다. 다른 임지로 떠나가시면서 걱정이 많은 분들도 계시겠지요. 내가 떠나가면 여기 이곳은 어떻게 될까? 그간 공들였던 탑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내가 좀 더 남아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내가 떠나가야 더 잘 됩니다. 내가 떠나가면 내 뒤에 오실 그분께서 더 큰 사랑으로, 더 활기찬 모습으로 아름답게 모든 것을 이어갈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큰 행복, 큰 충족감을 안고 무대 뒤로 사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세례자 요한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부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