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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공현 후 수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4-01-08 조회수368 추천수8 반대(0)

신학생 때, 사랑의 3가지 차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에로스입니다. 이는 생존과 종족 보존을 위한 사랑입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할 수 있습니다. 진화의 시계는 생존과 종족 보존을 위한 방법을 찾았습니다. 자연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있고, 이 생명들은 사랑을 하고, 다음 세대를 이어 갑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랑을 하지 않으면 인류가 지금까지 세대를 이어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또한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소중한 사랑입니다. 다만 사람은 너무나 약하게 태어나기 때문에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는 아이는 혼자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정이 생기고, 결혼 제도가 생기고,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플라토닉입니다. 관중과 포숙과 같은 우정을 말합니다. 사람은 서로 의지하면서 살게 됩니다. 사람이 혼자 살기에는 자연의 조건이 혹독했고, 위험한 동물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라는 연대의식이 생겨났습니다. 가족, 동네, 부족, 민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생겨났습니다. 개미, 벌과 같은 곤충들은 이와 같은 사회를 형성하면서 생활합니다. 약한 동물들은 이런 연대의식을 가지고 살지만 강한 동물들은 혼자 살아가곤 합니다. 제게도 친한 동료들이 있습니다. 가끔씩 연락을 하며 지내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이런 만남과 우정을 통해서 위로를 받고, 용기를 내고, 희망을 갖습니다.

 

세 번째는 아가페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사랑의 단계입니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는 설명하기가 어려운 사랑입니다. 인류는 현자들을 통해서, 종교를 통해서 이런 사랑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파수꾼, 등대지기는 바로 이런 모습을 보여 줍니다. 공동체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보상을 받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런 보상을 원하지 않고 파수꾼과 등대지기가 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편안한 삶이 보장되어 있는데 그것을 포기하고 어려운 이웃,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의한 현장에서 정의를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제1독서에서 말하는 사랑의 차원입니다. 사도 요한은 분명히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고, 물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빵공장을 세우고, 수상 스키를 타라는 뜻은 아닙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들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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