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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1-19 조회수737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1월 19일 연중 제2주일
 
 
“Behold, the Lamb of God,
who takes away the sin of the world.
(Jn.1,29)
 
 
제1독서 이사 49,3.5-6
제2독서 1코린 1,1-3
복음 요한 1,29-34
 

어제 오후에는 바람도 불고 꽤 쌀쌀한 날씨였습니다. 저는 묵주기도를 하면서 제가 살고 있는 동네를 걷고 있었지요. 그런데 토요일이라 그런지 연인들이 동네 공원에 많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팔짱을 끼든 두 손을 마주 잡든 꼭 붙어 다닙니다. 단 한 명의 연인도 몇 미터씩 떨어져 다니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상당히 추운 날씨였기 때문에 더욱 더 붙어 다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연인들이 단순히 춥기 때문에 붙어 다니는 것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춥다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꼭 붙어 다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추위를 이기기 위한 것을 넘어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은 이렇게 함께 다닙니다.

이 꼭 붙어 다니는 사랑의 관계를 생각하다가 어느 집에 붙어 있는 담쟁이 넝쿨을 보게 되었습니다. 거리의 나무는 모두 앙상한 가지만을 보이고 있는데, 벽에 붙어 있는 담쟁이 넝쿨들은 봄날의 푸르름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그 모양 그대로를 다 간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집 벽에 꼭 붙어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 역시 주님께 꼭 붙어 있는 사랑의 관계를 유지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필요할 때에만 주님을 찾는 이기적인 신앙이 아닌,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하는 변하지 않는 신앙을 간직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자신 있게 “주님”이라고 외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며,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주님께 꼭 붙어서 변하지 않는 사랑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기적이 있어야 믿음이 생기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적 뒤에 생기는 믿음은 금방 사라질 수 있는 믿음입니다. 진짜 믿음은 오히려 기적이 없을 때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기적이 없어도 주님을 붙잡을 수 있는 것, 자신의 뜨거운 외침에도 침묵하시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신앙이 진짜 믿음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세례자 요한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받고 있었지요. 그가 보여준 금욕적인 행동과 힘이 넘치는 말씀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그래서 그의 제자 역시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알리는 것이 아닌, 예수님을 더 훌륭하신 분이고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 말에 이제 사람들은 자신을 떠나 예수님께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고 모든 이들이 예수님께로 향하도록 인도했던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보여주었던 진짜 믿음. 자신을 낮추고 주님의 뜻을 깨닫고 자신이 아닌 주님을 높이는 그 믿음이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고백을 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주님께 꼭 붙어서 모든 삶을 주님 중심으로 살았던 세례자 요한이지요. 그에 반해 우리들은 과연 주님께 꼭 붙어서 변하지 않는 사랑과 주님 중심의 굳은 믿음을 간직하며 살고 있었을까요?

당신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는 내가 있고,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당신 있음에 영원을 수놓는 아름다운 동행이어라(황덕식).

 
벽에 꼭 붙어있는 담쟁이 넝쿨. 우리는 어디에 꼭 붙어 있어야 할까요?

 

 
의미를 부여하는 삶

제가 살고 있는 인천 중구에는 ‘우리나라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이 많습니다. 최초의 근대주화가 이곳에서 만들어졌으며, 최초의 근대공원도 이곳에 있습니다. 최초의 기관차가 이곳에서 처음 출발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개신교 교회도 이곳에 있습니다. 최초의 축구경기, 최초의 자장면, 최초의 우체국, 최초의 등대 등등……. 최초라는 이름 붙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최초’라는 이름이 붙으니 어쩐지 의미가 남다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특별한 의미가 붙은 이 ‘최초’라는 말에 더욱 더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으며, 또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 삶 자체에도 의미를 부여해서 관심 가지고 바라본다면 소중한 나의 삶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은 내가 최초로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겠다고 굳은 약속을 한 날, 오늘은 내가 최초로 누구를 도운 날, 오늘은 내가 최초로 미사에 온전히 집중한 날, 오늘은 내가 최초로 사랑 고백을 한 날.....

항상 똑같은 삶의 패턴으로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듯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그 느낌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의미를 부여하는 삶. 보다 더 풍요로운 나의 삶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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