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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성경에 남긴 신들의 흔적/ 동물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1-15 조회수669 추천수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야곱의 우물 2013년 11월호

 

구약성경에 남긴 신들의 흔적[주원준]

 

동물

 

구약성경에 남긴 신들의 흔적을 찾아 떠난 지도 벌써 이 년 반이 되었다.

앞으로 1회만 더하면 30회의 여정에 마무리를 짓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잠시 신들을

떠나 구약성경의 '동물'에 눈길을 주려 한다. 신들이 아닌 동물을 통해서, 우리와는

다른 고대 이스라엘인의 생생한 종교심을 느낄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지면의

제약도 있으니, 낯선 동물과 친숙한 동물을 한 마리씩 예로 들겠다.

 

신들과 동물이 사라진 현대 세상

 

현대인들은 창조계의 삼라만상에 깃든 다양한 신들을 잃었다. 그리고 현대 신학은 성경

시대보다 메말라 버렸다. 우리는 구약성경이 탄생한 세계에 다양한 신들이 살고 있었음을

잘 보았다. 이런 다신교 세상에서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월등히 높으시고 전혀 다르신

하느님 한 분을 향한 신앙을 키웠다.

 

그런데 현대인은 신들뿐 아니라 동물도 잊고 산다. 전래 동화 속에 단골손님이었던

호랑이는 볼 수 없다. 한반도에 그나마 남아 있는 동물이 고라니와 멧되지라는데,

필자 같은 도시인은 그마저도 뉴스를 통해서나 접한다. 신들이 사라진 세상은 동물이

사라진 세상인 것이다. 하지만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신들과 함께 다양한 동물을 경험

하며 살았다.

 

치이, 불길한 짐승

 

히브리어로 '치이'는 '메마르다', '황량하다'를 뜻하는 형용사다. 대체로 사람이 살지

않는, 삭막하고 두려운 광야를 묘사할 때 쓴다. 이 말은 광야에서 사는 낯선 짐승을

가리키는 명사로도 쓰는데,  대개 복수형으로 나온다.

 

본디 '치이'는 의성어에서 비롯된 것 같다. 바람 부는 광야, 어둠이 깔리는 적막함 가운데

홀로 있을 때, 문득 다가오는 짐승의 불길한 울음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 광야

에서 낯설게 접근하는 짐승이 바로 치이들이다.

 

광야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문명과 반대되는 '비인간의 땅'이었다. 그런 땅에

사는 치이들은 특정한 짐승이 아니라 그저 사막의 짐승들, 어둠의 짐승들이었다. 치이들은

대체로 이사야서, 예레미아서, 시편  등에 나오는데, 아래와 같은 맥락에서 사용된다.

 

하느님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바빌론에 대한 신탁을 내린다. 바빌론은 당대의 제국이지

만, 훗날 멸망하여 치이들이나 깃드는 곳이 되리라.

 

오히려 치이들이(사막의 짐승들이) 그곳에 깃들이고

그들의 집들은 부엉이로 우글거리리라.

타조들이 그곳에서 살고

염소 귀신들이 그곳에서 춤추며 놀리라.(이사 13,21)

 

치이들과 함께 나오는 부엉이, 늑대, 승냥이 등도 모두 광야에 사는 불길한 짐승에 속한다.

흥미롭게도 타조가 이 부류에 든다 이 또한 현대인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것과는 퍽 다르다.

 

고대 근동인들은 인간이 문명을 이루고 살기 전, 이 땅은 혼돈의 광야라고 믿었다.

문명의 질서가 잡히기 전의 광야는 치이들과 승냥이들과 타조들이나 살던 곳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짐승들이 돌아왔다는 말은 다시 혼돈이 찾아올 것이라는 뜻이었다.

 

바빌론을 거스르는 신탁에서 예레미아 예언자도 비스한 말씀을 하시낟. 지이들, 늑대들,

타조들이 다시 모여드는 곳은 인간이 영영 거주하지 못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그곳에는 치이들(사막 짐승들)이

늑대들과 더불어 살고 타조들도 살게 되리라.

그러나 사람은 영영 다시는 그곳에 살지 않을 것이요.

세세 대대로 거주하는 사람이 없으리라.(예레 50,39)

 

더러운 개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주원준 박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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