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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느님의 어린양 : 반신부의 복음묵상 @@@
작성자반영억 쪽지 캡슐 작성일2014-01-19 조회수670 추천수7 반대(1)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연중 2주일(요한1,29-34)

 

하느님의 어린양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해 주십니다. 그 사랑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이 시간 사랑이신 주님의 희생에 관해 묵상하는 가운데 은총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어린양에 관해 생각해 봅니다.

 

첫째로 구약성경에서 보면, 어린양은 하느님께 바치는 희생제사 때 제물로 사용된 동물입니다. 제물로서의 어린양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 제단에 올려졌고, 그때 제물의 피는 속죄의 수단으로 여겨졌습니다. 죄의 용서를 청한 것입니다.

 

둘째는 파스카의 어린양(탈출12,3-13)이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하고 있을 때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어 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때 이집트 왕 파라오가 완고하게 말을 듣지 않자 하느님은 모세를 통해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는데 마지막 재앙이 이집트에 있는 모든 맏이의 죽음이었습니다.

 

“왕좌에 앉은 파라오의 맏아들부터 맺돌 앞에 앉은 여종의 맏아들까지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들이 모조리 죽을 것이다.”(탈출11,5)

 

이때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별하여 살리기 위하여 한 집에 한 마리씩 새끼 양을 잡아 제사 지내고 그 피를 집의 좌우 문설주와 문 상인방에 바르도록 하여 이스라엘이 죽음의 재앙이라는 심판을 면하고 노예생활에서 자유롭게 되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에게 어린양은 구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건너뛰다.”라는 의미의 파스카 축제가 지속되고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대신 죽은 희생양을 파스카의 어린양이라고 합니다.

 

셋째는 어린양의 모습으로 주님의 종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깍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이사53,7).을 얘기합니다. 여기서는 다른 이들을 대신하여 고난을 받음으로써 그들에게 해방을 가져다주실 주님의 종이 도살자의 칼 아래 죽음을 당하는 어린 양의 모습으로 비유됩니다. 오늘 1독서에서 예언되신 주님의 종이 바로 그분입니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이사49,3.6)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분의 죽음이 지닌 속죄적인 성격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는 속죄의 양이자 파스카의 양, 곧 희생양이 되셨습니다. 인간의 죄를 없애시는 참된 어린양이십니다. 예수님은 사실 하느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씻기 위한 속죄의 제물로 세상에 보내신 분이십니다(1요한4,10).

 

미사 안에서도 우리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찾습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사제가 축성된 빵을 나누는 동안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평화를 주소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간절한 청원과 평화를 갈망하는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성체를 영하기 직전 사제는 성체를 높이 들어 외칩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그리고 우리는 응답합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이 말씀 안에 담긴 의미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희생을 통한 죄의 용서와 평화의 선물에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영성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희생의 삶을 오늘 여기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신 속죄와 희생양이 되신 어린양을 모시는 우리의 행위에는 우리도 어린양이 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양식을 받아 모셔도 효과가 없는 것은 하느님을 직접 모신다는 중대한 사실에 별로 주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그러므로 “준비된 마음 없이 습관적으로 성체를 모시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깊은 신심을 가지고 모시도록 하십시오.”

 

어떻게 보면 우리를 위해 밥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이웃의 밥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너는 내 밥이야! ’하면서 남을 무시하고 깔보며 내 뜻대로 움직이려 합니다. 내가 “네 밥이 되어 줄께!”한다면 그야말로 바보천치가 되는 세상입니다. 자기 이익과 권리만 주장하고 남의 권리는 아랑곳하지 않는 이기적인 마음이 팽배해 있습니다. 이웃을 위해 양보하고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똑똑한 사람은 넘쳐나고 갈수록 각박하고 메마른 사회가 되어갑니다. 참고 인내하며 기다려 주는 마음을 잃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지금이야말로 하느님의 어린양의 삶이 필요합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주님, 저는 황홀한 환시보다도 숨은 희생의 단조로움을 선택하렵니다. 희생과 사랑으로 작은 핀 한 개를 줍는 것이 한 영혼을 구하고 회개시킬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희생은 핀 한 개를 줍는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희생은 주님 사랑의 징표입니다. 지금 삶의 자리에서 다가오는 희생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주님만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그분의 삶을 따르는 길만이 세상을 바로잡아 줄 수 있음을 믿고 희생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 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 놓아야 합니다.”(1요한3,16)

 

어린양의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서 자주 주님 앞에 무릎 굻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구원자이시며 희생제물이 되신 주님은 살아있는 성교회의 심장인 감실 안의 성체로 현존”(교황 바오로 6세)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결코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하루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바오로 사도를 봅니다.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리3,8-9).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 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에페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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