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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순수는 강하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1-11 조회수855 추천수1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예수 세례 축일


<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


복음: 마태오 3,13-17






바오로의 개종


미켈란젤로(Michelangelo) 작, (1542-45), 바티칸 폰티피치 궁


     < "순수는 강하다." >

 

      " 정교한 그림을 그리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다시 어린 아이가 되는 데 사십 년이 걸렸다.”

피카소가 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잃어버린 순수. 한번 잃어버리면 다시 찾기 힘든 것, 그러나 꼭 찾아야 되는 것, 무엇보다 급한 일. 작가 송정림씨는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타인의 불행에 가슴 아파 눈물짓던 동정심, 노래 한 소절에 가슴이 아리던 감정, 시집을 끼고 다니며 시 한 수를 외우던 설렘, 아주 작은 기쁨에도 티 없이 기뻐하던 순수성. 도대체 누가 훔쳐 버린 걸까요?’

그리고 송 작가는 그 잃어버린 순수를 되찾기 위해 영화 한 편을 소개합니다. 바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입니다.

영화의 오프닝은 잔인한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평화롭게 흐르는 강물, 천진난만한 아이들 소리. 그곳으로 무엇인가가 떠내려 옵니다. 소녀의 주검입니다. 소녀는 순수성을 상징합니다. ‘는 바로 순수. 영화는 처음부터 단언을 내립니다. 이 세상에서 시는 죽었다고, 순수는 사라졌다고.

 

예순여섯의 미자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는 간병인으로 일하면서 홀로 손자를 키우며 살아갑니다. 그녀는 소녀 같은 마음을 지녔습니다. “난 꽃을 매우 좋아해 꽃을 보기만 해도 배불러서 밥 안 먹어도 돼요.”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미자는 시를 쓰고 싶어 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얼마 안 되는 순수한 사람입니다.

미자가 듣는 시 문학 강좌에서 수강생들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발표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기억하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은 모두 순수한 시간이었습니다. 할머니에게 노래를 가르쳐 드렸던 순간, 첫 아이를 낳는 순간, 반 지하 방에 세 들어 살다가 자그마한 임대아파트를 얻어 들어갔던 순간, 이룰 수 없었지만 사랑을 느꼈던 순간, 그리고 어린 시절의 어떤 한때.

그렇게 아름다운 순간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가장 순수하게 사랑했고, 순수하게 감사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 순간을 발표할 때 발표자들은 하나같이 울먹입니다. 가장 행복한 것은 순수를 지니는 일인데, 현실을 살아가다 보니 그 순수가 사라진 것도 모르고 살아왔음을 느끼는 자각에서 흘리는 눈물입니다. 그렇게 대부분은 그 순수를 잃고 지금까지 단 한 편의 시를 써 볼 마음도 가져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시를 한 번도 쓰지 못하고 이렇게 흘러왔습니다.

물론 미자도 시를 쓰는 게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묻고 또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어요?”

그 질문은 어떻게 하면 순수를 지킬 수 있어요?”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 누구도 시원하게 대답을 들려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이미 순수는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없는 것을 찾아 헤매는 미자는 그래서 엉뚱해 보이고 바보 같아 보입니다.

그런 미자에게 현실이 닥칩니다. 사랑하는 손자가 오프닝 장면에서 보였던 소녀의 죽음과 연관이 있었던 것입니다. 손자와 친구들이 그 소녀를 자살에 이르게 한 거지요. 미자는 손자가 괴로워하기를 바랍니다. 나쁜 짓을 하면 괴로워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하기 때문입니다.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면 자기 가슴에는 피멍이 드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손자는 무덤덤합니다. 죄의식이 없습니다. 슬퍼하지 않습니다.

손자와 같이 죄를 지은 아이의 부모들은 돈으로 사건을 무마하려고 합니다. 죄를 지었지만 그 대가를 치르지 않고 넘어가는 방법을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미자는 갈등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손자의 마음에서 벌써 순수가 사라져 버린 것이 미자는 슬픕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주변인처럼 자신들의 세계에 들어오지 못하는 미자를 시나 쓰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바라봅니다.

시는 죽었고, 세상은 손자처럼, 혹은 손자의 친구, 그 부모님들처럼 무신경합니다. 미자가 즐겨 쓰던 하얀 모자가 바람에 날려 갑니다. 그 하얀 모자가 날아가 버린 것처럼 미자도 순수를 버립니다. 현실과 타협합니다.

그러나 미자는 손자를 위하는 게 진정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손자의 죄를 덮는 것이 진정으로 손자를 위한 길인지 갈등합니다. 죄를 지은 자식은 마땅한 벌을 받게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원칙을 지키는 것이 순수입니다. 순수는 곧 사랑입니다. 미자는 손자를 위한 선택을 해야 했지요. 손자를 경찰에게 넘깁니다. 그리고 비로소 생애 처음으로 시 한 편을 완성하게 됩니다. 시를 쓰게 되었다는 것은 순결한 눈을 회복했다는 뜻입니다.

영화 속에서 걸어 나와 미자가 묻습니다. 당신 마음 안에서 순수는 안녕하시냐고.

[참조: 내 인생의 화양연화 중, ‘순수는 강하다’]

 

세례란 무엇일까요? 물로 씻고, 옛 나를 물속에 죽이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 성령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위해 피를 흘릴 수 있는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웃을 위해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 이것은 이제 무뎌진 감정을 걷어내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낄 수 없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내 옆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나의 불편함부터 생각해버리는 그런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작은 멸치들을 볶아 놓은 것을 먹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저와 같은 사람들도 만나기도 했지만 창피해서 말 못하던 것인데, 사실 저는 그 멸치들의 눈이 싫었습니다. 자기를 먹는 나를 자꾸 쳐다보는 것 같아서 먹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집에 꽃을 꺾어가고 싶었지만 꽃이 아파할까봐 꺾지도 못했습니다. 그런 순수함은 지금은 사라져버렸습니다. 나의 아픔부터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 순수함이 있다면 십자가에 달려계신 그리스도의 모습과 더 닮아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서른 살까지는 그렇게 당신 자신과 가족을 위해 사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알을 깨고 나와서 세상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죄로 인해 고통 받는 세상을 더 이상 눈뜨고 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순수성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 곧 세례인 것이고 그 세례는 이 세상에 나가 다른 이의 고통을 대신 져 주라고 나를 밀칩니다. 그러면서 깨닫습니다. 정말 강한 것은 순수함이라고. 그리고 그 순수함이 바로 사랑이라고. 그 사랑은 온 세상과도 맞서 이길 수 있는 강함이라고.

 

지금 개봉하며 많은 관객을 끄는 영화 변호인을 보신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부산에서 가장 잘 나가던 한 변호사는 정치와 관계된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그 사건의 변호를 맡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서의 출세와 돈, 명예보다 한 아이의 아픔이 더 가슴깊이 다가왔습니다. 순수성을 되찾은 것입니다. 그 때부터 그는 자신을 희생하며 가난한 이를 위해 싸워나가게 됩니다. 정말 힘없고 비겁했던 것은 세상에 타협하며 살아왔던 지금까지의 자신의 모습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한 아이의 아픔을 품어주기 위해 온 세상과 맞서 일어서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세례를 받음은 깨끗해지고 순수해진다는 뜻입니다. 그 깨끗한 눈으로 보니 온 세상엔 눈물 날 감동과 아픔이 있습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시력을 회복하는 것이 세례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태생소경의 눈을 만들어주시고, 또 바오로의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게 하셨던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눈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 순수한 눈은 나를 소진시키기는 하겠지만 이 세상을 바꿀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위해서 눈물 흘려 줄 수 없다면 아직 우리는 온전히 세례를 받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순수는 강합니다. 매일 매일의 세례로 순수의 힘을 회복합시다.

 

 

 


 







 

 

요셉 신부님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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