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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이유 있는 배신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1-03 조회수686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4년 주님공현 전 토요일

<무엇을 찾느냐? >


복음: 요한 1,35-41





어린이들을 축복하시는 예수


렘브란트 작, (1647-49), 에칭과 드라이포인트, 278 x 388mm, 암스테르담 미술관


     < 이유 있는 배신 >

     

 

오페라 <카르멘>에서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는 그런 여자가 등장합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살고, 마음 내키는 대로 상대를 바꾸는 여자. 자유분방한 여자, 카르멘. 그녀는 그놈의 정 때문에 참고 사는일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또한 영원히 사랑한다.’는 헛된 맹세 따위는 입에 담지도 않습니다. 자기가 좋으면 어떡하든 유혹해서 뜨겁게 사랑하고, 싫어지면 매몰차게 돌아서 버립니다.

오페라가 시작되면 스페인 세비아라는 마을이 무대에 펼쳐집니다. 위병소 군인들 속에서 주인공 돈 호세가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때 담배 공장에서 여공들이 나오는데 그중에 카르멘이 섞여 있습니다. 흑장미처럼 도발적인 그녀에게 군인들의 시선이 꽂힙니다. 그런 남자들을 보면서 카르멘은 <하바네라>를 노래합니다.

사랑은 들새와 같아서 길들여지지 않아요.’

카르멘은 다른 여공을 폭행한 죄로 군인에게 잡힙니다. 그녀의 호송을 맡은 돈 호세는 유혹에 넘어가 그녀의 탈출을 도와줍니다. 그 일로 2개월 동안 감옥에 갇힌 돈 호세에게 카르멘은 말합니다.

당신에게 빚을 졌으니 빚을 갚을래요. 그게 보헤미아 법이에요!”

그렇게 사랑하게 된 두 사람. 하지만 사랑의 방향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돈 호세는 오직 한 방향, 카르멘을 향한 사랑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카르멘의 사랑은 자유로운 바람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제 빚을 갚았으니 우리 사이는 끝났어요.”

그러나 돈 호세의 삶은 카르멘 때문에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살인자, 밀수업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카르멘의 마음은 또 다른 남자에게 옮겨갑니다. 투우사를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화려한 옷차림의 카르멘이 남자의 팔짱을 끼고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투우장으로 들어섭니다. 그곳으로 흥분한 호세가 들어섭니다. 카르멘과 둘이 마주 서게 된 호세는 그녀에게 묻지요. 저 남자를 사랑하느냐고. 카르멘은 이제 당신과는 끝장이라고 소리치며 호세가 자기에게 주었던 반지를 빼냅니다. 그리고 호세의 발밑에 던져 버립니다. 목숨을 바쳐 사랑했던 카르멘에게 돈 호세는 사랑을 구걸합니다. 그러나 카르멘은 그의 협박과 애원에도 거침없이 말합니다.

앞으로도 당신을 사랑하라고요? 그거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당신과 함께 하는 건 딱 질색이에요.”

돈 호세는 치밀어 오르는 슬픔과 분노로 카르멘을 죽이고 맙니다. 그리고 죽은 카르멘을 부여안고 절규합니다.

, 카르멘. 내 사랑!”

돈 호세는 그녀의 시신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립니다.

 

작가 송정림 씨는 자신의 책 내 인생의 화양연화에서 이 카르멘의 줄거리를 들며 참다운 자유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내 자유를 구속시키는 것이란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자유보다 달콤한 구속이라고 정의내립니다. 카르멘은 사랑을 위해 자기 자유를 포기해야 함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카르멘만 잘못한 것일까요? 돈 호세의 애절한 일편단심만 칭찬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제가 생각하기엔 돈 호세도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은 강요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의 두 제자는 자신들의 스승이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하는 예수를 따라갑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가 됩니다. 이는 이전 스승을 배신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이는 합당한 배신입니다. 왜냐하면 세례자 요한 자신이 하느님의 어린양만큼 자신의 제자들을 채워줄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도로의 표지판에 불과합니다. 우리를 거쳐서 예수님께 가도록해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을 보내야 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외로워짐을 택해야합니다. 그분께 가는 길의 이정표가 되고, 그분께 올라가는 계단이 되는 것조차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우리는 참 신랑을 만나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는 카르멘이 되어야합니다.

 

저는 신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에비타란 영화를 보고 많이 울었습니다. 에비타는 창녀였습니다. 그러나 꿈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사귀던 사람을 자꾸 버려가며 더 힘이 있는 사람을 사귀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후안 페론, 즉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부인까지 되게 됩니다. 그리고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다가 암에 걸려 성녀로 추앙되며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들도 누군가가 우리를 통해 하느님께 가는 통로에 불과한지도 모를 일입니다. 누군가 더 큰 사랑으로 가기 위해 나를 버린다면 나는 기꺼이 그 사람을 보내주어야 합니다. 마치 세례자 요한이 자신을 버리고 예수님께로 가는 제자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신부를 맞을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도 옆에 서 있다가 신랑의 목소리가 들리면 기쁨에 넘친다. 내 마음도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요한 3,29)

 

 
 







  

 
 
  
 
              
오산 성당 홈페이지: http://cafe.daum.net/ca-o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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