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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평신도 신학자 주원준 박사의 평화방송 강의/ 구약성경과 신들 제 1강 왜 신들인가?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1-03 조회수1,392 추천수0 반대(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주원준(토마스 아퀴나스)
 
1993년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1997년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대학원 석사 (종교학, 신학 전공)
1993년 우리 신학 연구소
2008년 한님 성서 연구소
2009년 ~ 서강대 출강 (구약성서 개론, 히브리어, 고대 근동 종교 등)
 
저서 구약성경과 신들(2012)
개역서: 우가릿어 문법(2010)
            우가릿어 사전(2010)
번역서: 마테오릿치 ㅡ 기억의 궁전(1999)
            How Road 성경 (2007)
 
 
평화방송/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제1강 왜 신들인가?



 

1. 강의에 들어가며

강의를 시작하게 된 이유, 평신도 신학자에 대한 소개, 평신도 신학자로서의 삶, 강의 교재가 될 저서

<구약성경과 신들>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

2. 고대 근동의 일원이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주변 강대국들과의 교류에서 어떤영향을 받았고,

또 어떻게 자신들만의 독특한 신앙을 발전시켜 나갔는가?

3. 강의 제목이 신들이라고? (왜, 신들인가??)

구약성경에는 우리가 믿는 하느님 말고, 바알과 아세라 다간 등 다양한 다른 신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당시는 해와 달, 바람도 신으로 생각했던 신화의 세계였다. 고대 이스라엘에도 해신이나 달신이나

물의 신을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구약성경은 그 시작부터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특수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느님은 말씀으로 해와 달, 하늘, 바다 등을 창조하신다. 이런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느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고대 근동의 신들이 그것도 강력한 하늘신 달신 등이 구약성경에서는

그저 말씀으로 창조된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해서 그렇게 되는 것인가? 이제부터 함께

고대 근동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 보기로 하자!

 

고맙습니다. 이렇게 와 주셔서.

자, 그럼 우리 성호 긋고 시작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안녕하세요? 새 강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첫 시간이라서 제가 제

소개를 드리면서 천천히 시작하는 게 좋을 거 같애서 일단 제가 먼제 저 이름을,

그리고 제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소개를 먼저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 이음은 주원준 토마스 아퀴나스입이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현재 일하고 있는 곳은 한님 성서 연구소라는 곳이고요.

그리고 그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하고

종교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주로 구약성경 개론이나 히브리어 아니면 유다교 그리고 고대 근동의 종교 등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부님이 아닙니다. 저는 평신도 신학자입니다. 제 신분이

평신도 신학자인데요. 아직 우리 교회에서는 평신도가 신학 강의를? 이렇게

하면서 약간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해서 제가, 평신도가 평화 방송에 와서 이렇게 강의를 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여러분은 왜 이 강의를 들으시는가에 대해서 제가 설명을 조금

먼저 드리고 첫 시간을 조금 가볍게 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강의를 하게 된 이유는 최근에 책을 한권 냈기 때문입니다. 그 책의 제목이

바로 구약성경과 신들이구요. 이 강의 제목과 같습니다. 그런데 과분하게도 이

책이 올해 학술상을 받게 되었어요.

 

 

 

                                                                                                               

* 저서 (구약성경과 신들 ㅡ 고대 근동 신화와 고대 이스라엘의 영성)이

   제10회 가톨릭 학술상수상(2012. 11.27)

 

그래서 제가 연구상을 타게 되었는데 요 학술상 받은 내용을 우리 신자분들에게

최신의 연구 성과라고 그래서 쉽게 설명을 해 드리려고 이 강의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이 책의 내용을 차근차근히 한쪽 한쪽씩 설명해

드리는 강의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되겠고. 여기 오신 분들은 그러니까 책을 안

읽으셔도 되요. 여기 이 강의만 잘 들으시면 됩니다.

 

시작하기 전에 사실은 제가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요. 어떤 걱정이 들었느냐 하면,

아, 학술상 받은 책이니 얼마나 어려울까? 벌써 학술만 그래도 졸리고 막 그런데

학술상까지 받았으니 이거 참 졸린 책이겠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아, 그리고 또 신학 그러면 졸기부터 시작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아, 이거를 어떻게 넘을까 해서 벌써부터 제가 이걸 한다고 했더니 제 주위의

어떤 분들은 "야, 너 나가자마자 학술상 받았다고 그러고 그 책 얘기한다고 그러면

채널이 막 돌아가겠다 야. 채널이 돌아가는 소리가 그냥 들린다 막." 그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최대한 어렵지 않게, 하여간 최대한 쉽게 강의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걱정할 필요없이 천천히 제 강의를 들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얼마나 쉽게 할려고 마음을 먹고 왔냐하면, 아, 이 정도도 학술상

받으면 나도 학술상 받겠다라는 마음이 들 수 있도록 쉽게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첫 시간이기도하니까 과연 평신도 신학자에 대해서 제가 조금 설명을 드릴

려고 해요. 평신도 신학자가 평화방송에서 강의를 하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고요. 도대체 저는 누구인가? 하는 얘기를 조금 드릴려고 하고요. 그래서 아마 이

첫 시간 전체 내용은 제 소개 해 드리는 거 반, 그 다음에 이 책을 왜 쓰게 되었나?

정도 반 그러니까 이번 강의는 이 전체 강의 중에서 가장 쉽습니다. 그러니까 걱정

하지 마시고 들어주시면 되겠습니다.

 

저는 말씀 드렸듯이 평신도 신학자입니다. 그런데 평신도 신학자라고 하면 아직

우리 교회에서는 매우 낯선 이름입니다. 제가 어디 가서 제 소개를 할 때,

"당신은 뭣하는 사람이오?" 이렇게 하면은 "안녕하세요? 저는 평신도 신학자입니다."

그러면 "어, 이게 뭐하는 사람이지?"하고 고개를 갸우뚱 하시는 분이 제법 많아요.

대충 눈치를 보면 아, 저분이 평신도 신학자를 잘 모르시는구나. 이렇게 눈치를

주시는 분들이 훨씬 많고 이 자리에도 좀 계신 거 같애요.

 

그런데 우리 가톨릭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들은 더 모르세요. 교회 안에서는 그래도

들어본 분이 계시는데. 우리 가톨릭 교회가 선교 200년을 넘어서 300년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구석구석에서는 이렇게 아직도 이렇게 힘찬 변화의 발걸음도

있고 발전의 움직임도 있는데요. 아직고 우리 교회의 문화를 낮설어 하는 분들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페이스 북(Facebook)에서 굉장히 재미있는. 제 친구들이랑 대화를

했는데 일단 그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을 할께요. 아직 가톨릭 교회를 잘

모르시는 어떤 분한테 우리 신자분이 자기 소개를 했답니다. 그러면서 우리 신자들은

소개할 때 어떻게 하지요? 자기 이름 얘기하고 세례명을 얘기하지요?

 

그런데 그분 세례명이 하필이면 뭐였냐하면은 예로니모였대요. 그래서 저는 아무개

예로니모입니다. 그러니까 그 소개를 받는 분은 전혀 신자가 아니었던 거예요. 그래서

예로니모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 것 같애요. 그래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을 했대요.

애로니모 아니냐고. 좀 야하죠? 애로? **^~~~

 

그랬더니 그 옆에 있는 분은 그분도  가톨릭 교회를 잘 모르시는데 애로니모가

아니라 자기는 외로운 이모라고 생각을 했대요. ^^*~~~ 왜냐하면 나중에 왜 이런

오해가 있었나 그거를 알고 보니까 그분 소개하시는 예로니모 분이 경상도 사투리를

쓰시는 분이셨대요. 그래서 애루니모입니다. ^^*~~이렇게 소개를 했다고 합니다.

재미있죠? 

저는 경상도 말을 잘 몰라서 악센트는 잘 모르지만 하여튼 예로니모 성인께서

한국에 와서 참 고생하셨다. 이렇게 좀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예로니모 성인은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우리 지금 성서학 강의인데요. 성서학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라틴어 성경 있지요? 우리가 라틴어 성경에서 옛날에는 마르틴

루터 이런 사람들이 독일어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해 가지고 우리가 지금 자국어

성경을 다 번역하고 있는데 옛날 히브리어 말 성경과 그리스 말 성경을 라틴어

성경으로 번역하신 분이 누구시냐하면, 바로 예로니로 성인이세요. 애로이모가

아니라 예로니모 성인이세요. ^^*~~~

 

그분의 세례명이 원래는, 그분 성함이 히에로니무스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제롬

이라고도 하는 분입니다. 예로니모 성인에 대해서 한번 강의를 여러분한테 해

드리면 좋겠는데 오늘은 그런 자리는 아니고 이렇게 가톨릭 교회의 문화가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참 낯설고 그래서 우리나라 문화와 가톨릭 교회에서 내려오는 전승과

접목시켜서 우리가 할 일이 굉장히 많다. 토착화 할 일이 굉장히 많다. 이런 생각을

하고 크게 보자면 제 책도 그런 토착화의 한 방면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이 책은 일단은 토착화 하기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예로니모 성인도 잘 모르시는 분한테 제가 가 가지고 "평신도 신학자요."

하고 했으니 이분들이 얼마나 어려우셨겠어요. 그분들은 아직도 신부님들하고

수녀님들은 서로 결혼해 사는 줄 알고 있거든요.

 

저는 그런 분들은 평신도 신학자를 모르셔도 아직까지는 이해를 하겠습니다.

잘 모르실 수도 있을 거 같애요. 그런데 우리 교회에 사시는 분들한테도 평신도

신학자는 조금 낯설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 안에서 신학 그러면 대부분 신부님들이 하시는 것. 그렇게 생각하시고

아주 일부의 수녀님들이 신부님들을 도와서 신학을 하시는 분. 이렇게 알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신학 강의 그러니까 무슨 우리가 사회 교리 강연이 되었던 아니면 어떤

구약 성서 강연이 되었던 우리 교회의 교리 강연이 되었던 그런 강연은 대부분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하지죠. 그리고 평신도들이 강의하는 거는 아직은 낯선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은 평신도로서 신학을 공부하시는 분들이 계신가 그러면은?

꽤 계시지만, 실제로 많은 분들이 하고 계시는데요. 평신도 박사 학위까지 하시고

대학에서 가르치신다거나 아니면 신부님하고 수녀님들을 이렇게 청중으로 앉혀

놓고 오히려 평신도가 이렇게 신학을 강의하는 분들이 있는가? 그런 분들은 아직

까지 없으신 거 같애요.

 

그런데 여러분 주위에 그런 분들이 혹시 계실지 모르겠는데 지금 굉장히 소수의

사람들이지만 전부터 준비하던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우리 교회의 어떤 미래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저는 과연

어떻게 해서 시작을 하게 되었는가? 이거를 잠깐 말씀을 드릴 려고 하는데요.

 

평신도 신학자는 지금도 굉장히 낯선 이름인데 20년 전에는 더욱 낯선 이름이었

요. 그런데 저는 20년 전에 학교를 다니면서 대학교에서, 서강대학교를 다녔는데

거기에 계시는 신부님들이 이제 제가 구교 집안이고 또 신학 공부에 재미있어 하고

신부님들하고 같이 가톨릭 학생회도 하고 미사도 같이 보고 여러가지 활동을 같이

하고 하니까 신부님들이 이제 신학 공부도 같이하면 좋겠다 해 가지고 신부님들을

쫓아다니는 재미에.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는 본당에서 신부님을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워요.

신부님은 굉장히 높은 분이잖아요. 그런데 서강대를 가니까 신부님들이 굉장히

많아요. 수사님들도 굉장히 많고, 수녀님들도 많고 그래서 그게 굉장히 좋았어요.

 

신부님들이랑 같이 쫓아 다니는 재미에 굉장히 재미있었는데 그 중에 어떤 분이

인제 이런 말씀을 하세요. 앞으로 우리나라도 평신도 신학자들이 나와서 일하는

그런 미래가 열릴 수 있다. 혹은 평신도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할려면 많이 준비를 해야 한다.

 

그냥 우리가 평범하게 사는 것도 굉장히 좋은 일이고 세상 안에서 우리 평신도가

해야 할 일도 굉장히 많지요. 그것도 굉장히 값진 일인데 교회가 커지고 또 신부님

들이 얼마나 바쁘세요. 또 그분들을 도와 드리는 일로써 평신도 전문가가 앞으로

필요할 것이다. 이런 말씀을 제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것도 한번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했지요.

 

제가 20년 전에 대학을 다녔으니까 본의 아니게 제 나이는 여러분들이 다 아시게

되었지요. 제가 그 당시에 그런데 그때 신부님들이 앞으로 평신도 신학자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셨지만 사실 많은 제 친구들, 가톨릭 학생회를 같이

했던 친구들이 어려워했어요.

 

내가 과연 누구도 아직 가지 않은 길이고 간다고 해도 굉장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가는 길인데 그걸 할 수 있을까?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이런 용기를 내기가

어려웠던 거죠. 그런데 저는 어떻게 이런 용기를 내게 되었나? 이 얘기를 해

드리는 게 아, 지금 혹시라도 평신도 신학자로서 고민을 하고 있는 젊은 사람들이

있을까봐 제가 조금 설명을 하고 시작하려고 합니다.

 

제가 신학을 하게 된 것은 신학이 매력적인 학문이라서였습니다.

신학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학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얘기를 하면은

아우, 뭔 소리냐? 신학이 무슨 우리 삶에 도움이 되냐? 신학은 신부님, 수녀님들

이나 하는 거고, 신학보다는 무슨 경영학이나 무슨 공대나 이런 걸 해야지.

신학이 무슨 재미 있겠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훨씬 많았었고 그렇게 말씀도

많이 하셨어요.

 

그리고 학생들이 대부분 신학 공부를 하거나 강론을 들으면 왜 이렇게 자는지

모르겠어요. 수면제처럼 막 푹푹 자요. 그래서 신학은 좀 졸린 학문이다.

지루한 학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학생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저는 신학을 그 당시에 굉장한 매력을 느꼈어요. 아, 이건 정말 정말

재미있는 학문이구나. 이건 정말 다른 학문보다 10배, 20배 정말 값진 학문

이구나. 이런 걸 느꼈는데 그때 왜 그런 매력을 느낄 수 있었느냐 하면,

지금 생각하면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거 같애요.

 

그 몇 가지 이유 가운데 제일 첫 째는 좋은 선생님들을 만난 거 같애요.

졸리게 설명하시는 분들은 어쩌면 재미있게 설명하시는 분보다 좀 재미없게

공부하신 분일 수도 있는데 본인이 재미있게 공부를 하셨고 또 신학의 기쁨,

교회 안에서 신학을 하는 기쁨에 들떠 있는 분들은 학생들 한테도 그 기쁨을

이렇게 전해 주시더라고요.

 

저는 다행히 그런 신부님들을 많이 만났고 그러고 남들보다 운도 좋았고 환경도

좋았던 거 같애요. 그래서 그런 매력에 빠진 거 같애요. 그래서 저는 이 기회를

빌어서, 이 강연하는 이 기회를 빌어서 저 같은 사람한테도 이렇게 큰 신학하는

기쁨을 알게 해 주신 옛날 선생님들, 일부는 돌아가셨지만 그분들한테 제가

큰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얘기를 하면은 제 친구들 중에 "야, 신학이 도대체 너는 왜

매력적이었니? 이렇게 물어 보시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친구들한테 제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신학이야말로 우리 삶과 우리와 함께 가는 학문이다. 그냥 머리만

쓰는 학문이 아니라, 다른 학문과는 달리 신학을 하게 되면 이 우주의 어떤 원리

하느님이 주신 사랑 이런 걸 알게 되어서 제 마음이 기쁘고 깨끗해져요. 

이게 굉장히 큰 매력이예요.

 

예를 들어서 어떤 학문은 무조건 외우기만 하고, 어떤 거는 굉장히 생각만 하고,

또 어떤 거는 무조건 계산만 하고 이런 학문이 거의 다죠. 우리가 학문이라고 

하면 보통 그런 걸 하는데 그런 학문은, 했던 그런 학문을 하시는 분들이 그 막

계산하고, 늘 생각하고, 늘 이렇게 외우고 그러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러면 스트레스가 말 올라오죠? 그래서 그분들이 스트레스를 좀 풀자. 그래서

하시는 일들이 뭐냐 하면, 음악을 듣는다든지, 운동을 한다든지, 아니면  성당에

가서 기도하는 거예요. 남들은 스트레스 풀라고 하는 것을 저는 제가 학문으로

하고 있으니까 별로 그런 스트레스가 안 쌓였던 거 같애요.

 

학문을 하면서 그 학문 자체가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나의 마음을 계속 돌아

보는 학문이었기 때문에 그 자체 매력을 처음 어렸을 때 느끼면은 신학을 재미

있게 계속해서 할 수 있는 거 같고, 여러분들도 인제 신자들로서 신학을 공부

하시거나 신한책을 읽으실 때 그런 기쁨을 좀 느끼면서, 자기 삶을 느끼면서

하시면 더욱 좋을 거 같애요.

 

특히 저는 신학을 공부하면서 제가 아까 구교 집안 출신이라고 말씀 드렸는데

제가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저희 집이 옛날에 약현 성당 다니던

집이거든요. 그러니까 약현 성당 고 동네에 살면서 매일 새벽 미사 가시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러셨는데 그때 왜 이분들이 이런 말씀을 저한테 해  주셨는가?

왜 이렇게 기도하셨는가? 하는 것을 나중에 공부하면서부터 하나하나 알게 되니까

그 기쁨도 굉장히 크더라고요. 그게 어렸을 때부터 몸으로 알고 있으니까 그냥 

소화 흡수되는 면도 좋았던 거 같애요.

 

그래서 여기서 중요한 면이 하나 있는데요. 신학도 다른 학문하고 비슷하게 그냥

외우느 학문으로 하잖아요. 그냥 내가 그런 신앙심도 없고 그렇게 크게 느끼지도

못하는데 다른 공부하듯이 무작정 외우고, 무작정 생각만 하게 하면 신학이 재미가

없어요. 신학은 다른 학문 하듯이 해 가지고는 제가 생각하기에 잘 할 수도 없고

또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학문 같애요. 여러분들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신학의 이런 매력을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서 그 선생님들이 쉽게 깨닫게

해 주셨단 말이예요.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가 있어요. 평신도 신학자로서 큰 문제

가 또 하나 나서게 되는 게 뭐냐하면은 과연 신학을 공부할 조건이 형성되는가?

하는 것도 큰 문제예요.

 

아무리 신학이 재미있고 신학의 매력을 느낀다 하더라도 과연 전문가로서 이제

프로패셔널(professional)하게 학자로서 공부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예요.

특히 많은 평신도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하는지 길을 잘 모르세요.

그런 어떤 기관이 잘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장학금이나 그런 어떤 게 잘 되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죠. 되게 막막해요.

 

내가 평신도로서 교회에 어떤 봉사를 하고 싶고, 내 인생을 바쳐 가지고 그런

신학자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지 몰라 가지고 막막한 느낌을 가지시는 분들이

참 많고, 저도 사실 정막 강산에 혼자 있다는 느낌이 많이 일어났어요.

아주 광활한 대지에 나 혼자 있는 거 같고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지금은 제가 그게  저에게 거름이 되서 저의 어떤

과거의 고통이 되었고, 그 고통을 제가 이겨내면은 나중에 큰 거름이 되잖아요.

그래서 그런 걸 통해서 지금은 그 모든 것도 다 감사하고 그것도 하나의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과정이었구나. 이렇게 감사 기도를 드리지만. 지금 막 어떤 평신도가

대학에 들어와서 아니면 좀 젊으신 분이 아, 나의 인생을 평신도 신학자로서 살고

싶다. 그런다면은 그분이 느낄 막막함과 정막 강산에 이렇게 홀로 내버려진 느낌을

저를 잘 이해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분들은 저하고 상의 하셔도 좋을 거 같애요. 이런 것을 우리가 흔히

교회에서, 교회 여론에서 지적할 때 평신도 신학자의 양성이 문제다. 양성하는

과정이 아직까지 체계적이지 않다. 이렇게 얘기를 하지요.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가 있어요. 양성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활용도 문제예요.

평신도 신학자들이 소수지만 지금 계셔요. 그런데 그런 분들이 제 선배뻘 되시는

분들도 꽤 여러분 계셔요. 아주 그분들은 어쩌면 저보다 더 고생하신 분들이예요.

더 힘들게 공부하신 분들이죠.

 

그런데 그런 분들이 한국이나 외국에서 어려운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와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장소가 많이 없는데 그 많이 없는 이유 중에 하나는

동료 평신도들이 그런 분의 존재를 잘 몰라서 그래요. 그런 걸 많이 들어보지

않았으니까.

 

제가 아까 처음에 말씀 드렸죠? "평신도 신학자입니다." 하면은 아직까지도 낯설어

하는 분들이 많은 세상에서 우리 교회에서, 성당에서 이러이러한 일을 좀 해야 되겠

다 하는데 아, 이런 분들은 신부님을 초청해도 좋고, 수녀님을 초청해도 좋고, 또

어떤 수사님을 초청해도 좋지만 만약 이 분야에 평신도 전문가가 계시면 그분도

한번 초청해 보자. 이렇게 하면 좋은데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하시는 이유가 아직은

좀 낯설고 모르셔서 그런 거 같애요.

 

그래서 그런 활용도 저는 좀 문제인 거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실려면 신부님들는 지금 여러분 다 아시듯이 굉장히 바쁘시잖아요. 수녀님

께서도 굉장히 바쁘시고. 그런 분들을 이렇게 도와 드리면 우리 교회에서 성직자와

또 평신도가 이렇게 좀 조화롭게 일을 좀 나누면서 하는.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 바쁘신 분들의 일을 좀 덜어드리면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

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평신도 신학자로서 제 신원을 말씀드렸고 그 다음에 평신도

신학자의 양성과 평신도 신학자의 활용에 대해서 우리가 조금더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하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운이 참 좋았습니다. 좋은 스승님들을

만날 수가 있었고, 그런 분들이 도움을 많이 주시기도 했어요. 처음 평신도

신학자를 한다고 했을 때 제일 반대하시던 분들 중에 한분은 저희 부모님들이

셨어요. 왜냐하면 그 부모님들도 모르셨기 때문에. 그런 게 무엇인지.

 

그래서 그냥 너, 경영학과 다니던거나 잘 다녀 가지고 졸업장 따서 취직해서

그냥 빨리 결혼해서 살어라. 신부 될 거 아니면. 이런 식의. 대부분 부모님들의

마음이 다 그러실 거 같애요. 다 이해하죠.

 

그리고 평신도 신학자는 굉장히 가난할 거 같다. 이런 말씀을 해 주시는 분들도

굉장히 많았어요. 어쩌면 그분의 걱정이나 말씀을 제가 인제 이 나이가 되어

가지고 다 이해하고 아, 그분의 말씀이 다 옳았을 수도 있다. 옳은 면이 굉장히

많다. 이런 걸 제가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 내면에서는 평신도 신학자가 되어서 이렇게 돈을 많이 못 벌지만 책을

쓰고 다행히 이렇게 인정을 받아서 여러분들에게 강의를 하게 된 이 과정이 굉장히

기뻐요. 그리고 굉장히 감사하고. 그래서 별로 안 좋은 일이 일어났어도 금방금방

잊어 먹고 이렇게 또 여러분들 앞에서 웃으면서 강의를 할 수 있어요.

 

그것도 신앙이 주는 힘 같고 그런 신앙의 힘을 제가 좀 느꼈으면 또 여러분들한데

나눠드리고 또 그 나눠드린 바를 제가 또 배우고 하는 것을 좀 이제 시작할려고

합니다.

 

평신도 신학자. 우리 교회는, 가톨릭 교회는 처음에 굉장한 선구자들로부터 시작을

했거든요.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저한테 평신도 신학자의 길이 있다라고

알려 주신 그 스승님들도 마찬가지이시고 서강대에 계시던 많은 예수회 신부님들도

그렇고 제가 독일에서 공부할 때 뷔르츠부르크에 있던 독일 신부님들, 독일 예수회

회원들, 그리고 독일 평신도 분들도 많이 도와 주셨어요.

 

그래서 저는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었어요. 그래서 실력은 별로지만 운이 좋았어요.

그래서 예수회 장학금도 받을 수 있었고, 또 지금 한님 성서 연구원에서 장학금도

받고 일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게 모두 우리 교회에 앞으로 평신도 신학자가

필요하다라고 생각하시는 신부님들, 평신도들이 조금 조금씩 이해를 나눠주시고

조금씩 도와주신 덕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특히 제가 이 기회를 빌어서 말씀 드리고 싶은 분이 저희 한님 성서 연수소 소장님

이신 정태현 신부님이세요. 그분이 이렇게 상징적으로 아, 이렇게 이런 공부를

하는 게 좋겠다라고 하고 이렇게 많이 도와주시지 않았으면,  특히 정신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많은 걸르 배웠어요. 교회에 대해서도 그렇고.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내 주신 우리 평화방송에 계시는 많은 평신도분들, 또 성직자분들

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자, 그러면 여기까지는 제 소개였고 제가 인제 강연을 시작

하기 전에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이 첫 시간을 빌어서 하나가 있습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이 뭐냐하면,

 

제가 올해 이 책을 4월달에  냈습니다. 책 제목은 강의 제목과 같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과분한 상도 받았는데요. 제가 TV어ㅔ서 이 책의 내용을 강연해 보는

게 처음입니다. 그래서 이게 좀 시청자들과 소통이 될지. 소통이 굉장히 중요한데

소통이 안 되고 저 혼자 그냥 재미없는 강의를 그냥 떠드는 게 되지는 않을지 매우

걱정입니다.

 

그래서 제가 사실은 이 자리에 어떤 마음으로 왔나 하면요. 어떻게 하면 이 강연을

잘 할 수 있을까? 어젯밤까지, 늦게까지 고민고민하고 그러다가 신학의 매력을

전해드리려고, 그것을 저는 살짝 보여드리기만 하면 되겠다. 제가 아니라 신학을

주신 분, 그 크신 분 하느님의 매력을. 그리고 그때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느꼈던

하느님의 매력을 조금 맛보게만 해 드리면 제 역활은 다 하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 중에서 고대 구약성경을 만들었던, 구약성경의 시대에 살았던

고대 이스라엘의 신학자들의 어떤 마음을 조금 전해 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책이 어떤 완성된 주장도 아니고요. 어떤 제가 큰 뭐 설득을 할려고 이

책의 내용이 맞지 않습니까?라고 여러분들한테 막 설득할려고 하는 그런 것도 아니

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와 가지고 책을 몇 권 냈고, 그전에도 번역서라든지

책을 몇 권 냈는데요. 낼 때마다 전부 다 좀 모자라다. 좀 더 잘해야 되겠다. 이런

마음이 더 많았어요. 그리고 지금도 아직 제가 젊은 사람으로서 열심히 해야 되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은 상당히 부족한 면이 많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 부족한 면을 여러분들한테 다 보여드리고 여러분들이 좀 보충을 해

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듯이 저는 그냥 평신도입니다. 특별히

훌륭한 신부님도 아니고 어떤 큰 체험도 없어요. 저는. 그냥 공부만 한 사람이고

그렇다고 아직까지 인생을 많이 살아서 이렇게 좀 많이 말씀을 드리고 싶은 어떤

경험 같은 것도 사실은 적어요.

 

그래서 그냥 이런 생각의 이런 최신의 연구가 있는데 이런 걸 우리 한번같이 생각을

해 보면 좋겠습니다. 신자 여러분. 그래서 혹시 이상한 거 있으면 좀 지적도 해 주시고

아니면 더 궁금하신 것이 있으면 또 질문도 해 주시고 이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한번 한국에 이런 책도 소개하면 좋겠다. 이 정도로 책을 냈구요. 그래서 앞으로

다음 책, 그리고 이 다음 책을 생각하고 있는 게 있거든요. 여러분들이 저한테

휘드백을 주시면 크게 도움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셨거나 아니면 이 강연을 직접 와서 들으시거나 아니면은

TV로 보시는 분들 가운데에서 질문이 있으시거나 아니면 어떤 비판도 좋고요.

어떤 코멘트라도 주시면 제가 굉장히 감사히 받겠습니다. 우편으로 보내실 분들은

제가 일하는 한님 성서 연구소로 보내시면 되고요.

 

* 480-844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 1동 227-23 2층 한님 성서 연구소

 

그 다음에 메일로 주셔도 좋습니다.

* 이메일: biblicum@gmail.com

 

그리고 평화방송에서 이 전체 프로그램의 게시판을 만들고 조그만 홈페이지를

만들라고 합니다. 거기 게시판에 오셔서 또 몇회 이런 강의가 있었는데 또 어떤

말씀을 남겨 주셔도 저한테는 매우 도움이 되겠습니다.

 

* 평화방송 홈페이지 게시판: http://web.pbc.co.kr/TV/6875/

 

자, 그럼 본격적으로 첫 시간이지만 살짝 제가 과연 이 책을 처음 쓸 때 왜 하필이면

구약성경과 신들이라는 책을 쓰게 되었는가를 제 개인적인 아주 작은 체험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준비중입니다.................

 

한님 성서 연구소

 http://biblicum.or.kr/bbs/board.php?bo_table=QnA&page=0

 

성경에 관련 질문이 있으시면 문의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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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원준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 제23강 모세와 길가메쉬의 가시나무2013년 05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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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은 가시나무에 대해서고대 근동신화에서 상징성이 큰 낱말이고,
  • 구약의 하느님에서 출발해서 신약의 그리스도와 ...질투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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