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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세상에 드러난 참 사랑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1-04 조회수810 추천수15 반대(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주님 공현 대축일


<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


복음: 마태오 2,1-12






동방 박사들의 방문


안젤리코(Fra Angelico) 작, (1432-1434), 코르토나 디오체사노 박물관


     < 세상에 드러난 참 사랑 >

           

누가 나를 사랑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빅토르 위고 소설 노트르담 드 빠리의 뮤지컬 버전의 줄거리입니다.

 

1482년 온 세상이 뒤숭숭한 때 온 유럽의 거지 떼들도 빠리로 몰려듭니다. 그리고 이 거지 떼들은 빠리 성곽 밖에서 굶고 추워 죽겠으니 자비의 성모가 있는 성당(노트르담 성당)으로 들여보내달라고 농성(?)을 합니다. 그러나 노틀담 성당의 부주교는 그 청을 거절합니다. 게다가 성당 앞에서 거지떼가 활개를 치고 있으니 빠리의 경비대를 불러 이들을 바로 쫓아내버리라고 합니다. 노트르담 성당의 부주교 프롤로는 빠리 교구 노트르담 성당의 2인자이자 대단히 금욕적이고 엄격한 신부입니다.

거지들의 왕 클로팽에게는 에스메랄다라는 어여쁜 양녀가 있습니다. 방년 16세이고 집시들과 여행하며 노래하고 춤추며 사랑을 하고 싶은 착하고 예쁜 처녀입니다. 그런데 거지들을 쫓아내다가 젊고 잘 생긴 근위대장 풰비스는 한 눈에 에스메랄다의 미모에 빠지고 맙니다. 그리고 그녀를 유혹합니다.

실상 풰비스는 외적으로는 완벽한 남자이지만, 이미 부잣집 여자와 약혼한 상태입니다. 돈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가끔 바람도 피우고 사창가에 가기도 하는 사람이지만 에스메랄다를 보고는 또 결혼에 대한 갈등도 하는 평범한 남자입니다. 에스메랄다는 이 남자에게 빠져 약속장소로 가기로 합니다.

어느 날 빠리에 축제의 날이 왔습니다. 일명 광인절이라고 하는 날인데 이 날은 가장 바보 같고 못생긴 사람을 뽑아서 바보들의 교황으로 올리는 전통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수많은 이상한 분장을 한 이들이 무대에 올랐고 콰지모도는 저 이상한 사람들 사이에서라면 나도 괜찮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앞으로 나서게 되고 결국 콰지모도가 만장일치로 바보들의 교황에 뽑히게 됩니다.

콰지모도 역시 에스메랄다의 아름다움에 빠져 내가 비록 오늘 하루만이지만, 비록 바보들 사이에서지만, 오늘은 교황인데 나를 봐 줄 수는 없나요, 에스메랄다?”하면서 노래하지만 그는 말 그대로 괴물처럼 생겼습니다.

콰지모도는 꼽추, 애꾸, 귀머거리, 벙어리, 절름발이에다 거인이었습니다. 길거리에 버려진 괴물 아이였는데 노트르담의 부주교였던 프롤로가 주워 길러서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따릅니다. 큰 이후로는 양부이자 주인인 프롤로가 주선하여 노트르담의 종을 울리는 종지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주교 프롤로는 신앙인으로서 당연히 불쌍한 이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재워주고 밥도 주지만 사랑은 준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개와 주인과의 관계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주교 프롤로는 콰지모도에게 에스메랄다를 납치해 오라는 지령을 내립니다. 자신이 에스메랄다에게 빠졌다는 것을, 마녀가 군중들을 홀리는 것을 막기 위해 마녀를 가둬 버려야 한다는 거짓말로 숨기면서요.

그러나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를 납치하려다 그만 근위대에게 잡히고 맙니다. 그리고 물 한 모금만 달라고 청하는데 도와주는 이가 없습니다. 오직 에스메랄다만이 자신을 납치하려고 했던 꼽추에게 물 한 모금을 줍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며 에스메랄다에게 돌을 던지려합니다. 그 때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를 가장 안전한 곳인 노틀담 대성당으로 데리고 가서 피신시켜줍니다. 에스메랄다도 콰지모도를 믿게 됩니다.

그러나 에스메랄다는 자신의 태양인 근위대장 풰비스를 찾아갑니다. 풰비스는 에스메랄다를 기다리다가 에스메랄다의 칼에 찔려 쓰러집니다. 에스메랄다의 칼이기는 하였지만 그를 어둠 속에서 찌른 것은 질투를 느낀 부주교입니다. 그러나 살인 혐의는 에스메랄다가 뒤집어씁니다.

갇혀있는 에스메랄다에게 부주교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부가 되어주면 생명을 구해주겠다고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이 그 주교가 꾸민 것을 알고 에스메랄다는 죽음을 택합니다. 그리고 부주교에 의해 풰뷔스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풰뷔스의 약혼녀가 에스메랄다를 위해 증언하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여 풰뷔스도 에스메랄다를 마녀라고 증언하며 그녀를 버립니다.

뒤늦게 에스메랄다와 그의 동료들이 감옥에 갇혀있다는 것을 안 콰지모도는 집시들을 탈옥시키고 에스메랄다를 구해냅니다. 그리고 그녀를 성당에 피신시킵니다.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를 구한 것이 기뻤으나 자신의 외모 때문에 그녀로부터 사랑받을 수 없는 것을 슬퍼합니다.

이를 목격한 주교는 자신의 개와도 같은 꼽추를 믿으면서 자신은 싫어하는 에스메랄다에게 배신감을 느껴 그녀를 고발하여 다시 교수대에 서게 만듭니다. 이에 분개한 콰지모도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인에게 반항하여 주교를 죽이고 이미 교수형 당해 죽은 에스메랄다를 안고 노래를 부르며 자신도 그녀와 함께 긴 여행을 떠납니다. 콰지모도가 죽어가며 부르는 마지막 노래 가사는 이렇습니다.

당신을 위해 죽는 것은 죽는 것이 아니에요.”

 

여기엔 특별히 에스메랄다를 사랑하는 세 인물이 등장합니다. 젊고 멋진 풰뷔스, 마흔이 넘어 처음 사랑에 빠진 주교, 그리고 꼽추 카지모도입니다. 아마도 에스메랄다는 누구에게 마음을 주어야 하는지 몰라, 진정 누가 나를 사랑하는지 찾기를 원하는 우리 자신들일 것입니다. 우리들은 진정 나를 사랑해주는 한 분 그분을 찾기 전까지는 이 세상에서 마음에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국가를 대변하는 페뷔스가 있습니다. 국가는 자신이 진정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쳐줄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태어난 목적이 국가발전을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국가는 나의 희생을 기억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생명의 위협에 빠졌을 때 나를 위해 희생해 줄 준비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종교를 상징하는 프롤로 주교가 나옵니다. 어쩌면 종교도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여 나를 받아들여주고 나에게 안전한 장소를 제공할 것처럼 생각이 들지만, 나를 이용하려는 모습도 있습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종교 때문에 인생을 망치고 죽이고 죽습니까? 종교 또한 나에게 무언가 희생할 것을 요구하지만 정작 내가 쓰러질 때는 나를 위해 희생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에스메랄다에게 사랑을 보여주었던 인물은 역시 꼽추였던 카지모도입니다. 그는 그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비록 그녀가 자신을 유일한 사랑으로 사랑해주지 않을지라도 말입니다. 작가는 이 볼품없는 카지모도만이 우리 인생에서 유일하게 믿어도 괜찮은 목숨을 바치는 사랑을 보여준 그리스도이심을 말하려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사랑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기에 믿음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희생의 모습이 아니면 느껴질 수 없습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당신 아드님을 내어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지도 느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분의 공현을 체험해야만 우리 존재가치를 알고 그것에 맞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공현이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이 온 세상에 드러났다는 뜻입니다. 그 사랑이란 이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하느님께서 당신의 생명과도 같은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그 아들을 희생하여 우리 죄를 씻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종교를 믿지 못하겠다면 그 어떤 종교에서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것, 즉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그 사랑은 믿어야 할 것입니다. 이 사랑이 드러났으니 이제 선택은 우리에게 달린 것입니다.

 

연탄길 3권에 소개된 등대란 사연입니다.

 

수연이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했다. 아버지는 중풍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몸의 반쪽이 마비된 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했다. 중풍 후유증으로 언어 장애까지 생겼다. 말수가 없던 아버지는 병으로 누운 뒤 더 말이 없어졌다. 깊게 그늘진 눈으로 온종일 천장만 바라보았다.

어느 겨울, 수연이 오빠 성준은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아 들고 집으로 왔다.

"아주 잘했구나. 성준아, 고맙다."

수연이 엄마는 기뻐했다. 그러나 엄마는 이내 쓸쓸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 병원비를 빚지고 있는 형편에 대학 등록금까지 마련한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이라 자취나 하숙까지 해야 했다.

"성준아, 어미로서 자식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등록금이 마련되지 않으면 어쩌지? 너도 알다시피 엄마가 봉제공장에서 버는 돈으로 우리 식구 밥 먹고 사는 것도 빠듯하잖니. 아버지 병원비도 그렇고 말이야."

엄마는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었다. 엄마는 허망한 얼굴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누운 아버지도 아무 말이 없었다.

"남들은 대학에 못 들어가서 난린데 우리 집은 왜 이래. 말도 안 돼. 이번에 등록금 못 내면 나는 집을 나가서 혼자 살 거야. 그런 줄 알라고."

성준은 목청을 돋우며 꼿꼿하게 말했다. 성준은 돌아누운 아버지를 흘깃 째려보고는 낯을 찡그리며 방을 나가 버렸다. 엄마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원망 섞인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야지요. 아이들에게 해 줄 일은 산더미 같은데 이렇게 누워만 있으면 어떡해요. 나 혼자 동동거려 봐야 밥 먹고 살기도 힘들잖아요."

엄마는 깡마른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을 꺽꺽 울었다. 수연이도 옆에 앉아 훌쩍거렸다.

잠시 후 마음을 가라앉힌 엄마는 머쓱해진 얼굴로 아버지를 위로했다.

"여보, 괜한 억지를 부려서 미안해요. 당신이 왜 이렇게 된 줄 전들 왜 모르겠어요. 아까는 하도 속이 상해서 그랬어요. 마음 푸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집을 나간 성준은 며칠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성준 때문에 수연이네 집은 더 큰 슬픔 속으로 빠져들었다. 성준이 집을 나간 지 5일째 되던 날, 오후부터 질금질금 가랑비가 뿌렸다. 성준은 우산도 없이 타박타박 집으로 돌아왔다. 안방 문틈 사이로 아버지의 느릿느릿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어 장애가 있는 아버지는 말을 더듬더듬 거리며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여보세요. ……제가요. ……신장을 팔 수 없나 해서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아버지의 힘겨운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제 아들놈, ……대학 등록금 때문에 그…………그러는 거니까 꼭……꼭 좀 부……부탁드립니다. …………이요."

마루에 걸터앉은 성준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눈물이 핑 돌았다. 오래전 학교 선생님이 해 주었던 말이 생각났다.

"아버지의 사랑은 등대 같은 거야. 낮에는 태연한 척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가, 어두운 밤만 되면 깜박깜박 제 몸을 밝히는 등대……. 아버지들은 침묵으로 사랑을 말하거든……."

가슴속에 꼭꼭 감춰 두었던 울음이 꽉 다문 입술을 비집고 자꾸만 자꾸만 터져 나왔다.

 

밤에 육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등대가 보이면 그 곳엔 육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랑이 진정 존재한다면 등대처럼 그 사랑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희생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오늘 목격했습니다. 이 하느님의 사랑을 찾아온 세 명의 동방박사들처럼 우리도 그 빛을 따라 나아갑시다. 결국 인생이란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그 분을 찾아 길을 나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 빛이란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사랑일 것입니다. 이 사랑만이 우리 인생의 유일한 의미이고 종착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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